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실 정보를 기록하는 타키투스의 능력은 최고였다. - P22
그러므로 우리는 타키투스의 『연대기』(Annals)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인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명백한 사실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옥스퍼드 고전 문헌 안내서』(Oxford Companion to Classical Literature)를 인용하자면, "연대기는 특히 타키투스를 가장 위대한 역사가 중 하나로 드러내고 그가 인물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당대의 중요한문제들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P22
라틴어 ‘크리스투스‘는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를 음역하여 바꿔 쓴것인데, 이는 히브리어 ‘메시아‘ (Messiah)와 같은 말이다. 메시아가 많은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던 약속된 구원자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름은 약속된 유대교의 구원자가 왔음을 믿는 이 집단의 신앙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준다. - P29
기독교가 유대교의 요람에서 발생했다는 것과 시간을 더 거슬러 가면 갈수록 기독교의 모든 기록이 매우 유대적이라는 사실을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유대인들의글을 고려하지 않고서 이 공동체가 가진 신앙의 특정 요소들을 추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9
타키투스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가 황제로 있는동안인 주후 14년과 37년 사이에 처형당했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그는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인 주후 26년과 36년 사이에 이 일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타키투스는 우리에게 기독교를 탄생시킨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기준점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 P29
타키투스는 주후 64년 대화재 당시 로마에 많은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그 문서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뜻하는 ‘멀티투도 잉겐스‘(multitudo ingens)라는 라틴어 표현을 사용한다. 기독교는 정말 멀리까지 퍼졌음이 분명하다. - P30
게다가 타키투스는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잔인하다루었는지, 그리고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자신들이 믿었던 종교 때문에 어떻게 죽임당했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 P30
그러므로 우리는 타키투스로부터 기독교가 멀리, 그리고 빠르게 퍼져나갔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기독교의 시작과 로마의 대화재 사이의 기간은 40년 미만이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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