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을 소망하며 기다린 끝에 이삭이 태어나 기쁨과 웃음이 넘쳤습니다(21:1-7). 물론 그 후 이스마엘과 하갈을내보내야 하는 슬픔과 아픔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과 축복의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적잖게 위로하셨지만, 그래도 아브라함은 첫째 아들을 잃는 슬픔과 아픔을 겪었습니다(21:8-20).
그런데 "이 일들 후에" - P2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우리 독자들은 이것이 시험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브라함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하지않으시라는 것을 알지만 아브라함은 몰랐습니다. 이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시험일 뿐임을 아브라함이 알았다면 진짜 시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뒤이어 일어날 일들은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 P23

창세기 22장과 비슷하게,
욥기 1-2장을 읽는 사람들은 욥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시험은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 P23

욥은 하나님에게 엄청나게 복을 받아 큰 부자가되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어찌 까닭 없이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질문은 욥의 순전함(청렴, 정직)과 하나님의 지성을 알아보려는 시험이었습니다.  - P23

욥이 경건하고 의로운 것은 오로지 그로 인해 얻는 것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어쩌면 이기적인 예배자에게 놀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실까요? 사탄은 하나님을 재우칩니다.
"에게 주신 복을 거둬들이세요. 그런데도 욥이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지 보시라고요!" - P23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진정 하나님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가 받은 모든 복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더없이 귀한 것을 모두 되가져가시면 어떻게될까요? - P24

"내가 여기 있나이다." 히브리어로 한 단어인 이 말은 이야기의 세 핵심 포인트인 1, 7, 11절에서 구두점을 찍습니다. 그 각각이 의미가 깊기 때문입니다.
●첫째는(1절) 하나님께 하는 대답이며, 도전과 시험을 설정합니다.
●둘째는(7절) 이삭에게 하는 대답이며, 견딜 수 없을 만큼 시험에 강도를 더합니다.
●셋째는(11절) 하나님의 사자에게 하는 대답이며, 시험을 해결하고 큰 안도감을 안겨 줍니다. - P2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부디] 데리고(please take, 원문은 동사의 정중한 형태이며, 명령이 아니라 요청입니다).
"주님, 어느 아들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제게는 아들이 둘있습니다."
네 독자를.
"네, 알겠습니다. 이스마엘은 떠났으니 하나만 남았네요."
네가 사랑하는 이삭을. - P25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나무를 쪼개어 가지고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3절)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두 번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뒤죽박죽입니다(나무를 먼저 패고나귀에 안장을 지워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두 사내(‘종‘)는 왜 데려가는 걸까요? 이삭의 길동무였을까요? (이 무렵 이삭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청년이었습니다)  - P28

왜 아브라함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하며 자신의 의도를 두 종에게숨겼을까요? 이들이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리라는 낌새를 채고자신을 막으려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브라함은 무슨 뜻으로이렇게 말했을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않았던 것일까요? 심지어는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가 암시하듯이 ‘부활‘을 바랐을까요?(롬4:18-21; 히 11:17-19)  - P29

 아니면 아브라함이 자신만 이해하는 은밀한아이러니를 사용해 이를 악물고 (이삭에게) 진실을 얼버무린 것일까요? "하나님이 어린 양, 즉 내 아들을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삭은 어떤가요? 이삭은 아버지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뿐입니다. 이삭은 진실을 알아채기 시작했을지라도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보다 튼튼한 다리로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대신에 이삭은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8절) - P31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틀림없이자발적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삭은 어린아이가 아니라팔팔한 청소년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통스런 아버지의 행동에 복종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다음 순간, 아브라함이 칼을 치켜들었습니다. 아들의 목을 찌를 태세입니다. 바로 그때! - P3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1-12절)
"내가 이제야... 아노라." 하나님은 자신이 한 시험의 결과를알게 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숱한 의미를 내포하는이 표현은 성경에서 깊고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기서는아브라함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을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관계에 더없이 진심이었다는 뜻입니다. - P33

화자는 이것을 신인동형론적표현으로 우리 앞에 간단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이제야... 아노라."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나 미리 아심이라는 문제로 넘어가지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학적 정확성의 문제, 곧 하나님이 ‘이제야 안다하시는 것을 그분은 이미 틀림없이 알고 계셨다라는 문제로 제기한다면 이야기의 힘과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핵심은 곧이어말씀하시듯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실제로 양쪽 모두에게 새롭고 더없이 높은 수준으로 옮겨 갔다는 것입니다.  - P33

위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하셨던 약속을 지금 맹세로 재확인하시는 이유가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끝납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because you have done this …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because you have obeyed me."이로써 하나님의 약속 및 그 우주적 성취와 아브라함의 믿음을뒷받침하는 증거인 그의 순종이 연결됩니다(아브라함의 순종이 그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데는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와 야고보도 동의할 것입니다. 롬 4:17-21; 히 11:17-19; 약 2:21-24). - P35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이 증명된 ‘믿음의 순종‘을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붙박습니다.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훗날 바울이 표현한 ‘하나님의 복음‘은하나님의 무조건적 약속과 더불어 ‘믿음과 순종‘이라는 적절한언약적 반응에 뿌리내립니다.  - P36

이런 이유로,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 메시아 예수를 통해 약속하고 성취하신 것과 연결하면서,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모든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민족 중에서 믿음의 순종을 일으키기 위해서)-본질적으로 아브라함의 언어입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롬 1:5; 16:26). - P37

이 모두에서 아브라함이 모델이고 전형입니다. 창세기 22장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절정을 이루고, 여기서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마땅한지를 보여 주는 원형으로 그려집니다.  - P39

아브라함은이스라엘의 ‘조상‘father 일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순종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관계의 본질로 이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 본보기입니다. - P39

이스라엘도 거듭해서 시험받을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이들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 일쑤였지요.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걷는 대신 불신앙과 반역의 길로 엇나갔는데, 비극적이게도일찍이 시내산에서부터 엇나갔을 뿐 아니라(출 32장) 그 후에도끈질기게 엇나갔습니다.  - P40

후에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 즉 시온이 바로 모리아산이라고 밝힙니다(대하 3:1).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앞서 이곳,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신 짐승으로 드린 제사는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드릴 제사를 예표합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실 유일한 제사가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그것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행하며 그분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 P40

이와 같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이야기 속을 걸을때는 시내산과 시온의 메아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시내산 율법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고 시온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본을 보였습니다. - P41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창세기 22장에 기록된이 이야기를 해석하면서,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하려는 성부의자발적 의지(willingness, 아브라함이 그 모델)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는 성자의 자발적 의지(이삭이그 모델)를 두드러지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분리할 수 없는 둘을 단단히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 P41

베들레헴에서 시작해 광야와겟세마네를 거쳐 갈보리까지 말입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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