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함,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증함입니다. 옛 사람들이 이것으로써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나타난 것이 보이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 P326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에게 보응해 주심을 마땅히 믿어야 합니다.  - P326

7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외하는 자세로 방주를 만들어 그의 가족을구원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는 세상을 심판하고 믿음에 따른의로움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 P326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재산으로 받게 될 곳을 향해 떠나라고 부름받았을 때 순종했습니다." 12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떠났습니다.  - P328

12. 아브라함은 "부름받고 순종해서 떠났다" 라기보다 "떠나라고 부름받고 나서 순종했다". 대부분 우리말 성경은 전자의 취지로 번역했고 대부분 영어 성경은 후자와 같이 옮겼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부정사의 기능(목적)에는 후자가 더 어울리며, 창 12:1에도 "떠남을 위해 부름받음"이 기술되어 있다. - P329

18. 대부분 우리말 성경이 "나그네"로 번역한 명사 parepidémos는 어원적으로 ‘집에 얹혀 잠시 기거하는 사람‘이다. 우리말 ‘나그네‘가 낭만적 느낌을 준다면 일부 영어 성경이 옮기듯("exile, ESV /
"refugees," GNT) 어쩔 수 없이 타인, 타국에 기거하게 된 떠돌이를 의미한다. 6:18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피하여 가는 자들"이라고 묘사한 것과도 통한다. - P331

22. 칠십인역 창세기 21:12.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문장을 직역했다. 정확한 번역은 아마 《개역개정)의 창세기 21:12일 것이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 P331

23. 칠십인역 창세기 47:31의 인용. 히브리어 원문에는 "지팡이 끝" 대신 "침상 머리맡으로 되어 있다.
창 47:31 의 현대어 역본 중에는 NIV만이 칠십인역을 따라 "as he leaned on the top of his staff" 로 옮겼다. - P331

한국의 개신 교회는 개혁파 전통(the Reformed tradition)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짧은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한다. 안타까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잘못된 성경해석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 P13

문맥과 상관없이 한 구절만 떼어서 묵상하고 적용하려 한다든지, 성경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영해(解)라는 이름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는 내용이라도 자신의 교파나 전통에 맞지 않으면 백안시한다.  - P13

한쪽으로 치우친 혹은 근시안적인 성경해석을 극복하는 방법이 성경통독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혹은 마태복음 등성경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는 것이 좋다. 여의치 않다면 하나의 의미 단락이 맺어지는 데까지 읽어서 한 절, 한 절이 놓인 큰 문맥을 붙잡아야 한다. - P13

 그리스어 원문에서 번역한 새로운 우리말 번역을 본문으로제시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보다 정확한 번역을전달한다는 의도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번역(주로 《개역개정판》이겠지만)을 접한 독자들이 두 번역을 비교하면서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묵상하도록 돕는다는 의도이다.  - P14

마지막 부분인 ‘히브리서 번역과 번역 주‘에서 제시한 히브리서 ‘번역‘은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역본과 다르게 번역한 만큼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P14

‘번역 주‘는 두 가지 내용을 주로 다룬다. 하나는 그리스어 원문의 어휘와 어법 검토이다.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다 보면 하나의 단어나 표현을 하나의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원문이 지니는 어원적 의미와 거기서 파생되어 다양한 용례에서사용된 의미들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 P14

번역 주의 또다른 기능은 우리말 역본 열 개와 영어 역본 아홉 개를 비교·대조하는 일이다. 기존 역본에 명백히 드러났거나 혹은 잠재된 여러 문제를 짚어 봄으로써 잘못된 번역이 낳은 잘못된 해석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있을 것이다. 여러 역본을 함께 두고 보면 한 역본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않던 의미와 느낌, 뉘앙스까지 포착할 수 있는 유익을 얻는다.
각기 다른 역본의 특성을 이해하고 비교하면서 읽으면 원문의 다채로운 의미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15

히브리서를 두고 "신약의 감추어진 두 개의 보석‘ 중 하나라고 부르는 주석가가 있다. 
 "Two hidden treasures"; 나머지 하나는 야고보서이다. L. T. Johnson, The New Testament: A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niv. Press, 2010), 84, - P15

또 열세 장 분량의 이 서신이 "1세기 기독교 문현 중 가장 고상하고 세련되었으면서도, 아마 가장 수수께끼 같은(enigmatic) 책일 것이다"라고 평한 주석가도 있다.  - P16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3세기 교부오리게네스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일까를 논의하다가 이런 좌절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놀랍게도 이 고백은 지금까지도 히브리서를 연구하는 대다수 학자들이 반복하고 있다. 신약 27권 중에서도 히브리서는 특히 미궁에 싸여 있다. - P17

