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상을두미는 종이쪽지를 놓고 한동안 고뇌에 잠겨 있었다. 방금 전 국내성 서문의 수문장이 그것을 가지고 왔다. 그는새벽에 누군가가 문루를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거기에 그 종이쪽지가 묶여 있었다고 했다. ‘헝가역수‘ - P305
수문장이 돌아가고 나서 을두미는 그 네 글자에 담긴 속뜻을 풀기 위해 골몰했다. 형가는 한나라 때의 사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유명한 자객 이름이었다. 그는 전국시대말 연나라 태자가 보낸 자객으로, 진나라 왕인 정(진시황)을 죽이러 가기 위해 역수에서 결의를 다지는 노래를 불렀다. 그것을 일러 ‘역수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역수의 ‘역‘ 자가 종이쪽지에선 ‘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반역을 뜻하므로, - P305
대왕 구부가 국내성을 비운 상태에서는 왕태제이련이나왕손 아기씨인 담덕이 그 표적임에 틀림없었다. ......흐음!" 을두미의 입에서는 저절로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쥘부채로 탁상을 두드리며 심사숙고하던 끝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P306
‘왕손이 위험하다‘ 이렇게 판단한을두미는 종이쪽지를 접어 소매 속에 넣고 부지런히 왕태제 이련이 있는 동궁전으로 향했다. - P306
이련은 얼른 종이쪽지를 펼쳐 네 글자를 읽었다. 동궁빈도곁눈으로 읽고 금세 그 뜻을 알아차린 듯 얼굴색이 변했다. "흐음, 어떤 자들인지 모르지만 대왕 폐하가 없는 틈을 노리고 있는 것 같군요." - P307
이련은 을두미를 바라보다가 그 눈길을 그대로 동궁빈에게로 옮기며 말했다. "동해 고도에 위배된 명림수부에게 사약을 내린 것이 단초를 제공한 모양입니다. 좀 더 두면 그곳에서 곧 세상과 이별하게 될 사람을, 신이 너무 서둘러 사약을 내리게 한 것은 아닌지후회되는군요. 연나부의 준동을 막기 위해 족쇄를 채운다는 것이 그만 - P308
"국상께서 그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도 비밀리에 궁궐밖으로 사람을 보내 무술도장에 있는 유청하를 불러들이도록하겠습니다" "유청하라면?" 이련의 말에 두미가 눈을 빛냈다. "지난번 명의 노인 살해 사건 때 죽은 기찰포교의 동생이 유청하입니다. 사실 그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유청하가 무술을배우는 도장에 도움을 주고 있었지요. 나중에 크게 쓰일 날이있을 것이란 생각에 물적 지원을 해주었는데, 마침 잘되었네요. - P309
그날 밤, 을두미는 대신들이 다 퇴궐한 뒤에도 정전에서 서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바로 사마천의 ‘사기‘ 중 인물열전 자객편에 나오는 형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형가가 역수를 지나다가 읊었다는 ‘역수가‘는 이러했다.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의 강물은 찬데 사나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호랑이 굴을 찾음이여, 교룡으로 들어간다 하늘을 우러른 큰 외침이여, 흰 무지개 이루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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