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손만이 고구려 대왕으로서의 자격을 가진다는 것말입니다. 동빈 전하는 바로 천손을 낳으실 귀하신 몸이옵니다 저 옛날 천신의 아들 해모수가 지상에 내려와 유화부인을만나 천손인 추모대왕을 잉태하셨듯이 말입니다. 유화부인이하백의 딸이듯이, 동궁빈 전하는 저하가촌 하대용 대인의 딸로 그 계보가 같다 들었사옵니다. - P218
물론 신화 속의 하백은 ‘물의신‘을 이르는 이름이지만 하씨의 조상이 그런 의미를 가진 내력으로 세가를 이루어 세세손손 내려오고 있다면, 이 또한 그혈통과 연관 관계가 없다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는 바로 천신이 점지해 주신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 P218
"아버님으로부터 우리 하씨의 시조가 하백 할아버지라들은적은 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전설과 같은 얘기라 믿을 수는없습니다만, 어떤 연결고리가 되었든 우리 하씨는 조상 대대로하백 할아버지와 유화부인을 사당에 모셔 오고 있습니다." - P218
천신의 아들인 해모수는 하늘을 상징하고, 물의 신 하백은 땅을상징합니다. 즉, 하늘과 땅의 결합에 의해 천손이 태어나는데,이는 인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 P219
그리고 동궁빈 전하는 추모대왕의 어머니이자 우리 고구려의 부여신(농업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유화부인의 품성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유화부인께옵서도 부여의 금와왕에게 보호를 받으며 아들을 낳았고, 온갖 수모를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아들이 장성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대왕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지난 일을 거론하기는 뭣합니다만, 왕후 전하의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분명왕후 전하의 잘못이 크지만, 그때 동궁빈 전하가 위기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지혜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 P219
석정의 천손신화에 대한 해석이 동궁빈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발걸음이 저절로 공중으로 붕붕 뜨는것처럼 가벼웠다. 천신이 탄 수레를 끄는 다섯 마리의 용과 1백여인을 등에 업은 고니들처럼, 그렇게 채색 구름 사이를 걷고있는 기분이었다. - P220
외딴섬 바위 벼랑에서 한 사내가 동쪽의 해를 등지고 서쪽육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얼어붙은 몸 그대로 촛대바위가 된 듯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는 그는 오래전에 동쪽 바다절해고도에 위리안치 된 고구려 전국상 명림수부였다. - P221
외딴섬의 해송 언덕 밑에 조개껍질처럼 붙박여 있는 오두막에 살면서, 명림수부는 해초를 뜯거나 갯바위 낚시로 고기를 잡아 연명했다. 뙈기밭에 귀리나 감자 농사도 지어 허기를 겨우 면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춘궁기의 부족한 음식은 물고기로 벌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221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은 칼과 같았다. 벼리면 버릴수록 예리해지는 칼날처럼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한은 마음 깊은 곳에서 적개심의 날을 세웠다.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울분으로쌓인 한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증좌였다. 그날카로운 안광으로 명림수부는 육지 쪽을 바라보았다. - P222
"예, 동궁빈의 당숙이지요. 허나, 국상 어른!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지금 하가촌과는 원수지간이 되어 있습니다. 실은오늘 그 말씀을 드리려고 국상 어른을 찾아뵌 것입니다." 하대곤은 수양아들인 해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 P227
해평이고국원왕의 왕제 무의 아들이라는 것에서부터 열 살 때 자신에게 보내져 수양아들로 삼은 이야기, 그리고 동궁빈이 된하대용의 딸 연화와 혼인 약속까지 했었는데 왕자비로 간택되는 바람에 그 언약이 깨져 두 집안이 원수처럼 되었다는 사연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 P227
"국상 어른! 우리 연나부가 권토중래하기 위해서는 여기 있는 하대곤 장군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무왕제 전하의 아들 해평은 그 아버지 못지않은 무술과 지략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고구려 왕실의 피를 이어받고 있어 왕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 P229
소장을 만났을 때 서로 약조한 바가 있습니다. 해평과 대사자어른의 따님을 혼인시키자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묘하게도 왕자비 간택 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기도 합니다. - P230
이 두 사람의 혼인을 성사시킨 연후 때를 기다려 우리 동부의군사가 국내성을 들이치고, 연나부 출신 조의선인들이 호응하여 궁궐을 차지한다면 혁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국상 어른이 연나부의 결속을 다질 수 있도록 서찰 하나만써주신다면 여기 계신 대사자 어른이 연나부의 대동단결을 도모해 보겠다고 하십니다." - P230
고구려 최초의 국상인 명림답부는 명림수부의 직계 조상이기도 했다. 명림수부가 태어났을 때 부친은 그에게 명림답부처럼 국상이 되라고 ‘답‘ 자 대신 ‘수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나중에 국상이 되었다. 국상은 대왕 다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리였다. - P231
"만약 무 왕제 전하가 국내성에 있었다면 다음 왕위는 이런보다 해평에게 돌아가는 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 고국원왕이승하하신 후 당연히 동생인 무왕제 전하가 왕위를 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해평이 적통이 돼야 마땅하지요. 왜냐하면 고국원왕의 아들인 구부 왕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에도 다음 대를 이을 왕손이 없었으니까요." - P231
"여기 지필묵을 가져왔습니다. 연나부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서찰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우신이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곧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림수부는 붓을 들어 연나부 대신들에게 보내는 서찰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붓이 칼처럼 날을 세워 종이 위를 달리는 가운데, 문밖에선철썩대는 파도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 P232
374년(소수림왕 4년), 대왕 구부가 왕위에 오른 지도 네 해째가 되었다. 강남에서제비가 돌아온다는 3월, 서남쪽으로부터 큰 소식이 하나 국내성으로 날아들었다. 중원의 강남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동진으로부터 천축승 아도가 고구려 땅을 밟았던 것이다. - P233
원래 동진은 고구려보다 백제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동진은 백제에 승려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환온이 군주를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나중에는 자신이그 자리에 오르려고 욕심을 부리던 시기였으므로 백제와의 외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P233
보시는 바와같이 얼굴이 흑갈색으로 검어 ‘묵‘자가 이름 앞에 붙었습니다. 또한 중원에서는 서역에서 온 사람들을 무조건 낮춰 호인이라 칭했으므로, ‘호자‘란 이름이 별명처럼 따라붙었던것이옵니다." - P235
"폐하! 고구려는 사방이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사옵니다. 서북으로는 선비와 거란이 호시탐탐 고구려 국경을 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부여와 숙신이, 남쪽에는 신라와백제가 또한 우리 고구려에게 위협을 가해 오고 있지 않사옵니까? - P238
특히 작금의 백제는 우리 고구려의 남경을 함부로 침범하여 큰 우환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 주변 나라들로부터고구려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국내성의 서북과 동남 방향에 두개의 사찰을 건립하려는 것이옵니다. 평화는 전쟁을 종식시킨이후부터 가능해지며, 종교도 호국을 실천하여 나라가 안정되어야 만백성을 널리 교화하고 모두가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것이옵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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