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도읍지 예루살렘에서 4백년 남짓(BC1000~586)의 다윗 왕국의 역사가시작되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할 일이 남았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는 것이다.  - P215

예루살렘이 제국 통치의 진정한 중심지로 역할을 하려면 지정학적 중립성이나 군사 전략적 이점만으로 부족하다. 예루살렘은 종교 중심지도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이방신을 섬기던 도시 예루살렘이 유다의 헤브론이나 이스라엘의 실로, 길갈, 벧엘과같은 다른 도시들을 제치고 국가의 종교 중심지가 되려면 여호와의 궤가 필수적이다.  - P215

더구나 여호와의 궤는 특히 북방 지파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상징이었다. - P215

언약궤는 길갈, 벧엘, 실로 등 주로 북방 지화의 거점 도시에 안치되었다. 즉 북방 지파들은 이 언약궤를 중심으로학교 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의소에 설치함으로써 다윗은 북방 지파들에 대한 통치를 더욱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 P217

이처럼 다윗이 궤를 옮기기 위해 이스라엘의모든 "젊은이 (선택된 자, 뽑힌 자들을 다시 모았다"는 말은 다윗의 대관식을 상기시킴으로써 언약궤를 옮기는 일이 궁극적으로 다윗의 왕권강화와 연관 있음을 암시한다.
- P217

한편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기 위해 삼만 명의 젊은이들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들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그 작전이 실패할 것에 대한 복선도 제공한다.  - P217

이 궤의 이동에 동원되었음을 생각하면, 다윗의 이번 작전은 하나님의도움보다는 인간 정치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궤를 옮기는 장면에서 있어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말이 없음에주목하자.  - P218

 다윗이 이전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철저히 물음으로써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 아울러 언약궤를 예루살렘 옮기는 것이 다윗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이다윗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 P218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을 나타낸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질을 축약해 담고 있다고 여겨졌다. 구약 성경전체를 네 글자로 요약하면 요드-헤-바브-헤라는 유대인 미드라시가 있을 정도다.  - P219

이 때문에 하나님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그이름(=신성 사문자)을 소리내어발음하는 것조차 그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여겼다." 그들은 신성 사문자가 본문에 등장할 때마다 주님을 의미하는 아도나이로 바꾸어 읽거나 "그 이름"을 의미하는 하셈이라고 읽었다.  - P219

 당시 베트는 가부장 중심의 경제 사회 단위 즉 "세대"를 의미했지만 종종 국가 전체도 베트로 불렸다. 국가도 왕을 아버지로 하는 세대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는 표현에는 다윗 아래서 하나로 응집된 유기체로서 왕국의 의미가 들어 있다. 궤를 가져오는 일은 이처럼 한때 반목하던 지파들을 하나의 왕 아래 가족처럼 묶는 효과를 지닌 것이다.  - P221

사무엘서 저자는 의도적으로 웃사의 잘못을 특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가 발한 곳이 웃사라는 사람인지 웃사라는 장소인지도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하나님의진노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딴 사람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그는 이 모든 수송 작전의 책임자인 다윗인 것이다.
- P224

다윗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다윗은 율법에 기록된 언약궤의 운반 규칙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존했다. - P224

율법에 따르면(출 25:14-15, 신 10:8 참조), 언약궤는 레위인들이 궤의양쪽 고리에 끼워진 채들을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다. 한편 새 수레, 즉제의적으로 정결한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 나르는 것은 이방의 관습이었다.  - P225

 다윗이 보기에 궤를 세수레에 운반하는 일과 아비나답의 아들들이 수레 운반의 역할을 맡는 것은 이미 검증된 방법 같았을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경험을 의지하다가 말씀 순종에 실패했다.  - P225

다윗의 잘못은 궤를 옮기는 일에 있어 율법보다 자신의 경험에 의존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이 궤를 예루살렘에 가져오려는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 P225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온갖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사용된 히브리어 ‘메사하킴‘은 구약 성경에서 예배나 제사의 문맥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동사이다.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일이 예배가아니라 인간적인 축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 P226

50여 년 전 여호와의 궤를 구경거리로 삼았다가 (오만)칠십 명의 희생자를 낸 벧세메스 마을 사람들처럼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가 애꿎은 충신 하나를 희생시켰다. 어찌 보면 이방인 옷사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를 그런 상황에 있게 한 지도자 다윗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  - P226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궤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자 하나님은 이방인의 집을 거쳐 삼아 거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비록 선민이지만, 그 지위가 불변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그분이 원하시는 민족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실 자유를 가지신 분이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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