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바울이나 아볼로 같은 거물과의 특별한유대를 근거로 자신의 올바름과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회 내 파벌은 더 나은 영성을 위한 정당한 몸부림 내지는 그런 노력의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겨졌을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생각 속에 담긴위험한 착각을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서로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서,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교회의 기초를 그들이 선호하는 인간적 권위로 대치하는잘못이다. - P73
그래서 그들은 이 그리스도의 ‘이름안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뻔한질문을 던지는 바울의 의도는 사람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행태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결정적 토대인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위해서다. - P74
세례란 한 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분과 하나가 되는 의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자 모두가 공유한 진실, 곧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유대를 나타내는 원초적 상징의 하나다(갈 3:28; 롬 6:3-4). 세례를 말할 때 모든 신자는 다 같은 자리, 곧 한 분 그리스도 안에 선다. 적어도 정상적 상황이라면 그렇다. - P75
하지만 지금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세례자체의 목적지인 한 분 그리스도 대신 세례의식의 중재자인 다수의 인간에게 집착한다. 소위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대신 그 손가락을 보며호들갑을 떠는 형국이다. 신앙적 유대의 토대인 세례가 도리어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역설이자 비극이다. - P75
원론적으로 세례는 복음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례는 바울 복음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바울은세례와 복음을 날카로운 대립 구도에 놓는다. 지금 고린도의 신자들이 세례의식과 그 의식의 집행자에 집착하며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라는 본래 의미를 망각한 탓이다. 이는 적절한 해석학적 정유(精油) 과정을 건너뛴 채, 특정 효과를 의도한 상황적 진술을 신학적 체계의 원료로 삼는 일이 얼마나위험한지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 P76
곧 지혜로운 말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울이 여기서 지혜로운 말을 문제 삼는 이유는 그 지혜로운 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할 가능성 때문이다. "지혜로운 말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7b절). - P77
개역개정에서 "헛되이"로 옮긴 단어는 십자가 복음의 선포가 그 소기의 결과를 내지 못하고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가리킨다(15:58; 롬 4:14; 고후 6:1; 9:3; 갈 2:2, 21: 3:4).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곧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도리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의미해지는 자기모순의 상황이다. - P77
이 능력은 복음 곧 십자가의 말씀을 통해 주어진다. 그래서 인간적 말과 지혜는 공허하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호로 간을 맞춘 화려한 언어와 아름다운 생각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런 집착은 쉽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을 놓치는 치명적 실수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울의 염려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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