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가장 많은 논전을 벌인 대상은 바리새인이었을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안식일에 대해 토론하신 주님은 사두개인들과는 병 고치는 권세에 대해 쟁론하셨습니다. 부자청년과는 영생 얻는 길에 대해, 장로들과는 식사할 때 손 씻는 관례를 두고 토론하셨습니다.  - P155

대제사장들과는 성전 청결사건으로 거세게 한판 붙으셨습니다. 사두개인들과는 부활에 관해, 헤롯당과는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문제로, 율법학자들과는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를 두고 토론하셨습니다. - P155

그렇다고 예수님이 싸움닭이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딤후 2:23)을 피하셨습니다. 논쟁을위한 논쟁을 벌이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크냐"(눅 9:46)를 두고 논란을 벌이지도 않으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 P156

토론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온전히 증언하셨습니다. 진리를 진리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리도 자주 전투적으로 논쟁을 벌이셨던단 하나의 이유는 말씀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었습니다. - P156

정조는 자기반성의 자료로 삼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규장각 신하들이 기록하게 하였는데, 그게 바로 「일득록입니다. 사관들이 왕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이 책은 사관이 아닌 신하들이 정조의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글로 남긴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 반성한다는 뜻을 지닌이 책에는 학문에 정진했던 정조의 어록인 만큼 공부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 P157

그중 한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다. "토론과 독서는 수레의바퀴나 새의 날개와 같아서, 한 가지만 버려도 학문을 할 수없다." 참으로 학문하는 방법의 본질을 꿰뚫는 말입니다. - P157

답답한 주입식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네요. 그들은 성경을 암송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한 성경에대해 무수한 질문을 퍼붓습니다.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부모들은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 했니?"라고 질문합니다. 다른 잘못은 크게 혼내지 않다가도 질문이 없으면 크게 혼을내기도 합니다.  - P159

성경공부 시간에는 부모나 교사가 시종일관질문만 합니다. 답을 스스로 찾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도 계속 질문하게끔 합니다. 생각하며 읽게하려는 것이지요.
- P159

성경을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을 가리켜 탈무드식논쟁법(Talmudic Debate)이라 합니다. 한쪽이 성경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의문을 말하면, 다른 한쪽은 왜 그렇게 읽고 해석했는지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상대방의논리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듭니다. 맥놓고당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공격에 대답하고, 질문하고,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따지고듭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이 고정되지 않게 하려고 역할과처지를 바꿔 토론합니다. 얼마나 토론에 열중인지 책상을치며 소리 지르기도 합니다. 마치 싸우는 것 것 같습니다 - P160

정녕 유대인은 토론하는 민족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은 토론하게끔 만드는 경전입니다.  - P160

토론식 성경 읽기는 성경의 요구입니다. 예수님처럼, 제자들처럼, 유대인들처럼 성경을 토론하면서 읽으십시오. - P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