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2년(세종24) 7월 28일 세종은세자의 서무 처결기관으로 첨사원을 설치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세자를 시켜 조회나 강무 등의 의례적 행사를 주도하게 하고자신은 재위 중반 이후 추진하던 국가 사업에 전념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대군으로서 이유는 이때부터 나랏일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 P34
같은 달 13일 전제상정소가 설치되었는데, 이유는 그 기구의 도제조를 맡았다. 당시 세종은 이유 외에 마땅한사람을 찾기 어렵다면서 그를 발탁했다. 또 대군 이유는 한글 창제에도 이바지했다. - P34
1444년(세종 26) 9월에는 수기색제조가 되었다. - P34
1444년(세종26) 윤7월 세종은 부인 소헌왕후와 함께 충청도 청주의초수궁으로 갔다. 이때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대신해 한양에 남아 경복궁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초수궁에서 세종은 부인에게 둘째아들에 대해 한껏 칭찬했다. - P35
1445년(세종27) 2월 이유는 다시 수양으로 대군 호를 바꾸었다. 종친으로서 수양은 관료의 부당한 청탁은 들어주지 않았다. - P36
이후 궁을 나온 세종은 여러곳을 거쳐 1446년(세종28) 3월 수양의 집으로 옮겨 갔다. 거기서 3월 24일 소헌왕후가 소천했다. 수양은 어머니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도 궁밖에 머물던 아버지가 무려 2년 넘어 1447년(세종29) 2월 2일 경복궁의로 돌아올 때까지 그 뜻을 승정원에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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