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의 부대 돌격조는 어둠 속의 산길을 헤쳐가고 있었다. 이태식이 직접 이끌고 있는 돌격조는 자그마치 20명이었다. 그 속에강경애도 물론 끼여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극성스러울 만큼 투쟁력을 발휘해 결국 대장 이태식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던것이다. - P55
그건 이태식이가 뒤로 물러앉고 만 일종의 만족스러운 항복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녀는 소조의 조장까지 맡게 되었다. 그녀는 오늘도 네 개의 소조 중에 하나를 맡고 있었다. - P55
"아홉 개구만이라." "맞으요, 아홉 개요." "워찌 된 일일께라?" "날이 저품시로 한나가 더 늘어난 것이요." "워째서라? 누가 저 무건 돌얼 실답잖게 그렸을께라?" "개덜이요. 저그 아홉 개중에 워떤 것이 새로 놓인 것인지 몰르겄는디, 고것얼 밟았다 허먼 영축없이 죽소. 그 밑에 지뢰가 설치돼 있응께." - P59
강경애는 그 처음 듣는 말에 소름이 끼쳤다. "글먼, 우리가 여그로 올 것얼 미리 알았단 말인게라?" "고것이 아니오. 개덜언 우리가 댕길만헌디다가 날이 저물면지뢰럴 설치혔다가는 날이 새먼 띠내고, 밤에넌 또 설치허고 허는것이오." - P59
그는 그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빨치산에게 겨울은 또 하나의 적이었다. 토벌대는 싸워서 이길 수나 있는적이었지만, 겨울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적이었다. 거기다가 토벌대가 겨울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겨울은 점점 더 무서운 적으로변해갔던 것이다. - P61
철길 파괴작전은 적의 기동성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 - P62
강경애는 예감의 적중에 약간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구르는소리가 났던 거리의 느낌으로 그녀는 자신의 조원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되기에 앞서 맥이 빠지는 것은무슨 까닭일까. 그가 김동혁인 까닭이었다. - P65
부대원들 중에서 강경애를 싫어하는 대원은 하나도 없었다. 여자대원들이 네댓 명 있었지만 유독 강경애가 인기가 높은 것은 여자답지 않은 용맹성과 여자다운 헌신성의 양면 때문이었다. - P67
그 두 가지 점은 이성인 동지로서 남자대원들이 좋아하기에 꼭 알맞기도했다. 여자가 함께 용감하게 싸우니까 더 용기가 나고, 누구에게나차별 없이 친절하니까 서로가 부담 없이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 P67
그런데 김동혁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강경애를‘여자‘로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약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편인 그가 적극적인 용기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강경애 때문이었다 - P67
그녀는 그저 투쟁력이 강한 남자대원일수록 더 좋아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동지는 이태식일 수밖에 없었다. - P68
문을 박차느라고 이마에 혹이 솟은 하대치는 터널 속에서 레일두 토막을 빼내고, 기관총과 수류탄 20여 개를 챙겨가지고 바람처럼 어둠 깊은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P69
그리고 의경을 친일경력자들과 구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올바른 것이었고, 그 파급효과 또한 컸다. - P70
이해룡은 당장 식량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해결은 해방구가없는 한 천생 보투밖에 없었다. 지리산 자락에 있었던 작은 규모의얼마 되지 않았던 마을들은 이미 1949년 하반기에 대대적으로 실시된 소개로 다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 P70
"고것이 말이요, 시상인심이 조석변이드라고 정전이다 휴전이다해싼께로 그새에 인심이 야리꾸리하게 변해가는 눈치등마, 가실이시작됨스로부텀은 아조 훼까닥 달라져뿌러서 우리럴 인자 똥 친작대기로 안다 그것이요. - P71
바로 인민들입니다. 우리가 고생한 만큼 인민들도고생했습니다. 인민들은 우리를 돕느라고 고생을 한 것만이 아니라우리를 도왔다는 혐의로 적들에게 시달리는 고생도 곁으로 해왔습니다. 인민들이 겪은 그 이중적인 고생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 P73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혁명된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생존의 상황이 달라지게 되니까 어찌할 수 없이 그 겉모습을바꾸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달라진 겉모습을 문제 삼기 전에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그들이 우리한테 가질 실망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치열하게 투쟁해얄 것 아닙니까? - P73
인민일 뿐입니다. 인민의 도움을 받자면 우리는 지난날보다 더욱 인민 앞에 겸손하고 진실해야합니다. 그들에게 강압적인 방법을 쓸 때 우리의 최대목표인 혁명은 파괴되어 버리고 우리는 더러운 폭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민들은 우리를 완전하게 외면하게 됩니다. - P74
굶으면서 싸우다가 죽어가는 것, 그것이 혁명전사의 순결이고 인민들에게 신뢰를 심는 길이고, 다음의 역사에서 혁명이 성취되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혁명은 적에게만폭력인 것이지 인민에겐 끝없는 신뢰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혁명전사는 외롭고 또 위대한 것입니다." - P74
겁내지 마라. 약속대로 다 살려주겠다. 먼저, 옷들을 다 벗어라!" 이해룡이 내린 명령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우물거렸다. "뭘 꾸물거리고 있나. 빤스만 남기고 구두까지 다들 벗어! 우리가 월동준비하는 거니까." - P79
"아니구만요, 해, 해방되고부터 인디요. 그 얼굴이 하얗게 굳어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맞구만이라 그놈이 순사보럴 해묵은 배창순디, 행투깨나 고약시럽게 헌 악질이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외친 소리였다. 그 사내의 겁 질린 얼굴이그만 푹 떨구어졌다. - P80
무장대원 넷, 비무장대원 셋이 없었다. 일곱 명의 목숨을잃어가며 감행한 오늘의 보투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쩐지 이해룡은 선뜻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늘로 고개를젖히며 긴 숨을 토해냈다. 결국 일곱 동지의 몸을 뜯어먹는 셈이로구나!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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