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타인‘이 지옥이라고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라서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내게는나만의 지옥이 따로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조립식 가구 제품에 들어 있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설명서가 지옥이다.  - P11

가장 먼저퍼즐 조각 같은 부품들을 바닥에 최대한 잘 펼쳐 놓는다. 부품에무릎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바닥에 어정쩡하게 자리를 잡고앉는다. 설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 본다. 혹시 제조사에서 다른 제품설명서를 잘못 넣은 건 아닐까? - P11

이렇게 해서 다시 장 폴 사르트르와 이 책의 요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은 세상이 이치에 맞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기적으로 한다.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일종의 표지(혹은 단서)가 몇가지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 표지들이 가리키는 듯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 P12

반드시 딱 들어맞아야 하는 무언가가 
들어맞지 않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왜고칠 수 없는지, 왜 바로잡을 수 없는지, 왜 옷장을 조립하지 못하는지,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말 그대로 그게 뭐가 됐든 있어야 할
‘의미‘를 왜 있게 만들지 못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어느 순간, 부품을 몽땅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될지도모른다. - P12

 마찬가지로,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상처 주며 가장 중요한 관계를 영원히 망가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르트르가 부품 전체를 창밖으로 던지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인생이 ‘신물 나는 농담‘이라고 했다. - P13

그러면 우리는 이 이정표들, 마치 조립식 가구 설명서의 그림처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이세상의 특징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이해한다"
라는 말은 삶이 무엇인지 이해할 뿐 아니라 ‘사물의 존재 의미를 이해한다‘라는 의미에서), 그 삶에 창의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앞으로 나아가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는 의미다. - P13

기독교 메시지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우리 삶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기독교 메시지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너무 큰 작업이 될 터이므로,
여기서는 요한복음이라는 한 문서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한복음은모든 사회의 모든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런 질문들에 예리하고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신약 성경의 네 번째 책인 요한복음은 2천 년 가까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 P15

지혜롭고 영적 통찰력이 뛰어난 위인들은 요한복음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얻었다. 정통한 사상가들도 요한복음을 숙고했다. 수많은 설교자가 요한복음을 가르쳤다. 매년 12월, 여러 성탄 전야 미사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요한복음 첫 줄을선포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주 많은 뜻을 내포한 심오한 말씀이다. - P15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줄곧 이런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 안에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그분이 만사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이다.  - P16

 고대 로마인들은 자기네 사법 제도가 모든 것을 다 잘 설명해 준다고믿었다. 마키아벨리는 순전한 권력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많은사람이 그의 사상을 실행에 옮겼다. 설령 그 권력을 실행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야 하더라도 말이다. 미국은 유서 깊은 ‘자유‘
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한다.이런 것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대부분 (내가 산 조립식 가구처럼) 이것들을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 P17

범죄소설의 핵심 (고도의 지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현 상태를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은 ‘마지막에 반드시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의문이 풀린다. 살인자를 찾아서, 대개는 체포하고 고발하여유죄를 선고한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는 범죄소설에서 잔인하거나 소름이 끼치는 부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마지막에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만족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P25

몇몇 국가에서 ‘회복적정의‘를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대표적인 예가 마오리 전통문화에기반하여 회복적 정의를 세우려 한 뉴질랜드인데, 창의적이고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의 사법 제도는 가까이에서들여다보면 정의롭지도 체계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이것이다. 정의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정의를 실천하기란 몹시 어렵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P27

다시 말해, 우리는 ‘정의‘가 삶의 토대나 핵심을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사실을 안다. 동시에, 그것이 ‘망가진‘ 이정표인 것도 안다.
이상에 맞추어 살아가고자 아무리 몸부림쳐도 실패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많은 불의를 만들어 낼 때도 있다. 수많은 문제의 핵심에 있는 이런 긴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27

하지만 요한복음의 핵심에는 마침내 세상이 제대로 책임을 추궁당한다는 메시지가 있다. - P27

정죄는 이것이다. 곧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가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 비난받을까 두려워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와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이 분명하게드러난다
(요3:19-21).
- P28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셨다는 요한복음3장16절의 유명한 구절을 아는 사람은많지만, 그 말씀 직후에 정의에 대한 이런 강력한 말씀이 나온다는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하나님의 빛은 어둠 속에서저지른 악한 행위를 드러내실 것이다.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 P28

요한복음은 ‘온 세상이 결국 어떻게 바로잡힐지를 이야기하는 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정의‘에 대한 책이다. 요한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정리하고 바로잡으시는 데 얼마나 열정이 많으신지 들려준다. 그리고 그분이 하신 일이 어떻게 세상을 바로잡는지 들려준다. 이 큰 이야기를 마음에 두지 않고 요한복음을 읽으면, 우리가 정당하고도 올바르게 원하고 기대하는 사랑과위로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 - P29

기독교에서 가장 큰 구원의 메시지 중 하나는 예수님도 친히 이런종류의 불의를 경험하셨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닐지 모르지만, 이는 하나님이 피해자 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결국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 P30

질문을 다른 차원으로 바꿔 놓았다. 44절에 나오는 ‘마귀‘는 ‘고발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사탄ha-satan‘을 떠올리게 한다. 
요한복음중간 장들에서 볼 수 있는 아이러니는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그분을 고소하려는 대중이 바로 그 ‘고발자‘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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