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안평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요절한 삼촌 성녕대군의 종 김보명의 풍수설에 따라 창의문 밖 인왕산 자락에 무계정사를 지었다. 겉으로는 "나는 산수를 좋아하고 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비기에 이른바 장손에 이롭고 만대에 왕이 일어나는 명당"이라는 설을 따른 때문이었다. - P81
안평은 무계정사를 본거지로 하여 이들의 부추김에 취해 임금의 자리를 엿보았다. 스스로 권세가 있고 부유하다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했다. 또 참담한 물건을 많이 만들어 착용했다. 계모임에서는 시문을 지어서 등급을 매기고 큰 인장을 만들어 찍었다. 마음대로 역마도 사용했다. 안평에게 아첨하는 자들은 임금에게 보내는 계서처럼 글을 보냈고, - P81
김종서의 위세는 더 가관이었다. 1453년(단종 1) 6월 24일 임금이 임시로 옮겨 가 거처하는 시좌소 바깥마당으로 한 여인이 옷을 차려입고거리낌 없이 걸어 들어왔다. 김종서의 첩이었는데 연지동에서 자기 어머니를 만나고 지나다가 들른 것이었다. 이 여인이 시좌소에 들른 것이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마침 이날 문지기가 출입을 막는 바람에 그녀가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환관 김연이 보았다. - P82
세상에, 좌의정의 정실부인도 아닌 첩이 임금이 있는 곳에 마음대로 드나들다니! 공론화한다면 일이 커질 터였다. 김연은 도승지 박중손과 의논 끝에 단종에게 아뢰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 P82
이렇듯 당시 안평은 왕을 참칭하면서 군림하고 있었고, 김종서 등은어린 왕을 능멸하면서 관료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일의 본격적인 시작은 의외로 아랫것들의 대화 속에서 감지되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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