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경찰훈령에 의해 1904년인 금년 7월부터 이 땅의 치안이 일본군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감골댁이 알 리 없었던 것이다. - P42
지삼출은 쇠고랑을 찬채 판자바닥에 꿇어앉혀졌다. 그리고 무작정 매타작을 당하기 시작했다. 고노야로, 기미가 부라이까(이새끼, 네가 왈패냐)!" 헌병은 싸리회초리를 휘두를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건 어떤 대답을 원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매질에 제 신명을 살리기위한 장단맞추기였고, 제 기운을 돋우기 위한 기합넣기였다. "아이쿠쿠쿠····· - P43
질기고 낭창낭창한 싸리회초리가 장정의 기운에 실려 몸을 휘감을 때마다 그 아픔의 고통은 혹독하게 맵고 사무쳤다. 회초리가 한차례씩 떨어질 때마다 살이 죽죽 찢어져 나가는 것 같았고, - P43
그리고 매질을 당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은 천하의 바보라는 것을 지삼출은 익히 알고 있었다. 곤장 맞으며 엄살 부려 미움 사는 죄인은 없어도, 매 아픔 참아내다 매 두 벌 버는 충신은있다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것이다. - P44
매 앞에 장사 없는바에야 왜놈한테 맞는 것이 아니꼽고 더럽다 하더라도 괜히 아픔을 참아내다 왜놈성질을 돋워 매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작정한지삼출은 매가 떨어질 때마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 P44
"이놈아 똑똑히 들어라. 이달부터 조선땅의 치안은 모두 우리 일본군이 맡게 되었다. 그게 바로 너희 임금님이 결정한 사항이라 그말이야. 알아듣겠어, 이 자식아!" 헌병은 구둣발로 지삼출의 무릎을 냅다 걷어찼다. 지삼출은 숨이 컥 막히는 걸 느끼며 옆으로 나뒹굴어졌다. 그는 무릎이 부러져버린 것 같은 혹심한 통증에 휘말리면서 통변의 입을 통해 헌병의말을 듣고 있었다. - P45
황토현싸움, 전주성 입성, 공주싸움의 피바다, 산속의 도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머슴살이의 은신생활…………. 그는 또 땅을 치고싶은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푸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 P46
이 궁궐을 불태우고 왕비를 죽인 것이었다. 그 다음에 벌인 것이측량이라는 것을 해대면서 전봇대를 수없이 세우는 일이었다. 그이상한 짓과 함께 들어선 것이 우체국이었다. - P48
그런 도깨비장난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목포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몰려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걸 개항이라고 했는데, 갑오년에서 3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군산도 개항이되어 왜놈들이 날마다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 P48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군산에만 붙어사는 것이 아니었다. 군산에다 연상 새집을지어대는가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김제 • 만경 들판을 휘젓고 다니며돈을 풀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논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런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한양과 부산 사이에 철도라는 것이 놓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 P48
"그것이야 자네 생각이고 자네넌 걸려도 되게 걸린 것이여. 헌병대가 치안얼 맡고 시범얼 보일라고 하는 참에 걸린 디다가, 또 자네가 박치기헌 사람이 누구냐 그것이여. 장칠문이도 나나 한가지로통변인 심인디, 통변헌티 폭행 가하는 것언 일본사람헌티 폭행허는것이나 똑같이 취급혀서 처벌하게 되야 있다 그것이여. - P51
여기서 일단 말을 끝낸 통변은 허리를 펴며 지삼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눈을 치켜뜬 지삼출은 통변을 노려보듯 하고 있었다. 그런 지삼출의 태도는 예상된 순서와는 완전히 엇나가는 것이었다. 순서가 제대로 되었으려면 그 방법이 무엇이냐며 몸이 달아 매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통변의 기색은 금방 달라지고 말았다. 눈치 빠르게 생긴 세모진얼굴에 냉기가 파르르 깃을 세우고 있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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