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내용에 대해 솔직히 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니?" 케이시는 침을 삼키고 불가지론에 이끌린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도, 그 부재를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더듬더듬 말했다. 즐거움이라고는 모르고 살아가는 부모님이독실하게 믿는 장로교회 교리보다는 헉슬리와 타협하는 것이 더쉬웠다. 윌리엄은 격려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는 적극적인 기회주의자로구나." "네. 제가・・・・・・ 그런가요?" 그녀는 대답했다. - P74
"그리고 매일 그 안에서 내가 도저히 받아들이거나 화해할 수없는 구절,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을 발견한다. 나는 그 구절을수첩에 적어." 윌리엄은 가죽 장정 다이어리를 펼치고 손으로 끼적인 필적을 보여주었다. 그날은 <전도서>를 읽은 날이었다. "나는명료함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P76
케이시는 <여호수아>에서 고른 오늘의 구절을 정자체로 또박또박 기록했다. "내가 노력한 물건 중에 바빌로니아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그 무게가 50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세겔은 요즘 기준으로 얼마나 될까? 케이시는 궁금했다. - P77
케이시는 아주 조심조심 옷을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특히 갈색정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이면서 머릿속에서 가격을 계산했다. 세금 제외하고 총 4,000달러였다. 케이시도 어엿한 백화점 점원이었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절대 일반 소매가로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그건 손님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빈의 백화점 점원들은 넙죽넙죽 돈을 잘도 낸다는 뜻에서 이런손님들을 ‘현금인출기‘라고 불렀다. - P81
"맙소사. 교회에서 결혼하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엘라." 케이시는 초대받지 않은 하객들까지 500명쯤 모아놓고 치르는 전형적인한국식 교회 결혼식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교회 지하에서아줌마 봉사단이 한국 음식을 상다리 부러지게 뷔페식으로 차려내는 피로연에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구경할 수 없는 그런 행사였다. - P85
전부 4,300달러가 약간 넘었다. 호텔 숙박비는 400달러 정도나올 것이다. 첫 신용카드를 발급받자마자 첫날에 한도까지 써버리다니. 모드는 영수증을 건넸고, 케이시는 서명했다. 이제 그녀도 현금인출기로 전락했다. - P87
케이시는 엘라가 서둘러 화제를 마무리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부잣집 딸의 박애주의적인 말에 굳이 기분이 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 또한 프린스턴의 후원을 받은 처지였으니. 이런고매한 이상을 지닌 누군가가 그녀를 위해 모금을 해주었을 것이다. 케이시와 제이는 입학을 허락했다는 사실 자체로 학교 측의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입증하는, 너그럽게 재미로 관용해야할 소작농 비슷한 존재였다. - P88
케이시는 엘라에게 결혼식에 대해물었다.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에 결혼한다는 것 자체가 바보짓으로 보였다. - P88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니?" 엘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없어. 넌 아무 잘못도 없어. 그저 내가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일뿐이야." 케이시는 미소 지었다. "아주 큰 틀 속에 갇혀 있는, 아주보잘것없는 사람." - P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