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 북서쪽 산지에 환도성이 자리를 잡았고, 그 서쪽 편으로 칠성산이 병풍을 두른 듯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환도성은 주위를 둘러싼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에 의해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는 요새였다. 그중 가장 험준한 칠성산 너머는그야말로 무인지경이었다. - P250

동부욕살 하대곤과 함께 동해 고도에 유배된 명림수부를만나고 온 다음부터, 우신은 동부의 책성과 긴밀한 연락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연나부의 결속에 힘을 기울였다. 이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 P251

명림수부의 서찰을 읽은 연나부 세력들은 의기투합되어, 고구려 왕실 세력인 계루부의 힘을 와해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 P252

가장 시급한 것은 연나부 세력들 각자 사병을 길러 맹훈련을 시키는 일이었다. 때를 기다려 계루부 세력을 무너뜨릴 기회가 오면 바로 그때 동부의 하대곤이 군사를 일으키고 연나부세력이 키워온 사병들이 국내에서 내응하기로 되어 있었다.
- P252

그리하여 대왕구부를 척살하고, 해평을 새로운 대왕으로 추대하자는 전략을 비밀리에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혁명에 성공하려면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야만했다. 백성들이 원하지 않는 정권은 지지기반이 약해 곧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왕 구부가 민심을 잃는정책을 펼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 P252

 그런데 동부와 연나부가 첫 연계 고리를 엮는 문제부터 간단치 않았다. 먼저 동부와 연나부의 결속을 위해서는 해평과소진의 정략결혼을 성사시키는 것이 순서인데, 그것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 P252

문제는 당사자들이 서로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었다. 해평은 우신의 딸 소진이 이미 왕자비 간택에서 연화에게 밀려났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 P253

만약 소진과 혼인을 하게 될 경우 매사 연화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해평으로서는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두 사람다 낙오자끼리의 결합이란 것을 해평이나 소진의 자존심이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 P253

어느 날 소진은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아버지 우신게 고백했다. 해평과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평생토록 처녀로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미 국내성뿐만 아니라 고구려 전역에 자신이 석녀로 소문이 났는데, 누구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 오점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이야기였다. 설혹 결혼을 했는데 정말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경우 소문이 사실로 입증된다는 두려움 또한 감당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 P253

이곳 칠성산의 산막은 연나부와 동부가 비밀 동맹을 맺고나서 만든 새로운 도장이었다. 우신은 휘하에 데리고 있던 무사 연정균으로 하여금 연나부 청장년들을 모아 아무도 모르게칠성산 깊은 곳에서 무술을 닦도록 했던 것이다. 칠성산은 국내성과 가까우면서도 산이 험하여 비밀리에 군사조련을 시키기에는 최적지였다. - P255

대왕구부는 지금 불교를 통해 백성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 국력을키우겠다는 심산인데, 그것은 왕즉불 사상을 신봉하여 고구려를 불국정토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꿈에서 비롯된 것이지 이모두가 요승 석정과 천축승 두 놈이 구부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니겠나?  - P256

요승 석정은우리 고구려의 대표적인 민간신앙인 무속을 절 안으로 끌어들여 산신각을 짓는 등 혹세무민의 작태를 일삼으려 하고 있네.
이는 결코 좌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닐세. 순수한 우리 전통신앙을 갖고 있는 백성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아니고 무엇이겠나?  - P256

어찌하여 외래에서 들어온 불교가 산신을모시는 고구려 민간신앙을 흡수해 버리도록 방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니, 백성들이저들의 농간에 놀아나게 놔두어서는 안 될 것이네. 백성들의혼을 외래 종교인 불교에 빼앗기는 것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없는 일 아니겠나?" - P256

375년 2월, 마침내 고구려 최초로 두 개의 사찰이 창건되었다. 국내성 서북쪽엔초문사를 남동쪽엔 이불란사를 지어 각절에 순도와 아도가 주석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서 동궁후원에 있는 내불전은 전적으로 석정이 주재하게 되었고, 고구려 왕실만을 위한 도량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 P258

초문사와 이불란사에서는 다가올 사월초파일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기 위해 일찍부터 서두르고 있었다. 창건 초기에 두절을 자주 찾아오는 신도들은 주로 무당들이었다. 두 절을 건축할 때 산신각을 마련하여 토속신앙을 신봉하는 고구려 백성들을 불교 신자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석정의 주장이 주효했던것이다. - P258

국내성의 경우 가까이에 있는 초문사와 이불란사에 산신각이 생겼으므로 일반 백성들도 즐겨 그곳을 찾게 되었다.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산신을 믿는 백성들이 절을 찾아가 산신각에 기도를 드리면서, 이들은 자연적으로 토속종교와 아울러 불교를 믿는 신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 P259

"저놈이 범인이닷! 저놈 잡아라!"
사복 입은 군사 하나가 그것을 보고 달려가 오라를 지웠다.
그런데 그 순간 절 뒷담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붙잡힌 사내를 향해 비수를 날렸다.
"으으윽!"
사내는 가슴에 비수를 맞고 푹 고개를 꺾었다. 그는 사지를푸들푸들 떨더니 그대로 늘어졌다. - P263

법당과 칠성각에 난 불이 막 지붕으로 올라붙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로 치솟던 불길이 금세 꺾여버렸다. 불은 사람의 손길도 닿기 전에 폭우를 맞아 점점 불꽃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더니 곧 소진되었다.
- P263

불을 지른 것으로 짐작되는 사내는 독이 묻은 비수를 맞고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동료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 P263

"연못에 피는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수심 깊이만큼 줄기를 뻗어 올려 잎사귀가 수면과 만나야만 비로소 꽃을피울 수 있사옵니다. 한송이 꽃을 피우는 일도 수고가 따르고,
봉우리를 터뜨릴 때까지 숱한 진통을 겪어야 하옵니다. 연은그 이파리가 수면과 일치하여 평화를 상징하고, 그 꽃이 우아하고 아름다워 자비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사옵니다.  - P264

이처럼 연이 진흙탕의 더러운 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듯, 불교를 믿게 되면 고난 속의 백성들이 마음의 안식을 찾고 서로서로 사랑으로 감싸주어 온 나라가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는 것이옵니다.  - P264

작은 고난은 큰 사랑을 위한 씨앗이므로, 오히려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P265

 소신은 태학에서 유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 점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사옵니다. 불교는 강력한 왕권을 세우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유교는 백성들의 질서를 유지케 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는 데 매우유용한 학문이라고 말입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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