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연산군의 진정한 목적은 이런 정당하고 일반적인 취지와는전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벌이는 수많은 유희와 음행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접근과 시선을 차단하려는 노력이 집중된 장소는 당연히 궁궐(특히 창덕궁)과 그 주변이었다(그뒤금표를 설치하면서 그런 지역은 경기도 일대로 확장되었다).  - P195

국왕은 음탕한 놀이를 무도하게 하고 불시에 나인을 후원에 모아 광란의가무를 매일 즐겼는데, 외부 사람들이 그것을 알까 두려워 궁궐 주변에 접근하는 것을 점차 엄격하게 금지했으며 결국은 산 아래 인가를 철거하기에이르렀다(8.10.21 경신)  - P196

이런 차단 중에서 가장 대대적으로 시행된 조처는 궁궐 주위의 민가를 철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성격상 백성에게 더욱 유해한 폭거였다. 바로 앞서 인용한 사료가 지적했듯이, 민가의 철거는 접근의 차단이 다다른 최종적인 결과였다. - P197

살던 집에서 쫓겨난 백성들은 도성 부근의 빈집을 원하는 대로 임대4해 거처케 했지만(9.11.5무진 6기사) 그들의 고통과 피해는 자명했다. 시험들도 대부분 반대했다. 의정부는 "지금 백성들은 먹고살기도 어려우니철거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쫓겨난 백성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 재목을 길옆에 쌓아두고 초막을 지어 살고 있으며 원망과 고통이 매우 크다"
고 진언했다(8.2.25 무진). 사헌부도 100여 채나 되는 민가를 철거한 것은역대에 없던 일이라면서 반대했다(9.11.16기묘).  - P198

이처럼 연산군은 궁궐과 인접한 주요 지역에 통행을 금지하고 민가를 철거함으로써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데 충분히 성공했지만 이런물리적인 조처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언 자체를통제하려는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연산군의 가장 거대한 폭정인 갑자사화는 이런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촉발되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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