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므비보셋에 대한 태도도 이런 이중성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가 므비보셋을 도운 것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인가? 아니면 사울의 집안을 멸절시켰다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가? - P287
므비보셋을 항상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게 한 조치는 므비보셋에 대한 호혜인가 마지막 남은 사울의 후손을왕의 감시하에 두어 그를 구심점으로 한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가? 정답은 모른다. - P287
다윗이 므비보셋을 궁전으로 거둔 것은 선의인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므비보셋에 대한 선대를 통해 다윗이 정치적 이득을 보았다 해서 그 행위 자체의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P287
이전 장이 다윗의 성공적 침략 전쟁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대외적인 문제를 해결한 다윗이 사울의 집안과 화해를 도모함으로써 대내적 통합을 꾀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88
사울의 아들이자 자신의 처남인 요나단과 한 언약을 잊지 않은 것 같다. 사무엘상 20장 15절에 따르면 다윗은 요나단과 그의 집에 "인자함" 헤세드)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다윗은 "요나단을 생각해서" 사울의 남은 후손에게 "긍휼"헤세드)을 행하려고 한다. - P289
하지만 다윗의 첫 질문은 그의 긍휼이 그다지 순수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정말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아직 있느냐?"라는 질문에서 "정말 (27)"이라는 말은 사울의 후손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이다. - P289
다윗이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사무엘하21장에 기록되어 있다. - P289
먼저 사무엘하 21장에 기록된 사건은 시간 순서에 의한 것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21장에 기록되었다고해서, 본 장에 벌어진 사건보다 후대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자들은 21-24장 안에는 이전 본문에서 미쳐 다루지 못한 에피소드를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추가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 P289
본문에서 다윗이 "정말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아직 있느냐?"라고 물은 것으로 보아, 본문은 다윗이 사울의후손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준 후의 일인 것처럼 보인다. 다시말해 다윗이 요나단을 생각해서 사울의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푼다고말하고 있지만, 그는 얼마 전 사울의 후손들의 죽음에 기여했다. - P289
저자가 다윗과 시바의 대화에 비교적 긴 지면을 할애한 것(2-4절, 9-11절)은 다윗이 사울의 후손을 처리하는 데에 시바가 감당할 중요한 역할을 암시해 준다. - P290
시바는 다윗이 요나단의 숨겨진 아들을 찾아내는 데역할을 할 뿐 아니라, 다윗이 므비보셋과 맺은 일종의 거래가 집행됨에있어 중개 역할도 한다. 즉 다윗은 사울의 후손의 일을 처리하는 데사울의 종 출신 시바를 중요한 요원으로 활용하였다. - P290
이런 관점에서 다윗이 "그대가 시바인가"라고 물었을 때, 시바가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과거에 사울에게 충성한 종이었지만, 이제는 철저히 다윗에 충성하는 종이 되었다. - P290
이에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그가 "두 다리를 다친" 장애인임을 강조한다. - P291
또한 사울의 후손을 자기 집에숨겨 준 것으로 보아 사울 왕에 충성하는 백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본래 길르앗 지역이 사울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예. 길르앗야베스인들)는 사실과 잘 일치한다. - P292
사울이 죽은 후 이스보셋 왕국이 사울에 충성도가 높은 길르앗의 마하나임에 수도를 정한 것처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도 길르앗의 로드발로 피난했던 것 같다. - P292
한편 로드발은 "무일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 지명이 본문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면, 우리는 므비보셋이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무일푼으로 신세 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P292
흥미로운 것은 마길이 후에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마하나임으로 이주했을 때, 바르실래와 함께 다윗을선대한다는 것이다(삼하 17:27-28). 사울의 후손 므비보셋에 대한 다윗의 선대에 감동받아 마길이 다윗에게 충성하는 신하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 P292
혹은 마길이 본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는 안 되는성품의 사람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가 사실이라면, 본문은 므비보셋에대한 마길의 순수한 선행와 다윗의 다소 정치적인 선행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2
