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서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의 구조를 의미했다. 고린도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린도전서 11:32에 따르면 "세상"은 정죄를 당했으며, 몇몇 본문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은
"멸망하는 자들"이다(1:18; 고후 2:15; 4:3). 그들이 멸망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멸망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6:9).  - P26

이렇게 멸망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믿는 모든 사람은 죄와 정죄함에서 구원을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가져다주었다. - P26

이 ‘의롭다 하다‘라는 동사는 주로 사법적 상황에서 사용되며
‘무죄라고 선언하다‘, ‘의롭다고 여기다‘, ‘무죄 판결을 내리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 P27

바울은 고린도전서 4:4에서, 자기 자신이 의식하는 잘못은 없지만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자이시므로 자신이 무죄라고 느끼는 것이 그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의롭거나 의롭지않다고 선포하실 수 있다.  - P27

이러한 (상당히 일상적인) 말뜻에 비추어 볼때, ‘의롭다‘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완수했고 마땅히 해야 할일을 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불의한 사람이란 마땅히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살지 않은 사람이다.  - P27

고린도전서 1:30에서 선언하는 것처럼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시라는 말은 핵심을 가능한 한 가장간결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의함에도(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가 그들의 ‘의‘가 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겨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같은 논지가 고린도후서 5:21에서도 등장한다.  - P28

 ‘유죄‘이거나 ‘불의‘해서 정죄받아 마땅한 자들이 그럼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무죄 선언‘(의롭다 하심을 받다. 의롭다고 선언되다)을 받는 것이다(그럼으로써 파멸을 피한다).  - P30

이 각각의 경우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해결책이 되는 대리자로서, 하나님은 바로 이 그리스도를 통해인류를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시며, 화목하게 하시고, 구속하신다. - P31

우리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쓴 바울의 편지에서 처음으로 분명히공식화된 칭의 교리를 만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2:16),  - P32

이 선생들에게 할례의 요구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는 인식과 충돌하지 않았다. 이들 역시 유대인을 택하셨던 하나님이 그들에게 메시아를 보내셨다는 ‘복음‘(참고갈1:6)을 선포했다. 이 선생들도 모든 이가 예수를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아의 오심은 유대적 소망이었다. 그 성취가 유대적 생활방식을 버려야 할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 P33

유대교가 모세언약과 그율법 아래에서 사는 삶을 의미한다면, 이 교사들은 최근에 유대교내에서 형성된 분파를 다만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점에서(그 점만) 다른 유대교와 구별되는 분파를 전파하기 위해 갈라디아에 온것이다. 이 교사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모세의 율법과 언약의 틀 속에서 살아야 했다.
- P34

바울의 칭의 교리(누구든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바로 이 입장에 반대하는 진술로만들어졌다.  - P34

최근에 이 진술은 바울이 자신의 반대 논증을 시작할때 사용하는 모두 진술로 종종 이해되었다. ‘누구든지(즉, 이방인) 율법의 행위(즉, 할례받는 것, 음식법 준수 등)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받지(즉,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고 선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라고 선언되는 것‘
‘언약 안에 있다고 선언되는 것, 심지어 아마도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라고 선언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 P34

그리스도의 죽음이야말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의를 찾을 수 있는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할례를 받는 것은 곧 그들을 정죄할 수밖에 없는 언약 아래에서의 삶을 끌어안는 일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기본 논증이다. - P36

만약 칭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것이었다면 그리스도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그분의 죽음은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나타내는 것이다(2:21).  - P37

3:22-24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가두어졌으나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려고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래서 바울의 칭의의 메시지는 특별히 이방인에게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베드로와바울 같은 유대인도 이방인 못지않게 칭의가 필요하다.  - P37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이 성경을 인용할수 있고 아브라함의 선례를 끌어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3:6, 창 15:6인용).
찾을 보여준다.  - P37

바울미 다른 유대인과 달랐던 부분은 율법의 요구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인간의 죄성에 대한 평가였다.  - P38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니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살리라" 하였느니라. (3:11-12, 합 2:4; 레 18:5 인용) - P38

하나님은 죄에 붙들린 자들이 나중에 해방되기 전까지 그들을 감독하시고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축복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는노예와 바를 바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후견인 역할을 하도록율법을 주셨다(3:21-4:7).  - P39

이방인에게 복종하라고 요구되는 이 율법이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킨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그렇게 한다. 율법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채로, 저주받은 채로, 종의 상태로둔다.  - P41

 자신이 세우지 않은 공동체에 쓰는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이 어디를 가든 부끄럽지 않게 선포하는 복음을이들에게 선명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롬 1:14-16). 복음의 핵심이 여기서는 의의(혹은 칭의의) 언어로 요약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합 2:4인용).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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