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갈라디아서 도입부에서 바울은 이러한 관행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는 감사 표현 대신 저주를 써넣었다. 그것도 두 번(1:8-9)이나! 갈라디아서가 회중 앞에서처음 낭독될 때 갈라디아 회중은 자기들의 관습적 기대에정면으로 반하는 이 대목에서 무척 놀랐을 것이다. 이는정확히 바울이 의도한 바였다.  - P17

앞으로 보겠지만, 갈라디아서는 전복적 의미가 곳곳에 박힌 구약해석, 독특한 은혜이해, 복음 설명, 일반적이지 않은 율법 이해, 새로운 기반위에 쌓은 윤리적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중심에 청자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자신의 편에 서게 하려는 바울의 계산된 수사법이 있다. (수사법은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수사학에서 도출된 기술이다.) 편지도입부의 저주문구는 그가 사용한 수사법의 한 예이다. - P17

그러나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바울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면 바울의복음은 ‘절대적 권위‘가 있다는 말이 된다. 즉 바울은 그가전한 복음이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 P19

 바울은 먼저 예수께서 우리의 죄들(복수형)을 위해 "그 자신을 주셨다"고 말한다. 단순히 ‘죽었다‘는 동사 대신 이 표현을 쓴 이유가 있을까?  - P19

또 그는예수가 죽으신 목적을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집어 올려내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고 천명한다. (앞으로는 이것을 ‘그리스도-사건 the Christ-event‘ 이라고 명명하겠다.)  - P19

바로 ‘그리스도-사건‘이 지닌 선물의 측면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넘겨 주신 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값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무효화될 수 없으며 무효화해서도 안 된다.  - P20

이 신학적 사실과 당위성으로부터 바울은 의로움이 율법을 통해 올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선물)를 무효화하지 않는다. 만약 의로움이 율법을 통해서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2:21). - P20

믿음은 삶으로, 특히 사랑으로 표현되어야한다(5: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사건‘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뜻이다(1:4).
- P21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르는 상황을 바울은 "은혜를 통해 부르신 분(하나님 또는 그리스도)"
을 빠르게 버리고 떠난 행동이라고 진단한다.  - P21

설득은 명백한 사실 적시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감정, 권위, 세간의 인정, 청자와의 관계 등 여러 요소가 화학 작용을 이루어야 설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갈라디아 회중과 가까이에서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복음을 변질시킨 자들"은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 P22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던 바울이 선택한 설득방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수사학, 더 정확히는 청중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논법이었다.
- P23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즉 그리스도의 유일한 복음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음을 천명한다.  - P23

 바울이 살던 세상에서는 선물 주고받기 관습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 현대인의 통념과는 정반대로 선물을 제대로 주기위해서는 선물 받을 사람을 신중히 골라야 했다.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 좋은 선물이었고, 선물을 받은 사람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자기가 받은 선물의가치만큼 되갚을 의무감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 P26

이러한 당대의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그래서 선물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바울에게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주신 것은 충격적이며 사회적 가치 체계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 P26

다메섹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 세 번이나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바울 자신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만남은갈라디아서 1:15-16 이 유일하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가 바울 "안에 계시되었다."  - P26

그리스도가 바울 ‘안에 계시되었다는 주제는 2장에서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라는 유명한 고백으로 재현되고, 이후 갈라디아 교인들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재형성되기를 바란다는 바울의소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4:19).
- P27

그런데 왜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것일까? "계시"라는 표현이 이 단락에서 두 번이나 나오는 것(1:12, 16)으로 미루어 볼 때, 여전히 그는 그리스도와 만남부터 그이후의 사역까지 늘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배운 적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27

여기에서 바울은 예레미야 이사야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무와 그가 선포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직접, 바울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하고 그에게의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께서인증하신, 이방인 신자들이 순종해야 할 절대적 권위를 지닌 메시지이다.  - P27

다시 말해, 바울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전혀 차이가 없음을 2:10까지 변론한다.  - P27

결국 1장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하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만이 유일하고 참된 것이고, 그의 복음은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전혀 차이가 없다.  - P28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저주의 대상이 된다. 앞으로 계속 살펴보겠지만 바로 이 점이 갈라디아서이해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 (율법과 칭의의 관계를 다루는 로마서와 차이가 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 P28

복음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일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순종의 대상이다.  - P28

앞서 말했듯 신성한 물건이 손상되거나 침해되지 않도록 저주를 걸어 놓는 것은 고대의 사회와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예수따르미(Jesus-follower)가 되기 전 이방인으로서 이방신들을 숭배했던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바울의 이러한 메시지는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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