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분이 하셨다고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예언서를 읽었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원수들을 통해 그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계속해서말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회고하며 돌아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멸망? 유배? 수많은 경고 이후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었다. - P37
하지만 당시 유다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예언서를 읽지 못했다.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더 기분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 예언자들의 말을 듣는 편을 선호했다. - P37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을까? 2절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단도직입적인 대답을 제시한다. "주께서"즉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 P37
따라서유다의 생 마지막 십 년과 유배초기 몇 년 동안 정치적, 외교적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은 이 모든 일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며 이해할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그들에게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이 이런 취급을 받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을까? - P38
그분이 늙어서 쇠약해지셨는가? 바빌로니아의 신들이 실제로 더 젊고 더 강했던 것일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빌로니아의 신들을 섬기는 편이 더현명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예레미야가 주장했듯이 정말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런 일을 행하신 것이라면 그분은 불공평하고 불의하신 것이 아닐까? (에스겔은 에스겔 18장에서 이런 불평에 대해 다뤘다.) - P38
그리고 설령 그들이 언약을 깨뜨린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처벌이 받아들일 수 있기는커녕 견딜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예레미야애가의 분위기다. - P38
하나님은 자신이 온 땅의 하나님이심을 궁극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성전에서불렀던 많은 시편은 바로 이 믿음을 노래했다. 그렇다면 살아계신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연관된 이 물건들이 이교도 왕에 의해 제거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그의 신을 위한 신전에 두었다는 사실(2절)을 이 백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했을까? - P39
그 이교 신전은 ‘시날‘ 땅에 있었다. 이것은 NIV가 (각주에서 설명하듯이) 2절에서 ‘바빌로니아‘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다. 이 말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상한 이름으로서 바벨탑이 세워진 땅을지칭할 때 처음 사용되었다(창 11:1~9). - P39
마치 하나님이 엄청난 순간 이동을 통해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 이스라엘을 아브라함에 관해서는 들어보기도 전인 시간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하신 땅으로 데려가시는 것과 같다. 분명 무언가가 대단히잘못되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갔다. 역사가 통제를 벗어난것처럼 보였다. 하나님이 통제를 상실하신 것일까? - P39
우리가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무언가를 행하실 때도 우리는 작정하신 대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 P40
그리스도인들에게 1890~1990년 유럽 내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손에 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애초에 무신론을신봉하는 소련에 의해 철의 장막이 쳐지도록 내버려두신 까닭을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 P40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대가가 유럽을 나치의 독재정권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치를 만한 가치가 있던 값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특히나 더 어려웠다―그들은 나치가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또 다른 독재 정권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런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공산주의 독재 정권 아래에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 P40
하나님은땅끝까지 왕성하게 선교가 이뤄지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통제하고 계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 선교가 말살되도록 내버려 두시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P41
이제 와 돌이켜보면 중국내서양 선교의 종말이 중국 내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선교의 종말을뜻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곳에 있는 교회의 종말을 뜻하는 것도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주일마다 중국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의 수는 서유럽 전체의 교회에서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의 수보다 더 많다. - P41
얼마 전에 나는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멀지 않은 한마을 교회에서 설교했는데, 그곳에서는 청중의 80%가 이슬람교도였고 그 중약 30%는 이미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P42
한여인은 나의 아내에게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은 시리아에서 우리가 살던 도시에서 발생하던 죽음과 파괴를 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바꾸신 메시아예수를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P42
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과 구원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악에 대해 승리하며, 악한 의도로 이뤄진 일조차도 복음의대의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곧 요셉의 믿음이었다. - P43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그들이 자신에게 저지른 일은 ‘악을 위한 것‘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 배후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창50:20). - P43
다니엘서는 바로 이런 종류의 신앙과 사실 사이의 모순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가야 했지만 그런데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실에 적응하고 자신들의 믿음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P43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그들의 하나님은 여전히통제하고 계시다고 그들은 주장할 수 있었다. - P43
느부갓네살의 공직자 훈련 과정은 3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네요소가 포함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언어와 문화, 학문에 대한 교육 국가에 의한 관리 바빌로니아 제국의 정부 내 일자리 원래의 민족적인 이름을 대체하는 바빌로니아식 이름으로 개명 - P45
설교자들과성경공부 인도자들은 그들이 놀라울 정도로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아니오"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은 세 번 "예"라고 말했다. - P46
많은 부분은 인간의 긍정적인 성취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또한 많은 부분은 유대교의 유일신론 관점에서 볼 때 불쾌했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모욕적이며 우상 숭배적이었을 것이다. 바빌로니아식 교육은 많은 점에서 구약 이스라엘의 신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문화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었다. - P47
하지만 이 유대인 십대들은 이 공부에 전념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남들보다 더 뛰어났으며 구두시험에서 바빌로니아인 동료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그 자체로 놀라운 성과였다. 막대처럼 생긴 수백 개의 기호로 이뤄진 쐐기 문자를 사용했던 바빌로니아의 언어는 알파벳을 사용하는 히브리어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또한 바빌로니아 문헌 다수는 종교적이었고 바빌로니아의신들과 의례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기에 그들은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 P47
우리는 그 문화의 신념체계를 공유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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