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과 안평 두 형제 사이의 갈등은 1452년(단종 즉위) 9월 10일 수양이 단종 즉위에 대한 황제의 허락을 담은 조서를 받아 오고자 명나라로 들어가기를 자원하면서 극으로 치달았다. 보통 고명사은사는 3공이 가는 것이었다.  - P61

수양: 고명의 사은은 큰일인데, 황보인은 최근 갔다 왔고, 김종서는 늙었고, 남지는 병이 들었으니, 만약 낮은 관리를 보낸다면 명나라 조정에서 이를 비난할 것이다. 종친을 파견하면 천하에서 그 기강을 알 것이며 또 황제의 명을 존중한다고 생각할 것인데 만약 우리 종친이 공이 없이 녹만 먹고 임금을 위해 사신이 되지 않는 것이 옳겠는가? 이때문에 계청하였다. - P61

황보인: 공은 종실의 어른이니, 멀리 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안평대군이 어떻겠소?
수양: 나는 국정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또 여러 재상이 있으니 비록 두어 달 멀리 간다 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임금이 어리신데 종실 대신이 명을 받아 분주히 간다면 중국 조정에서도또한 우리나라의 체통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 P62

윤9월 6일 주룩주룩 비가 온 이날 수양은 안평·황보인·김종서·강맹경과 더불어 문종 산릉의 역사를 살피러 갔다. 당시 산릉도감 장무였던이현로는 안평·황보인·김종서 등에 대해서는 아첨하고 수양에 대해서는 거만한 태도로 방약무인했다.  - P63

이미 이현로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수양은 여러 사람 앞에서 그의 무례함을 꾸짖으며 수십 차례 채찍으로매를 치게 했다. 그러면서 안평에게 아부하고 골육을 이간질하는 두 가지 죄가 있다며 "네 죄가 지극히 크니 죽여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 P63

이현로가 수양의 채찍을 맞은 이날 한명회가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마도 친분이 있었던 듯하다. 이현로는 나랏일을 거론했다. 자신이 당시 백수였던 한명회를 안평에게 추천하겠다며 줄을 잘 서라고 충고하기까지 했다. 이현로는 몰랐다. 불과 1년 뒤 자신이 아니라 무명의 한명회가 나랏일의 주인공이 될 줄을! - P64

이현로: (미소 지으면서) 너는 포의로서 이름을 아는 이가 없으므로 내가이미 안평대군에게 추천하였으니, 한번 가서 뵙는 것이 옳다. 평생의길을 얻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한명회: 고맙네. 내가 모자라네. 잘 있게. - P65

수양은 명나라로 머나먼 길을 떠나면서 인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황보인·김종서 등이 추종세력과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하기 어려웠고, 무언가 일을 벌일 경우 제지하거나 협상하기위한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수양은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동행시키겠다고 했다. 권람은 계책이 매우 좋다며 반색했다. 수양도 자신의 묘안에 만족스러워 했다. - P65

드디어 수양은 3월 23일 한명회가 데려온 내금위 무사들에게 충성서약을 받으며 충돌이 불가피함을 선언했다.
안평은 도리에 어긋나며 권력과 세력을 가진 간사한 신하들과 결탁하였다. 종묘와 사직이 불안하고, 생령들이 남김없이 죽어 가니, 의리상큰 어려움을 평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69

형제가 권력을 두고 적이 된 상황에서안평의첩집으로 남루한 옷차림을 한 황보인이 남의 눈을 피해 드나들었다. 또한 안평은 김종서·정분 · 허후·민신·이양·조극관·정효전·정효강 등 이른바 자신의 사람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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