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답답한 속을 더는 참지 못하여 삼출이를 부르고 말았다. 그러나 차마 아들에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생이별의 멀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아들의 말 못할 심사를 헤아렸던 것이다. - P13
왜놈돈20원이나 받아묵은 목심인디인자 백정놈헌티 고삐 잡힌 소 신세요. 공연시리 헛생각 묵지 말랑게라." 방영근은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그러나 마음은 그 반대였다. - P14
그들 세 사람은 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걷기에 지쳐 있었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 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일부였다. - P14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 만경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 P14
눈길이 아스라해지고 숨길이 아득해지도록 넓은 그 벌판이 보에 너무 지루하고 허허로울까 보아 조물주는 조화를 부린 것일까들녘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야산들을 앉혀놓고 있었다. - P14
일찍이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선각의 위업을 홀로 세우고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왕에게 죽임을 당한 김정호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엮어내기 위해 반도땅전체를 일곱 차례 이상 샅샅이 답사하면서 호남평야에 발을 디딜 때마다 그가이없이 넓은 벌에 무릎 꿇고 이마 대어 고마움의 절을 올렸다는 것이다. - P15
그분은 험산준령이반도땅의 7할을 넘게 차지하고 앉은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그 척박한 땅에 다행히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어 거기서 나는곡식으로 이 땅의 목숨 5할이 먹고산다는 것도 알았으므로 그렇게 절을 올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 P15
감골댁은 얼른 허리를 추슬러 세우며 응답했다. 점심을 굶은 채50리 길을 걸어오느라고 지칠 대로 지쳐 절로 허리가 접혔던 것이다. - P16
잡것, 누가 왜놈덜 안마당 아니라고 헐성불러 안통에 들어서기도전에 저 방정맞은 것이 얼찐대고 지랄이랑가." 지삼출이 역정을 내며 앞을 가로질러 가는 인력거를 향해 침을뱉었다. - P16
그러나 인력거는 일본인들이 자칭 세계적인 발명품이라고뽐내는 물건답게 침 튀는 것 정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삐까닥거리며 가볍게 굴러가고 있었다. - P16
‘게다‘라는 나무신이 그렇듯 인력거라는 것도 일본사람들이 꼭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물건 중의 하나였다. - P16
"성님, 입조심허씨요. 왜놈덜이 왜놈이란 말언 더 잘 알아듣는다닝게로" 방영근이 쓴웃음을 지었다. - P16
"참 탈난 시상이여, 삼사년 새에 군산은 왜산이 되야불고, 징게맹갱 들판도 하로가 다르게 왜놈덜 판이 돼가는디, 요러다가 조선천지가 왜놈덜 차지 되는 것 아닐랑가 몰라?" - P16
"시상 판세 돌아가는 꼬라지가 아매 그리될지도 몰르요. 올봄에 아라사허고 전쟁에서 이기기 시작허자 왜놈덜이 기세 펄펄혀서군대만 몰려든 거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정신없이 몰려든답디다. 그나저나 나야뜨는 몸인게 알 바 아니오." - P17
"속 뻔헌 그짓말 마씨요. 그런 생각 맘에 담지 않았음사 어찌 그런 말이 그리 쉴케 쑥 나와진다요. 그 일로 그리 쌩고생험스로 숨어사는 처지에 맘속에다가 안직도 광솔(솔)불피우고 있습니여?"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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