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들은 대개 "서신(편지)"이라고 불린다. 이는 주석서들이 대개 요한계시록을 서신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2-3장의 본문들로 이루어진 설교들 역시 흔히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서신" 혹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서신" 등의 제목으로 언급된다.  - P23

그러나 사실요한계시록 2-3장에는 당시 서신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전형적인 특징이 단 하나도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그 장르를 "서신"으로 구분할 근거는상당히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 P23

하지만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설교가 서신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규정해도, 그 대신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가 다소 모호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상 서신", "선지자적 서신", "황제의 칙령" 등의 장르, 혹은 그레코로만 수사법(유형) 등을 포함한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이와 같은 분류의 각 항목에 대한 설명과 평가는 Aune 1997: 119, 124-29을 보라).  - P26

그렇지만 가장 좋은 선택지는 바로 일곱 설교를 "예언 신탁" (prophetic oracles), 즉 영감 있는 선지자가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한 특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전달한 메시지로 파악하는 것이다(Hahn 1971: 372-94; Müller 1975: 47-100; Aune 1997: 126; Beale1999: 225; Keener 2000: 105; Wilson 2002: 258).  - P26

구약성경에 평행구문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설교를 예언 신탁으로 구분하는 것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예컨대, 발람은 이스라엘에 관해일곱 개의 축복 신탁을 말했다(민 22-24장),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과 이웃 나라들에 대해 일곱 개의 심판 신탁을 선포했다(암 1-2장). 또한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압박하는 적대 국가들에 대해 일곱 개의 심판 신탁을 선포했다(겔 25-32장).  - P26

그리고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도 평행 구절이 나오는데, 두 선지서 모두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과 민족들을 향한 일곱 개 이상의 예언 신탁을 포함하고 있다(사 13-23장, 렘 46-51장을 보라). (예레미야의칠십인역 본문은 마소라 본문 [Masoretic Text]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타데 레게이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 P27

요한계시록이 구약성경을 암시하는 본문으로 가득하다는 점은 2-3장의 일곱 설교가 구약성경의 예언 신탁을 본보기로 삼았을 것이라는 추론에설득력을 더해준다.
예언 신탁을 현대적이면서 더욱 청중 친화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설교"가 된다.  - P27

앞서 제시한 예언 신탁의 정의를 고려할 때 "설교"라는 단어는 오늘날의 청중들이 2-3장의 일곱가지 본문을, 선지자 요한이 소아시아에서살아가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주한 특정한 상황을 다루며 작성한 일곱 편의 설교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예언 신탁을 "설교"라고 부르고자 한다. - P27

그리스도의 칭호는항상 타데레게이 (tade legei, "그가 이같이 말씀하신다" 문구 뒤에 나온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문구는 칠십인역에서 250회 이상 나타나는데, 그 표현의(히브리어) 전체 문구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이다. 이는 흔히 예언 말씀의 도입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주후 1세기 말 이 표현은 고어가되었고, 당대 사람들에게는 낡은 옛 표현으로 들렸을 것이다. 마치 영어의고어 표현인 "이같이 이르시되"(thus saith)처럼 들렸을 것이다(Aune 1997: 141). - P28

예를 들어, 건강한 교회인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신앙으로 인해 죽을 수도있는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승리 문구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2:116) 건강하지 않은 교회인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는데, 이후 먹을 것으로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춰진 만나를 줄 것이다"(2:176).  - P31

주 활용했다. 일곱 설교를 교차대구 배열로 파악할 수 있다는 근거는, 두 번째 설교(B: 서머나)와 그에 대응하는 여섯 번째 설교(B‘: 빌라델비아) 간에 존재하는 강력한 평행 관계이다. 두 설교에만 유일하게 책망 단락이 빠져 있다. 또한 두 교회 모두 "사탄의 회당, 즉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않은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 충격적인 표현은 요한계시록 외 다른성경 본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 P35

또 다른 근거로는 교차대구 구조 중앙에위치한 네 번째 설교(D: 두아디라)가 설교들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길다는 사실이있다. - P35

교회를 향한 설교의 보편성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교차대구의 구조는 중앙에 위치한 두아디라 설교를 강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 설교의 중심부에는 복수형으로 "교회들이 지칭되고 있다. "모든 교회들은 ..… 알게 될것이다"(2:236). "들으라" 문구를 제외하고("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3:22) 일곱 설교 전체에서 유일하게 복수형으로 "교회들"을 사용한것은 결코 우연도 아니고 또 무의미하지도 않다.  - P36

전략적으로 복수형 "교회들"을 설교 한가운데에 위치시킨 것은, 각 교회가 다른 교회들에 전달된 설교 역시 주의 깊게 들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또한 복수형 "교회들"과 더불어 형용사
"모든"이 있음에 주의하라. 이러한 요구는 "들으라" 정형 문구로 재확인된다. "들으라" 정형 문구는 각 설교가 해당 지역 교회뿐만 아니라 더 많은 청중들을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 P36

7이라는 숫자 역시 각 교회를 향한 메시지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분명 7이라는 숫자보다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는 그들 외에도다른 중요한 교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드로아(행 20:5-12; 고후 2:12), 골로새(골 1:2; 몬), 히에라볼리(골 4:13) 등에 교회들이 있었고, 마그네시아와 트랄레스(이그나티우스가 약 10-15년 후에 서신을 보낸 교회들) 등에도 교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P36

7이라는 숫자를 선택한 것은 거의 확실히 그 숫자가 전형적으로 완전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며, 여기서는 일곱 교회의 보편성을나타내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 숫자 7은 서술된 대상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일곱 교회를 대상으로 한 것에 담긴 의미를 초기 교회가 이해한 방식이다(Aune 1997: 130-31을 보라).  - P36

이를테면, 주후 2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은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요한은 비록 일곱 교회를 향해 묵시록을 썼지만, 그럼에도 모두를 향해 말하고 있다."  - P36

주후 260년경 교부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요한계시록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요한] 한 교회에 말한것은 곧 모든 교회에 말한 것이다" (Commentary on Revelation 1.7). 이와 같이 일곱 교회가 보편적으로 전체 교회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꽤 이른 시기부터 널리 받아들여졌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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