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요한복음은 ‘창조‘와 ‘새 창조‘의 이야기다. 요한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이 선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이 악과 불의로 망가진 사실에 슬퍼하시며, 그것을 바로잡기로 하신 이야기를 신중하고도 세심하게 들려준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정리하시고 정의를 실현하기로 하셨다. - P38

실제로, 요한복음 전체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 요한복음은1-12장과 13-20장 이렇게 상반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21장은 주요 부분이 완결되고 나서 나중에 추가된 일종의 후기 (인 것같다. 이 모두는 요한이 새 창조에 관해 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옛 창조를 바로잡고, 그 한가운데서부터 새 창조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 P38

너무나 유명하고 웅장한 말씀("처음에 그 말씀이 계셨다")으로 시작하는 요한복음 도입부(요 1:1-18)는 창세기와 출애굽기, 시편과 이사야서를 떠올리게 한다. 창조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 1:14), 혹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여기서 사셨다‘라고 번역한 헬라어 ‘에스케노센estenosen은 문자적으로 ‘텐트를 치다‘ 혹은 ‘캠프를 설치하다‘라는 뜻이다.)  - P38

마치 광야의 성막에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신 것처럼 말이다(출 40장). 요한은 인간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살아 있는 계시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는 세대‘가 현재에 도달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와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영생‘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에게 잘못된 인상을 준다.) 따라서 예수님은세상을 다스리던 반창조세력을 물리치신다. 예수님이 그 일을 이루셨다는 표시는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자신의육체에 새 창조를 시작하신 때에 나타난다.이것이 요한이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다. - P39

 "매우 선하신 하나님이 매우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다" 는 것이 핵심이다. - P40

기독교의 정의 개념이 다른 정의 개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정의를 불러오는 일에 참여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할 일을 마치신 후에,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증언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정의가 태어나게 하실 것이다. - P41

정의는 다름 아닌 ‘회복된 창조세계‘다. 만물이 제자리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알 수있듯이, 정의는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정의란 창조 세계가 처음에 창조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장소에 마침내 도달하는것‘이다.
- P43

부활은 우리를 에덴동산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이 동산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신 사건은 에덴동산을 희미하게나마 떠올리게 하지만 말이다. 부활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준다.  - P43

더는 죽음이 없는 세상, 새로운 종류의 정의가 우리를 번번이실망시키는 오래된 정의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세상. 예수님을따르는 사람들이 성령의 부름을 받아 새 창조의 백성, 정의의 백성,
불의가 여전히 지배하는 세상에 희망을 주는 백성으로 훈련되는세상. - P43

부활과 함께 그 이정표는마침내 바로잡혔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의를 이기고 승리하셔서, 이제 그 제자들을 보내사 새 창조의 다양한 작업을 실행하게하신다. 회복하고 치유하며 생명을 주는 정의야말로 그 과제의 핵심이다. - P45

신약 성경을 언뜻 보기만 해도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책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세 복음서는 일정한 양식을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와 돌아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일을 묘사한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그 기간에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계속 왔다갔다 하신다.  - P47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자세히 이야기했고, 요한은 마가처럼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산상수훈과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나머지 복음서에서 크게 사랑받는 본문이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처럼 요한복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순간 중에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장황하게 말씀하시는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짧고 함축적인 말씀들과는 사뭇 다를뿐더러, 산상수훈처럼 특히 마태복음에 나오는 한두 개의 긴 연설과도 형식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 - P47

영어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love‘ 하나뿐이다. 사랑을뜻하는 단어가 최소한 네 가지가 있어서 성적인 사랑, 장소나 사물에 대한 애정, 인간의 우정,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 등을 구분한 헬라어와는 대조적이다.  - P5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희생적인 사랑을 뜻하는 일반 용어 ‘아가페 agape‘를 가져다가 거기에 새롭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윤리나 덕에 대해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언어학적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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