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외줄기로 뻗은 키 큰 나무였다. 사람 키의 열 곱이 넘는 그 끝에 부챗살같이 갈라진 잎들이 엉성하게 붙어 있는 그 나무가 그들에겐 너무 눈설었다. "아니, 저 나무가 어찌 저리 생겼소?" "저것이 나무기는 나무요?" "허 참, 고것 요상허게도 생겼네. 털 다 뽑고 꽁지만 남은 달구새끼꼴 아니라고?" "참, 나무치고는 어지간히 못났네." 그건 바로 야자수였다. - P168
배가 부두에 가까워지면서 그들에게 눈선 것은 그 키 큰 나무만이 아니었다. 멀찍이 보이는 산 모양새며 나무숲도 눈설었고, 집들도 눈설었으며, 사람들과 그 차림새도 눈설었다. - P168
손도장을 누르고 사무실을 나온 그들은 갑자기 바뀐 상황 앞에서 눈치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갓댐, 스팅키 애니멀! 허리 업, 허리 업! (야이, 냄새 나는 짐승새끼야! 빨리 해, 빨리!)" - P169
선원들은 걸핏하면 눈을 부라리거나 화를 내며 ‘갓댐‘을 내뱉었으므로 그것이 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아차렸다. 다만 그것이 조선말로 무슨 욕인지만 모를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스개 삼아 그 말을 써먹기도했었다. 갓댐은 그들이 최초로 배운 영어이기도 했다. - P170
트럭들은 시가지를 벗어나 키 큰 풀들이 무성한 벌판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의 눈에 무성한 풀밭으로 보이는 것은 사탕수수농장이었다. 사람대접받고 살기는 다 틀렸구나. - P171
그들은 뙤약볕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햇볕은 이상하게 눈이 부셨고, 두꺼운 느낌이었으며, 바늘끝처럼 따끔거렸다. 차가 달리고 있어서 바람이 일어나는데도 그들은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 P171
그 이상스러운 햇볕과 예사롭지 않은 더위에서 그들은 어떤 불길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건 속았다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사시장철 기후가 좋아 일하기 편하고 살기 좋은 땅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트럭이 차례로 정거했다. - P171
배를 타고 오면서 밥에 김치를 얼마나 고대했었던 것인가. 그들은 게걸들린 사람들답게 김치와 밥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러나 국을 달게 먹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양배추와 양파가 섞인고깃국이었는데 국물에 된장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된장이 풀리지 않은 쇠고깃국은 배를 타고 오는 동안에 질리도록 먹어서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 P175
사람들 쪽으로 돌아선 백인은 그 남자를 손가락질해대며 뭐라고 길게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아무 데서나 용변을 봐서는 저렇게 맞게 된다는 뜻으로 알아새겼다. - P174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데다가 트림마저 할 수 없는 식당에서벗어난 그들은 부산하게 자기네들 막사를 찾아갔다. 걸핏하면 날아드는 채찍에 그들은 완전히 주눅들고 기질려 있었다. - P176
"생각혀 보시오, 왜놈덜이 우리가 머시가 이쁘다고 논 닷 마지기값인 20원씩이나 줬겄소. 허고,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겄소. 바로 이양사람덜이 내놓은 것 아니겠소? 우리는 다 종으로 팔려온 것이다그 말이오." - P179
식당 앞에서는 또 채찍질이 가해지고 있었다. 채찍질소리와 비명이 뒤범벅되고 있었다. 더운 탓에 저고리를 벗어버려 맨몸이거나짚신을 신지 않아 맨발인 사람들을 골라내 채찍질을 하는 것이었다. 채찍을 맞은 사람은 뒤늦게 그 까닭을 알아채고는 질겁을 해서막사로 내뛰고, 미리 그 눈치를 챈 사람들은 오던 걸음을 되돌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P181
20명씩 조가 나눠지고, 연장이 분배되었다. 호루라기가 울리면서 정각 5시에 일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농사짓기가 아니었다. 농토를 만들기 위한 개간작업이었다. 개간해야 하는 땅은 평지라고는 하지만 열대성 잡초들과 나무들이 뒤헝클어져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것들을 뿌리까지 전부 뽑아내서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내야 하는것이었다. - P184
열대의 7월 햇빛은 눈이 시도록 부신 밝은 빛을 내쏘았다. 또한햇살은 무수한 바늘끝으로 내리꽂히면서 두꺼운 햇볕의 장막을만들어내고 있었다. 눈부시고 따갑고 후끈거리는 열대의 태양은그들을 희롱하듯 괴롭히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도 고통스러운폭염 속에서 그들은 원시의 야생식물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P185
삼베옷들은 금방 땀으로 맥질이 되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기운을 쓰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오랜 배타기의 피곤이 회복되지 않은탓만이 아니었다. 어제 맞은 예방주사로 모두 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몸은 물 먹은 백설기처럼 허물어져내리고 있었다. - P185
절벽처럼 경사가 급하면서 억센 주름이 많이 잡힌 산줄기나 핏빛으로 붉은 흙이나 모두 화산 폭발 때문인 것을 그들이 알 까닭이 없었다. - P193
백인은 커다란 코 앞에다 손부채질을 해대며 ‘갓댐 스팅키애니멀‘이란 소리를 연상 씨부려대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고리타분한 땀냄새와 시큼텁텁한 쉰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그건 몸과 옷에서 한꺼번에 나는 냄새였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에 목욕을 한 일도 없었고 옷을 빨아 입은 일도 없었다. 그런 데다가 어제 하루종일 땀으로 맥질을 하고도 몸을 씻거나옷을 갈아입지 않았으니 악취가 풍길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 P194
