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만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바가지를 받아들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인력거꾼에게 가졌던 노여움이 물과 함께넘어가고 있었다. 힝! 나럴 허방에 빠쳐볼라고? 나도 눈칫밥만 묵음서 시상 살아가는 놈이여, 인력거꾼은 물을 마시고 있는 이동만을 눈흘김하며마른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 P233
"저어, 부탁이라는 것언 다른 것이 아니고라, 우리 아그덜이 돌아감스로 학질얼 않아대는디요, 오래되었는디도 영낫덜 않는구만이라. 우리 새끼덜 불쌍허니 생각하셔서 지니신 금계랍얼잠 노놔주십사 하는 청이구만요." - P234
"나가 지닌 금계랍언 아무나 퍼주는 물건이 아니여. 황토현꺼나갈 것 없이 군산에도 약국이 생겼게 사다가 먹이드라고." 이동만이 내던진 말이었다. 그가 말하는 황토현이란 5년 전에그곳에 일본사람이 처음으로 문을 연 양약국 일신의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세 여자는 어이없는 얼굴로 이동만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 P235
"하 금메 누가 군산에 약국 생긴 것 몰르고, 돈 있음사 누가 약국찾어갈지 몰를 것이여. 육시헐 놈이 사람 가심에 천불을 놓네그랴." "지도 주렁주렁 새끼덜 키우는 놈이 맘보 한나 드럽게 쓰네 이 "생긴 것은 꼭 염생이새끼로 생겨갖고" "그 생김에 또 주색잡기넌 둘찌가라면 세러워하게 능허다등마." - P236
잡것이 꼴에 양반족보 깔고 태어났다고 못된 것만 보배운 것이제." "에라이 드런 놈, 가다가 인력거나 논바닥에 찰팍 엎어져 뿌러라." 세 여자는 들녘길 저쪽으로 멀어져 가고 있는 인력거를 향해 감정이 풀릴 때까지 온갖 험담을 다 쏘아대고 있었다. - P236
학질에 특효약인 키니네를 이동만이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널리 퍼진 소문이었다. 요시다는 키니네만이 아니라 회충약도 지니게 했다. 그 약은 논 가진 사람들을 회유하는 데 쓰는 선심이었다. 일본사람들이 밀려들면서 퍼지기 시작한 그 약들은 무척이나 효과가 좋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 P236
호남평야의 가마솥더위는 유별났다. 불볕은 땡땡 내리찍고, 잎줄기가 너무 부드러워 갓난아기의 입김에도 흔들릴 정도인 버드나무 일도 까딱하지 않도록 바람은 불지 않고, 불볕에 익을 대로 익은 땅은 열기를 되뿜어내고, 따끈따끈한 불볕과 후끈후끈한 지열은 뒤헝클어져 마침내 숨이 막히도록 푹푹 쪄대는 더위를 만들어냈다. 그 더위 속에서 한나절 논일을 하고 나면 누구나 얼굴이 부어오르고 눈에 핏발이 섰다. - P237
"마침내 우리가 고대하던 일이 성사됐소. 이제야말로 때가 온 것영사관 서기 쓰지무라는 주먹을 부르쥐며 눈을 빛냈다. "그렇습니다. 고문정치의 시작으로 조선을 지배하는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야가와는 쓰지무라의 비위를 맞추듯이 맞장구를 쳤다. - P238
그들이 기쁨에 넘치는 고문정치의 시작이란 제1차 한일협약이었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재빨리 군대를 한양에진입시킨 다음 무력의 위협 아래 한일의정서를 조인하여 조선 안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것이 2월의 일이었다. - P243
그 뒤로 러시아군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으며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게 되자 그들은 그 기세를 조선정부로 확대시켰다. 재정고문과 외교고문을 초빙하라는 강요였다. 결국 정부는 그 강압에 굴복하여 협정서 체결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1904년 8월22일이었다. 그 협정에 따라 재정고문에 일본인 메가다가, 외교고문에는 미국인 스티븐스가 앉게 되었다. 그것은 곧 나라의 재산권을 넘겨준 것이었고, 나라의 외교권을박탈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문 배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 P244
일본은 계속해서 경무고문, 군부고문, 궁내부고문, 학정참여관을들이밀었다. 그런데 그 네 부문의 고문은 원래 협정서에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그 엄연한 위약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나라의 모든 힘을 빼앗겨버린 것이었고, 반도땅은 꼼짝없이일본의 실질적인 식민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 P244
상답이 5월이니까 5만 원이면 논이 1만 마지기였다. 그리고 논한 마지기에 두 석을 잡으면 모두 2만석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일차적인 자금이라고 했다. - P258
"아하, 뭘 그리 놀라시오. 당신네 상감에서부터 모든 대신들이 전부 상투를 잘라버린 지가 벌써 언젠데 정작 아랫사람들은 지금까지 상투를 틀고 있다니. 그건 엄연히 단발령이라는 국법을 어기고있는 범법행위란 말이오. 내 말이 틀렸소?" - P265
"근디, 앞질언 앞질이고, 당장 돈벌이가 대륙회사만 헐랑게라?" 장칠문이 사탕을 우물거리며 아버지를 옆눈길로 힐끗 보았다. "아이고, 일본사람덜이 맨입으로 무신 일 시키는 것 봤냐. 그 경우바른 사람덜이 허고, 만일에 손에 잡히는 돈이 당장에는 잠 작다고 허드라도 그것이 무신 걱정이나 앞으로 살 날이 구만리 겉은 나이에 앞질 훤헌쪽으로 붙어야제. 안그려?" - P265
"아이고 이놈아, 무신 앞 맥힌 소리여. 몸땅이 없고 꼬랑지 없는대가리 봤냐 니가 웃자리에 앉자면 아랫것털이 있어알 것 아니여. 일본말로 거 머시냐, 거 거 안 있냐…………" 장덕풍은 답답해서 자기 머리를 툭툭 쳤다. "꼬붕 말이다요?" - P266
차일 밑에서 나와 단상 앞에 선 것은 백종두였다. 그의 상투는간 곳이 없었다. 그건 다름 아닌 일진회 군산지부 발단식이었다. - P268
"영근아.... 감골댁의 입에서 큰아들의 이름이 신음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들이 떠나버린 다음에 새로생긴 버릇이었다. 그리울 때도 외로울때도 답답할 때도 괴로울 때도 감골댁은 무시로 큰아들을 불렀다. - P270
"하면, 중신애비 찔긴 것이야 삼줄이 못 당허제" - P273
다섯 마지기! 감골댁은 가슴이 꿈틀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다음 순간 큰딸 보름이의 얼굴이 쑥 밀려들었다. 감골댁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퍼런 처녀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닷 마지기 아니라 열 마지기라도 안 되겄소." - P274
"누구헌티 듣기는 누구헌티 들어 소문이란 것이 본시 대가리 있고 꼬랑댕이 있고 그런 것이간다? 요상허시, 마누래가 딴 배 맞추면 그 집 서방만 그 소문 몰르드라고 감골댁이 똑그 짝 났네그랴. 귀 막고 사는 것도 아닌 것인디 어째 그 소문이 감골댁 귀만 피해댕겼을꼬?" - P276
감골댁의 눈물 머금은 소리였다. 어머니의 그 목소리에 보름이는 속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보름이는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 속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오빠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딴 세상 사람이었고, 오빠는 그 어딘지 모를 곳에너무 멀리 있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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