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다음 숙직한 김처의를 시켜 그의 아버지 도진무 판중추원사 김효성을 불러들였다. 병조참판 이계전 등도 불러들였다. 그들을 시켜 단종에게 김종서 부자를 먼저 처단했음을 통고하게 했다. 단종은 이들의보고를 듣고 군국의 중한 일을 모두 수양에게 위임했다.  - P92

단종의 명령을 가장한 수양의 소환에 조극관·황보인·이양이 제3문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함귀 등의 철퇴를 맞고 죽었다. 
궁으로 들어오지 않은윤처공. 이명민·조번·원구 등은 수양이 보낸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또 삼군 진무 최사기를 환시 김연의 집으로 보내 그를 죽였다.  - P93

 최사기와 의금부도사 신선경을 시켜 군사100명을 거느리고 성녕대군의 집으로 가서 도피한 안평을 체포하게 했다. 수양은 강화로 압송당하는 안평에게 손수 편지를 써 "네 죄가 참으로 커서 주살해야하나, 다만 세종·문종께서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용서하고 다스리지 않는다"고 했다 - P93

 김종서는 아들 김승벽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김종서는 죽는 것이 아니라 옥에 갇히는 것이라 여겨 "내가 어떻게걸어가겠느냐? 종2품 이상 벼슬아치가 타던 초현을 가져오라"고 눈치없이 큰소리쳤다. 이것이 끝이었다. 끌려 나온 김종서의 머리가 잘렸다.
- P95

이틀간에 걸친 이유혈참극으로 김종서 부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이 모두 저자에 효수되었다. 훗날 시장 아이들은 효수된 이들의 머리를 본떠 탈을 만들어 쓰고 음력섣달 그믐날에 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쫓아 내려고베풀던 나희를 하며 노래 불렀다. "김종서 세력을 따라 조극관도 몰락하네.‘
- P95

수양은 당시 권력을 독점한 이들 의정부 대신을 포함하여 그들의 사람을 폭력적으로 제거했다. 계유년 수양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정변은사적 물리력을 동원해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사건이었다.  - P96

아버지세종은 유교 국가 조선의 군왕으로서 형륙을 당한 사대부가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반면 아들 수양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과 결당한 이들과 더불어 폭력으로 강제하며 시스템 속의 관료들을 숙청했다. 예치의 부정이었다. - P96

피바람이 몰아친 다음 날인 1453년(단종 1) 10월 11일 주요 인사가 단행되었다. 수양이 영의정부사 영경연서운관사 겸판이병조사가 되었다. 의정부서사제에서 영의정은 신하로서는 최고권력자였다.  - P97

단종이 허울뿐인 왕이라면 실질적권력자는 영의정 수양이었다. 게다가 각 조의 판서가 최고책임자로 있음에도 그보다 상위의 판사직까지 겸하여 이조와 병조를 장악했다. 이로써 수양은 문무관료의 인사권을 거머쥐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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