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잠은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음식과 음료도 마찬가지로). 잠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음식과 음료도 마찬가지로). 시편 127:2 이 말하듯이,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 P88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를향한 사랑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보여 주십니다. 이 가련한종에게 잠을 주신 것입니다. 다음은 음식입니다. - P89
비쩍 마르고 늙은 까마귀들이 물어다 주는 고깃덩어리가 아닙니다. 가난한 이방인 과부가 날마다 대접하는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도 아닙니다. 이번에는 천사가 메뉴를 준비하고 식사 시중까지 듭니다(이것은 하나님이 적어도 한동안엘리야 곁에 계셨다는 뜻입니다). - P89
엘리야가 순종하던 시절, 하나님은까마귀와 과부를 통해 그를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엘리야는 불순종하고 절망에 빠져 사명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천사를 보내 갓 구운 빵과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주십니다. 얼마나 부드러운 손길인가요! 지금 하나님은 사실상 자신의 종에게 어머니 노릇을 하고 계십니다. - P89
성경에서 시내산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특히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기사들에 자세히 나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큰 능력과 많은 표적으로 스스로를 계시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합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P90
시내산에서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을 주셨는데, 그들이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그분의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출19:4-6). - P90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성막을어떻게 만들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는데, 성막은 하나님이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자 그들을 다른 모든 민족과구분하는 표식이 되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율법, 곧 ‘토라‘torah를 주셨는데, 토라는 구속받은거룩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지침이나 지시 사항을 의미했습니다. 시내산은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구속받은 백성으로 태어난 곳이었습니다. - P91
"이곳에서 상황을 새롭게 보아야 한다. 이곳에서 내가 누구인지 다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며, ‘스스로 있는 자‘다. 이곳에서 네 백성을 내 눈으로 보고 그들을 향한 내 목적, 그들을 통해 이루려는 모든 민족을 향한 내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곳에서 내 예언자로서 네 소명이 무엇인지를, - P91
"돌아가라." 하나님과 함께하고, 승천산으로 돌아가서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28:18-19). 약속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하셨고 예수님이 자신의 수많은 종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 P92
하나님이 이렇게 부드럽게 물으실 때(우리의 마음에서든, 지각 있는 친구나 목회자의 충실한 사역을 통해서든) 우리에게 회개가 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연민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이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드러운 치료법입니다. 그분은 - P96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사 42:3) 멍든 그리스도인을 거친손으로 더 심하게 때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부드럽고일관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일련의 질문 과정을 통해 우리를다시 온전하게 하시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대답이 회복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P96
엘리야는 무너지고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섬김의 자리에서 몰아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위협에 맞서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네고향 디셉으로 돌아가라."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추슬러 사명의 자리로 돌려보내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처음보다 훨씬 큰 사명을 맡기십니다(이것도 전형적인 하나님의 모습이지요). - P97
"엘리야의 사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수백 년 후 또 다른 ‘엘리야‘, 곧 세례 요한을 보내 또 다른 ‘엘리사‘, 곧 예수님(그 이름의 뜻 또한 ‘하나님은 구원자다‘ 이신)의 길을 준비하게 하실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 P98
바로 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약점을 아시며, 우리가 연약해 피로 실패하고 패배할 때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부드러운손길로 회복시키고 다시 확신을 주시어 그분을 위해 새롭게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 P98
전도서 저자(책 첫머리와 말미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코헬렛‘(Qoheleth, 전도자)이라 부르는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코헬렛은 사람 이름이라기보다 직업이나 역할을 지칭하는 명칭에 가깝습니다. 교사, 철학자, 현자, 조언자처럼 말이지요. - P101
코헬렛은 심하게 갈등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 분이며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는 ‘지혜자‘, 곧 잠언에 나오는 것과 같은 지혜 전승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마음으로 아는 진리와 주변 세상에서 보는 현실을 조화시키려고분투하는 사람입니다. - P101
그는 한 분이며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는 ‘지혜자‘, 곧 잠언에 나오는 것과 같은 지혜 전승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마음으로 아는 진리와 주변 세상에서 보는 현실을 조화시키려고분투하는 사람입니다. - P101
그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다 극도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는 긴 탐구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헛됨과 무의미, 곧 ‘헤벨‘ hebel로 끝났습니다. ‘헤벨‘은 전도서 전체에서 되울리는 용어이며, 무의미(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부터 덧없음(연기처럼 그 무엇도 지속되지 못한다), 불합리 (어떤 것들은 그냥 미쳐 돌아간다), 수수께끼(어딘가 반드시 의미가 있겠지만 찾을 수가 없다)까지 다양한 풍미를됩니다. - P101
그는 살아 계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성경적 신앙과 세상이지금처럼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지금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예전히 세상 속에 계시고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주관하십니다. 기본적으로 코헬렛은 창세기 1-2장과 3-11장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 P102
생명은 선하며 하나님은 우리가 삶을 누리도록 허락하십니다. 코헬렛은 이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창세기 3-11장의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인간의 죄와 사탄적 악이 우리 본성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역사와 세대가 거듭될수록커지면서 사회와 문화를 더럽히고 창조 세계를 해칩니다. 바로이것이 코헬렛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 P103
이 세상은 헛되고 부조리하며 불의하고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 너무나 많을 뿐아니라, 모든 것의 끝에 죽음이라는 (그가 볼 수 있는 한에서) 궁극적 현실이 기다려 죽음이 삶의 모든 기쁨과 성취를 무의미하게하는 것만 같습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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