케이시는 메리의 품에서 최대한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부드럽게주름이 잡힌 뽀얀 얼굴, 창백하고 지적인 눈썹 밑의 다갈색 눈동자를 다시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 얼굴은 제이와 처음 사귀기시작할 때부터 따뜻하게 그녀를 맞아주었다. 제이와 헤어진 것이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메리 엘런까지 잃었기 때문이었다. - P130

 제이가 케이시와 사귀면서 메리 엘런은 케이시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더 잘 알게 되어 기뻤다. 성인남자 둘의 어머니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단서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아들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소식이 점점 뜸해져 거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요즘, 메리 엘런은 학부모 교사 면담이나 성적표가 그리웠다. - P131

 자기소개서를 보낸 다른 회사에서는 아직 한 통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갑에는 8달러가있었고, 남은 신용카드 한도도 없었다. 아침에는 돈을 좀 더 빌려달라고 동생에게 전화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구나." 메리 엘런은 말했다. 그날 아침, 케이시는 컨실러를 바를 의욕조차 없었다. "괜찮니?" - P133

 "난 우리 모두가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했단다. 알고있니? 난 널 정말 많이 사랑해, 케이시."
케이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침만 삼켰다. 그녀의 부모님은평생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한국인들은 사랑에 대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케이시와 티나는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듣지 못하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136

그들은 같이 샌드위치가게를 나섰다. 거리로 나온 메리 엘런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손윗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한국식 예절 때문에 메리 엘런 앞에서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지만, 케이시도 하나 달라고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리 엘런은 담뱃갑을 건넸고, 케이시도 한 대 피워 물었다. 첫모금은 황홀했다.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고, 아주 오랜만에 머리가맑아지는 것 같았다. - P138

늘 이렇게 굶주린다는것은 인권침해로 느껴졌다. 이제 담배조차 살 돈이 없으니(그녀는메리 엘런의 담뱃갑에서 이미 두 개비를 꺼내 피웠고, 나머지는긴급 상황에 대비해 비축하는 중이었다) 배고픔은 견디기 힘들지경이었다. 흡연량이 줄수록 식욕은 솟았고, 요즘처럼 음식이 맛있던 적이 없었다. - P1400

엘라가 테드를 위해 저녁을 준비할 때는 다른 약속이 있는 척했다. 하지만 뉴욕 시내에서 누군가를 만나려면 현금과 교통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대학 친구를 만나 맥주 한 잔에 피자한 조각 먹는 데도 50달러가 든다-케이시는 갈 곳이 없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밤에는 거기까지 걸어가서 원하는 만큼만 내고 입장하기도 했고, 아직 문을 닫지 않은서점에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엘라의 집까지 다시 걸었다. - P141

"아시아 여자를 사귀는 전형적인 백인 남자. 더없이 희고 평범하게 생긴 개성이랄 것도 없고. 흠. 얼마 전에 여자 둘을 주물렀다고 그 방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군." 테드는 혼자 재미있다는 듯헛기침을 했다. "당신한테 약간 실망했어, 케이시, 당신은 알파인간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P144

케이시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뇨, 테드, 엘라가A형 인간을 좋아하죠."
A타입 성격유형** 말이지?"
"아뇨. 멍청이(Asshole)요."
테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재미있었다.
"이제 다 됐나요?" 그녀는 물었다. 테드의 말이 그녀의 가슴을찔렀지만, 이 정도 조롱은 일자리를 알아봐준 대가로 감수하기로 했다 - P144

* Alpha, 지배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며 공격적인 특성.
** Type A personality, 조바심, 공격성,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성격. - P144

모든 표면에서 에너치가 반사되고 있었다. 화면에서 불빛이 깜빡이고, 전화기 버튼이나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내달렸다. 여기저기 여자도 눈에 띄었지만, 콘서트홀처럼 높은 천장에풋볼경기장 넓이의 공간을 채운 대다수는 남자였다. 백인, 아시아계, 그리고 흑인 몇몇 모두 40대 이하로 보였고 외모도 준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길고 평행한 대열, 에어론 의자가 딸린 화이트칼라공장 생산라인이라고나 할까. 남성적인 힘이 소용돌이치는 이런공간에서 덩달아 에너지를 얻지 않기는 힘들었다. 처음으로 케이시는 이 일을 원했다.  - P147

갑자기위신도, 돈도, 목표의식도 없는 영업보조라는 직책조차 상관없었다. 어차피 올해가 지나면 로스쿨에진학할 가능성이 높다.  - P1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