그러나 히브리서를 바울 저작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다른 바울서신과 달리 바울이라는 이름이나바울의 개인신상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발견되지 않는다. 둘째,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음을 강조하는 바울과 달리, 히브리서의 저자는 주님에 대해서 간접적으로(히 2:3) 전해 들었다.  - P17

셋째, 그리스어 어휘와 문체에서 바울서신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넷째,신학적 강조점이 다르다. 바울은 한 번도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부른 적이 없고 승천보다는 부활, 혹은 대속적 죽음에 무게를 두었다.
백성이 피로써 깨끗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는 제의적 관념이 바울에게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바울이 거듭 강조했던 이신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의 활동, 영과 육의 대조적 현실 등은 히브리서에서찾아보기 힘들다. - P18

셋째, 누구에게 썼는지도 불분명하다. 유대그리스도인이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내용 중이 많지만 동시에 아주 헬라적인 성격도 띤다. - P16

신자들이 천상의 성소로 나아갈 수 있게된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곳으로 길을 내셨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보다는 승천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옛 언약과새 언약의 관계, 더 나아가 기록된 성경과 예수를 통한 계시와의 관계도 잘 드러나 있다. - P16

종교개혁자들은 하나같이 바울 저작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칼뱅은 그의 히브리서 주석 첫 장에서 본서의 저자가 바울이 아님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 P18

틴데일은 히브리서 저자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디모데는 물론 바울과도 가까운 사도급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P18

마르틴 루터는 사도행전 18장 24, 28절을 근거로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확신했다.그 밖에 히브리서의저자로 거론된 인물은 바나바, 누가, 실라, 빌립, 로마의 클레멘트,
브리스길라 등이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정체를 확정할 수 없다.  - P18

디모데를 알고 있었고 바울의 제자 혹은 동역자 그룹에속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칠십인역에 조예가 깊으면서 플라톤적 세계관에도 익숙한 헬라계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 P18

우리말 성경 중 상당수가 채택하고 있는 제목 ‘히브리서는 그리스어로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뜻이다. 이 제목만 보자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독자라고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의 대부분 책이 그렇듯 이 제목도 후대의 독자들 또는 필사자들이 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에 근거해서 독자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 P18

4. 어떤 주석가들은 칠십인역 창 14:13에서 히브리어 "히브리인"("ibri)이 그리스어 "나그네"(peratēs)로번역된 사실을 들어,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킬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칠십인역 번역자의 표현 대신 ‘히브리인들‘을 그대로 음역해서 썼기 때문에(hebraioi) 그 용례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 P18

게다가 일반적인 편지와 달리 히브리서의 저자는 수신자를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독자로 상정할 때히브리서의 내용이 가장 잘 납득이 되는 건 사실이다. 우선 구약성경을 떠나서 히브리서를 말하기는 어렵다. 인용된 구약성경의 양이 매우 많을 뿐 아니라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를 떠받치는 논리 속에 구약성경의 내용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 P19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기본적으로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구도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히브리서의 몇몇 구절이 이 책의 독자가 유대 그리스도인임을 뒷받침한다. "여러 부분으로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옛적 우리 조상들에게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1:1)라는 말을 유대인이아니라면 받아들이겠는가? "아브라함의 자손"(2:16)은 이사야 41장8-9절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8장 6절 이하에 나오는 새 언약의 가치와 기능은 옛 언약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 즉 유대인들에게 가장 적실했을 것이다.  - P19

이렇게 본다면 주독자가 유대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은 개연성이 낮다. 다만 히브리서 어디에서도 독자를 명시하지는않기 때문에 단언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이긴 하되 문화적으로는깊이 헬라화된 디아스포라일 가능성이 높다. - P19

 로마 수신설을 지지하는 또다른 증거는 주후 95-96년 로마의 주교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인 클레멘트 1서인데, 성경 이후 문헌중에서 처음으로 이 편지에 히브리서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 P19

게다가 히브리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박해와 고난의 상황이(6:10-20:10:32-39) 로마 교회의 역사적인 정황과도 잘 들어맞는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히브리서와 로마 교회를 연결해 주는 또 하나의 고리이다(히 13:23; 롬 16:21). - P20

히브리서를 처음 받아 읽었던 이들은 어느 지역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을까? 가장 개연성이 높은 후보지는 로마이다. 13장24절("이탈리아에서 온 이들이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이 종종 근거로 제시된다. 이 구절의 의미는 저자가 로마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 글을쓰고 있었고, 그와 함께 있는 로마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히브리서의 독자에게 안부을 전한다고 이해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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