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유능한 젊은 여성으로서 케이시 한은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갈망한 것은 화려함과 통찰이었다. - P13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퀸스의 허름한 동네에서 자라난 한국인 이민자로서 그녀는 맨해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근면하고 힘겨운 삶을 넘어선, 눈부시고 화려한 인생을 꿈꾸었다. - P13
그중 핵심은 은근히 감추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여성이라면 대리석 기둥처럼 옷을 걸치라는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조언을 읽은 뒤로, 케이시는 절대 잊지않고 이 충고를 따랐다. - P14
조셉과 딸 케이시는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끼는 쪽은 웨스팅하우스 과학경진대회 브롱크스 지역 결승전까지 올라간 과학 영재이자 MIT 대학생선교회 부회장으로, 예과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케이시의 여동생 티나였다. 티나는 어머니 리아의 젊은 시절을 빼닮은 고전적인 한국 미인이었다. - P14
케이시는 직장이 없었고 바로 그 이유로 이 밴클릭 스트리트의방 두개짜리부모님 집으로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17 년 전, 미국이 건국 200주년을 맞던 해에 케이시네네 식구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 P15
여러 요인 중에서도, 흡연은 자신이 정직한 인간이라는 케이시의 자아상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솔직하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 그녀였지만, 부모님의 등 뒤에서 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밀은 백인 미국인 남자친구 제이 커리였다. - P16
지난 일요일 밤, 아주 괜찮은 섹스를 나눈 뒤, 제이는 베개에 팔꿈치를 괴고 손으로 머리를 받친 자세로 누워 이렇게 제안했다. "나랑 같이살자. 생각해봐, 미스한 원할 때 언제든지 섹스할 수 있다고." 부모님은 그녀가 처녀가 아니라는 것도, 열다섯 살 때부터 피임약을 먹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부모님 집에 있으면 언제나 초조했고, 혹시 성냥이 있는지 주머니를 두드려보고 싶은 기분이 수시로 들었다. - P16
로스쿨에 갈 수도 있었다. 컬럼비아에 입학 허가도 받아놓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죄다 일에 찌든 변호사였고, 그들의일상은 부럽지 않았다. 학기중 주말마다 사빈의 백화점에서 일할 때 접했던 변호사 손님들은 이런 조언을 남겼다. "돈을 벌고 싶으면 경영대,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의대. 법률, 경영, 의대라는 세속적인 삼위일체가 이 도시의 유일신인 것 같았다. - P17
뉴욕 출신이민자 여학생이 감히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려 하다니 오만한, 어쩌면 경솔한 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시는 설령 모호한 꿈이라도 단지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도 없이 입학을 1년 연기하겠다는 편지를 컬럼비아에 보냈다. - P17
아직 쉰다섯 살이지만 실제보다 더 늙어 보여서, 특히 아내 옆에 서 있으면 정정한 일흔 살노인 같았다. 리아는 그의 두 번째 아내였다. 그가 깊이 사랑했던동갑내기 아내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결혼 1년 만에 결핵으로세상을 떠났다. 첫 아내를 떠나보낸 상처 때문이었는지, 조셉은두 번째 아내를 몹시 아꼈다. 그녀의 건강과 기독교인다운 유순한성품을 감사히 여겼고, 억척스러운 생활력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얼굴과 하늘하늘한 몸매에 여전히 매력을 느꼈다. - P19
1950년 말,남쪽으로 가는 길이 잠시 열린 틈을 타서 부유한 상인 가문의 아들이었던 열여섯 살의 조셉은 북한군에 징집되지 않으려고 피란길에 올랐다. 한데 어린 조셉이 한반도 최남단의 부산에 도착하고 몇 주 뒤, 전쟁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고, 그는 어머니와 여섯명의 형들, 누이둘,평양 근처에 있던 고향 집을 다시 보지 못했다. - P21
한때 응석받이였던 10대 소년은 전쟁 피란민으로 전락해서쓰레기를 뒤져 먹고 추운 해안에서 잠을 청했으며 지저분한 수용소에서 지내며 이성도 도덕관념도 잃어버린 나이 많은 피란민들에게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난1955년, 어린 아내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돈 한 푼 없고 도움의 손길도 없어서, 그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 - P21
대학도 다니지 못했다. 삯을 받고 미군의 심부름을 했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낮에는 음식 행상을 하는 틈틈이 사전을 통해 독학으로 영어를 익혔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하기 전까지 조셉은 20년 동안 서울 근교의 전구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했다. - P21
케이시는 아버지가 겪은 고난에 대해 무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잃은 것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고,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는퀸스, 지금은 1993년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식탁에만 앉으면 언제나 1953년, 한국전쟁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P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