그들은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큰길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통제가 없었더라도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큰길을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들은 백인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잠자는 것이 급선무였다. - P194
점심때가 다 되도록 어느 막사에나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난 그들은 다시 잠에 곯아떨어졌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그들은 백인의 지시에 따라 빨래를 하러 갔다. - P194
서운 매질인지는 진작 알았었다. 그러나 채찍질을 심하게 당했던사람들의 알몸을 보자 그 끔찍스러운 상처에 그들은 새로운 전율과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채찍을 맞은 자리마다 피멍 든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피멍이잡힌 살은 부풀어올라 있었고, 어느 부분은 살갗이 찢어져 피가말라붙어 있기도 했다.그피멍잡힌 살에 물려 있는 아픔을 사람들은 가슴 아리게 느끼고 있었다. - P195
"댁네덜도 그리 맞고 사셨소?" 남용석이 내놓은 첫번째말이었다. "여부가 있겠소. 우리야 다 일하는 짐승인데." 얼굴이 핼쑥한 남자는 빨래를 주무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여기가 천국이라더니 왜놈들한테 완전히 속았소. 이걸 어쩌면좋소?" - P196
"천국인 줄 알고 돈 벌러 온 모양이구려. 생각 바꾸시오. 여긴 생지옥이고, 우린 흰둥이 미국놈들 종으로 팔려온 거요. 당신네들도검둥이들 봤지요? 그 검둥이들을 흰둥이 미국놈들이 끌어다가 종으로 부려먹었다는 거요. 그걸 노예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노비라는 말하고 같은 거요. 그런데 그 검둥이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법으로 금한 것이 몇십 년 됐답니다. 우리가 바로 그 검둥이 노예나 똑같단 말요. 우리는 색깔이 다르니까 노란둥이 노예란 것이 다를 뿐이오. 알아듣겠소?" - P196
답답한 소리 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 내 말 잘 들으시오. 우리는 모두 이 농장에 100딸라씩 빚을 지고 있소. 그 돈이 뭔가 하면, 배 타기 전에 왜놈한테 받은 20원에다 여기까지 배타고 온 뱃삯이오. 그 100딸라를 갚지 못하고서는 종놈 신세를 면할 도리가 없게 되어있소. 다지장들눌렀지요? 그 종이가 바로 그렇게 하겠다는 계약서요." "100 딸라가 얼매나 큰돈이다요?" - P197
"들어보시오. 여기서 한 달에 받는 돈이 15딸라요. 밥은 먹여주니까 일곱 달이면 종놈 신세 면할 것 같지요? 그건 계산상 그럴 뿐이오. 그 짚신은 10년 가고, 그 삼베옷은 100년 가는 거요? 그리고몸은 쇳덩어리요?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오? 땅 파뒤집는 거친 일에 짚신은 열흘을 못 가고, 흙먼지 뒤집어쓰고 팥죽땀 흘리다 보면삼베옷은 한 달을 넘기기가 어렵소 병 안 나고, 술 한 방울 입에안 댄다고 해도 신 사신고, 옷 사입다 보면 그놈에 15딸라는 부서지지 않을 수가 없소. 종놈 신세 벗어나자면 감감한 세월이오." - P197
"저것들이 다 미국으로 흘러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독일이나폴투칼이라는 나라 놈들이라고 합디다. 저것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놈들이오. 우리한테 일을 많이 시키면 그만큼 돈을 많이 받으니까 그 지랄들인 거요." "잡새끼덜, 즈그도 고용살이험스로." - P199
"다 차차 알겠지만 농장주인놈들이 더 나쁘오. 그 백인놈들은뒤에 앉아서 돈을 걸어놓고 그놈들을 자꾸 악독하게 만들고 있단 - P199
루나놈들 중에서 작업실적을 제일 많이 올린 놈을 매달골라내 상금을 주고, 1년 통틀어 1등을 한 놈한테는 세계일주 여행을 시켜주는 판이오. 그러니 루나놈들이 눈에 불을 켤 수밖에더 있소." - P200
"루나가 뭐요?" "아, 여기 하와이말인데, 감독이란 말이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놈들 입에 항시 붙어 있는 그 갓댐 스팅, 거 뭐라는 소리는 무슨 말이오?" "아, 갓댐 스팅키 애니멀 말이오? 그게 저놈들이 우릴 부르는 이름이오. ‘냄새나는 짐승‘이란 뜻인데, 우리한테서 김치냄새 마늘냄새 땀냄새가 난다고 그리 업신여겨 부르는 거요." - P200
하와이 이민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협회에서 주한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교섭하게 한 것이었다. 고종은1902년 11월에 수원(院)을 설치하게 하고, 12월 22일 인천항에서 121명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뜻인 수민원은 처음부터 그 직무를 유기하고 있었다. - P200
이민자 121명 중 반이상이 미국 선교사 존스의 ‘대한사람이 인간의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설교에 회유된 영동교회 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여러 선교사들이 각 개항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집하러 다녔다. - P201
시간 또한 절약하게 된다 그거요. 운반비만 돈이 아니오. 시간도 돈이오, 시간절약은 곧 시장선점에 직결된다 그 말이오. 일거양득,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일대를 장악해야 하오." 모리야마의 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만… 그러나……요시다는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말인가를 입안에서만굴리고 있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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