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의 세속적 이교주의와 전혀 접촉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그들이 이 문화를 잘 알고 분별하도록 가르침으로써 굳건한 믿음과 성경적 지식에 따라 문화와 상호작용하고 선한 것과 악한 것을구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49

 그리스도인들이 복음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성경적 진리를 우리의 세속문화가 지니고 있는 필요와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존 스토트(John Stott)가 "이중적 듣기"라고 불렀던 바다.  - P49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동시에 우리 주변의 세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 P5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기 위해(혹은 성경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 P50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거나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알리고 전하기위해 세상에도 귀를 기울인다. - P50

 그들은 예레미야가 보낸 두루마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예레미야 50~51장의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은 고향에서 자신들을 붙잡아 이곳으로 끌고 왔으며 예루살렘을최종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다시 한번 공격하게 될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고향을 배신하고 그런 왕과나라를 섬기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 P51

하지만 그들은 그 일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부에서 하는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으로 여겼다 나중에 느부갓네살이 자신들을 산 채로 화장하겠다고 협박할 때 그들은 왕에게 직접 그렇게 말했다("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단 3:17). 아마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이교도 왕을 섬겼던 요셉 이야기로부터 격려를 얻었을 것이다. - P51

혹은 오바댜가 아합과 이세벨의 노골적인 우상 숭배와 배교,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통치하는 동안 고위직을 맡았던 것(왕상18:1~4)에 대해 묵상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결코 그들은 이스라엘의 살아 계신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정부를 섬겼던 ‘최초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 P51

당시 문화에서 당신의 이름은당신의 전인격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여전히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그렇듯이 당시에는 이름이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을드러냈다.  - P52

따라서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모든 신입 공무원들이 적절한 바빌로니아식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것은 이 소년들의 이름처럼 그들의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나엘-이 포함된 유대인들에게 특히나 큰 희생을 요구한 셈이었다.  - P52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다.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이다. 아사라는 ‘여호와께서 나의 도우시는 분이시다‘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들의 새 이름에는 이교도의 신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는 더 심한 모욕이자 수치였다. - P53

아마도 바울이 우상에 관해 촉구했던 그런 성숙함으로 그들은 이 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의 이름이 아무것도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있었기에 침을 꿀꺽 삼기며 이 이교 이름을 자신들의 입술과 의복휘장에 받아들였을 것이다. - P53

 이미 그들은 나중에 예레미야가 포로로끌려간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부했던 내용(렘 29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바빌로니아에서 정착해야 하고, 거기서 살고 일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번성해야하며, 바빌로니아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자신을 단순히 유배의희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그곳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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