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보리밥에 풋김치와 간장 한 종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무도 반찬투정을 하지 않고 숟가락들을들었다. 밥을 제일 먼저 떠넣은 것은 역시 막내 대근이었다. - P279
기어이 눈물을 떨구며 저세상의 남편에게 했던 약속이 실한 짝을 제대로 찾아주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큰아들이 옆을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돈 2원만 탈 없이 받아냈더라도 맘놓고중매쟁이를 놓았을 것을…………. 감골댁은 또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털어내며 밥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었다. 숟가락을 놀리지 않는 것도 보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것이라 싶었던 것이다. 감골댁은 밥을 씹었다. 그러나 이빨에 씹히는 건 모래였고 눈물이었다. - P280
벽의 말코지에 걸린 쇠고리에서는 가느다란 관솔불이 타고 있었다. 관솔불은 긴 그을음을 피워올리는 것에 비해 그 불빛은 미약했다. 불빛 언저리만을 피해 선 어둠에 포위당해 있는 형국이었다. 벽지라고는 붙어 있지 않은 흙벽에는 오래된 그을음이 검게 끼여있었다. - P282
방바닥에 짚자리를 엮어 깔고, 벽에 벽지를 붙이지 못하는 살림살이에는 관솔불은 으레껏 제격이었다. 촛불은 아예 엄두를 낼 수가 없었고, 일본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흔해진 석유라는것도 넘볼 수가 없었으며, 그렇다고 참기름이나 동백기름에 손을댈 수도 없었다. - P282
한방울이라도 목에 넘길 참기름이 급한 판에 태워없앨 수 없는 노릇이었고, 명절 때 찍어바르는 것도 조심스러운동백기름에 아무나 불 댕길 심지를 담그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관솔개비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큰 산이 먼 들녘이라서 관솔도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무리 밝은눈으로도 바느질을 할 수 없도록 흐린 관솔불마저 맘놓고 댕겨놓을 수는 없었다. - P283
그 노인네의 말이 생생하게 다시 들리고 있었다. 심청이∙∙∙∙∙∙ 논다섯 마지기...... 어머니와 세 동생.………… 자신이 마음을 작정하기만 하면.… 그러나 늙은 김참봉・・・……… 김참봉의 아내 ・・・ 온갖구박과 눈치와….…… 사람들을 바로 볼 수 없는 부끄러움….… 허지만 어머니는 자꾸만 늙어가고 동생들은 커가고………… 가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그걸 하자면 결국…… 첩살이………… 온몸이 오그라붙었다. - P284
우리는 어찌 이리 가난한가.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돌아가시고 그 빚으로 오빠까지 떠나게 되어 집은 더 가난하게 되었다. 애초에 아버지가 동학군으로 나섰던 게 탈이었다. 그럼, 그게잘못된 일이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동학군으로 나섰다가 죽은 사람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다 장한 일을 하려고 나섰던 장한 사람들이었다. - P285
그렇지만 남은 건 더 심해진 가난뿐이었다. 그때 죽은 사람들의 집안도 다 우리처럼 가난할 것이다. 그 집안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나 같은처지에 빠진 처녀들도 더러 있겠지. 세상은 어찌 이러는가…… 내가 첩살이를 하면 오빠가 돌아와 뭐라고 할까・・・・・… 어머니를 원망하고 나를 야단칠까・・・・・… 그런데 오빠는 언제나 오는 것일까. 첩살이……… 첩살이…………. - P285
김 참봉은 피란을 했다. 가 돌아와 하인과 마을사람 하나를 동학군에 내통했다고 하여 덕석말이로 죽였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병을 앓고 있던 남편은김참봉에게 빚돈을 쓰고 있는 줄 몰랐었고, 김참봉은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섰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 P286
또 한 가지는 큰아들을 생각해서 그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짓을 했다가 큰아들이 돌아오면 무슨 면목으로 대할 것인가. 큰아들도 심지가 굳기는 남편 못지않았던 것이다. 있는 사람들에게 굽히고 사는 것을 속 아파했고, 특히나 동생들에 대한 사랑이 두터웠다. - P286
돈에 팔려 첩살이를 시키느니 함께 배곯으며 처녀로 늙히고 말겠다며 감골댁은 마음을 단단히 도사렸다. 오죽하면 첩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기생질이 낫다는 말이 있을 것인가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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