요나단을 생각해서 너에게 긍휼을 행하고 행하리라"(7절). 시바에게 "하나님의 긍휼"이라 말했던 것과 달리 다윗은 여기서 "요나단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에게 "긍휼을 베푼다고 이야기한다.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그다지 감동도 안심도 되지않은 것일 것이다. 오히려 그를 더 안심시키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다윗의 우정일 것이다. - P293
먼저 므비모셋에게 주어진 땅이 그의 조상 사울의 땅이라면, 그것은 자기 것을 돌려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어떻게 호의가 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왕이라도 유업으로 이어지는 조상의 땅은 빼앗을 수 없음을 생각하면(왕상 21장의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참조), - P294
마지막으로 므비보셋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자. 이 이름은 "입에서 부끄러움이 나온다"를 의미한다. 어느 아버지도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왕자 요나단이 자신의 아들에게이런 이름을 지어 주었을 리는 더욱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므비보셋의본래 이름을 므럽바알이라고 주장한다. 역대서 기자는 요나단의 장애아들을 므럽바알로 부른다 - P294
(대상 8:34). 므립바알의 본래 의미는 "주께서나의 변호인이다"라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바알은 본래 "주인" 혹은"남편"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로 학자들에 따르면 여호와가 "바알, 즉주인으로 불렸다고 주장한다. - P294
비평학자들은 사무엘서 저자의 시대에는 바알이 들어간 이름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기 때문에, 바알 대신 "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보셋을 넣었다고 한다. - P295
예를 들어, 사울의 뒤를이어 왕이 된 아들도 이스보셋(삼하 1:8)과 에스바알(대상 9:39), 두 개의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견해는 사무엘서 저자보다 더 후대에 저작했던 역대서 저자가 바알이 들어간 이름을 유지한 이유를 설명할 수없다. - P295
한편 일부 유대 미드라시는 요나단의 아들이 다윗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신분을 숨기느라 사용한 가명이 "므비보셋"이라고 주장한다. - P295
비록 므비보셋이 왕자들처럼 예루살렘 궁에서 살며,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만, 무전취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바가 보내오는 돈으로 그것을 충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배푼 "긍휼"이 어떤종류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 P296
다윗은 원래 비보셋에게 돌아가야 할 유업을 돌려준 것뿐이고, 그를 거두어 궁에서살게 했지만, 그 비용을 므비보셋에게서 받아낸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므비보셋이 비록 장애인이지만 사울의 마지막 후손이기 때문에, 반란 세력이 그를 구심점으로 모일 가능성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 P296
시바는 다윗의 명령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을 다윗의 "종"으로 두 번 지칭한다. 그가 므비보셋의 땅을 경작하는 것은 다윗의 종으로 수행하는임무인 것이다. 그의 임무는 단순히 므비보셋의 땅을 경작하여 그 소산물을 궁에 가져와 므비보셋의 경비를 충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므비보셋의 아들 미가를 감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 P297
장애인이었던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궁에 살기 때문에 곁에 두고 감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가는 어리지만, 정상적 신체를 소유한 사울의 후손이다. 그가 성장하면 다윗 왕정에 위험 요소가 될지 모른다. 다윗으로서는 시바와 같은 충신에게그를 돌보며 감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안심되었을 것이다. - P297
왜냐하면 모든 정치인들의 행위에는 이런 이중성이 필연적으로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울의 후손들은 기브온에게 내어 주어 죽게한 다윗이 므비보셋을 죽이지 않고 그에게 유업까지 돌려준 것은 분명므비보셋에 대한 선행이다. 그 행위가 다윗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했다. 는 사실이 그 선행을 가릴 수는 없다. - P298
또한 다윗의 선행이 본래 므비보셋의 소유를 그에게 돌려준 것에 불과했다는 것도 다윗의 선행의 가치를 깎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는 왕은 초법적 존재였기 때문에, - P298
고대 이스라엘에서 장애인의 위치 고대 사회에서 장애인이 왕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현실적으로 장애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인식했던 고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신의 창조의 불완전성을 보여 주기 때문에 기피 대상이었다. 그들은 눈에 띄는 자리에서 배제되었다. - P298
레위기에 따르면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신체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물며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여겨진 왕은 오죽했겠는가?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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