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삶을 내세워 이세계를 중시하느라, 죽음을 거부하느라 인간은 죽음에 대한 억압,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원이라는 관점을 잃게 되면서 더욱 연약해지고, 더 덧없어질 뿐입니다.  - P24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다른 차원을 열어젖힙니다. 그리스도교에서죽음은 멸망 받아야 할 원수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플라톤의 관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관념에 익숙해지도록 하려 애썼을 뿐 아니라 죽음을 사랑하도록, 그래서 우리의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연습‘이 되도록 종용했습니다.  - P26

그리스도교의 중심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죽음이 그 힘을 잃었다고 힘차게 선포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는다!" 그리스도교는 수세기 동안 이 전례 없는 선언, "주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승리의 선언으로 이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 P27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인이란 다른 무엇보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무덤에 있는 자들이 기뻐할 것이라"는 선언을, 죽음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는이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진실입니다.  - P27

그리스도교의 주된 관심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이 아니라 죽음을 이긴 승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죽음에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 P29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도바울의 말미로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고린 15:14) - P30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로마 5:12) - P36

주님,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당신 안에서쉴 때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비극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하느님을 위한 삶을 갈망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 P37

 생명의 근원이며 목적이며 내용이신 하느님에게서 스스로 잘려 나온 인간입니다. 이 때문에 죽음이, 파괴이며, 분리이며, 생명을 헛되며 덧없게 하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것이 환상일 뿐임을 드러내는 죽음이 삶의 최상위법이 되었습니다.
- P39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인간은 죽음이 없는 세계,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꿈을 위해 인간은 이 세계를 죽음에 내주었습니다.  - 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