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의 처리 방향을 놓고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했던 명의입장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은 호부시랑 필자업이었다. 그는 <조선정형소라는 글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인조 등이 광해군을 쫓아낸 것은 난신적자의 행위‘ 이므로 치죄해야 하지만, 후금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의 지원이 절실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P47

 필자엄은 결론적으로 ‘인조를 바로 책봉하지 말고, 정변의 정당성 여부를 충분히 따져보고 조선이 후금을 토벌한 공적이 드러난뒤에 책봉하자‘고 주장했다. ‘찬탈‘을 주도한 반정세력의 명분적 약점을 질타하여 ‘종주국‘ 명의 위엄을 드러내 조선을 후금과의 싸움에 끌어들여 활용하자는 방안이었다. 말하자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 P47

1623년 윤10월, 모문룡은 위의 조사 결과를 명예부에 보고했다.
예부상서 임요유는 모문룡의 보고를 토대로 같은 해 12월, 황제에게인조를 책봉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강상과 명분을 고려하면 조선의정변 주도자들을 토벌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모문룡을 통해파악한 조선의 여론과 명이 당면하고 있는 후금의 위협을 고려하면
‘조선 문제‘를 명분과 원칙 차원에서만 처리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P49

임요유는 인조를 임시로 ‘조선 국왕으로 임명하되 그가 모문룡을 도와 후금을 토벌하는 공을 세운 뒤에 정식으로 책봉하자고 건의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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