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노사신은 "당초 우리가 아뢴 것은 사초의 일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곁가지로 뻗어나가 사초에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도 날마다 많이 갇히고 있으니 우리의 본의가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저지했다. 유자광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죄목을 확정하는 날 노사신의 의견만이 달랐다. (……) 국왕은 유자광 등의 의견을 따랐다 (4.7.29계해). ‘ - P167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는 우선 신수근이 기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유자광과 이극돈은 김종직·김일손에게깊은 개인적 원한이 분명히 있었지만, 신수근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증오한 대상은 자신의 출세에 반대한 삼사였다. 즉 신수근은 사초 문제를들으면서 원한스럽게 새겨두었던 삼사의 지난 행동을 떠올렸던 것이다. - P168
사화의 확대에 유일하게 반대한 노사신의 발언도 중요하게 음미할필요가 있다. 그는 사초 문제로 촉발된 사건이 유자광의 주도로 사초와무관한 사람들까지 대거 투옥되는 사태로 번지자 그런 변질을 강력하게저지했다. 그가 보호하려던 부류는 "조정에서 청론하는 선비들", 즉 언관이었다. -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