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적 조건이라는 것도 미군들에게는가히 절대적 악영향을 끼쳤다. 내리면 쌓이는 눈으로 그들이 자랑하는 기동성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자동차도 대표도굴곡이 심한 눈 쌓인 길에서는 움직일 줄 모르는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또, 전선이 길어진 데다가 자동차의 기동성까지 저하되자 보급문제가 심각한 곤궁에 빠져들었다. - P66
거기다가 미군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눈을 처음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플로리다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중남부 지역에서 살아온 그들은 영하 20도 이하의추위 속에서 이미 ‘군인‘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일 수도 없었다. 추위에 대한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그들은 동상자의 집계만 계속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 P66
그런 상황에다가 기상천외한 중공군의인해전술과 밤을 이용한 신속한 기동성에 부딪혀 미군들은 고전을면치 못하고 있었다. - P66
중공군이 도대체 얼마나 참전을 했는지 그 규모나 숫자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쟁이 민족적전쟁에서 국제적 전쟁으로 그 양상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갓댐레드차이니스!" - P67
김범우는 다음날 아침에야 그곳이 영국군 부대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 전쟁에 미국의 개입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세계 16개의 나라가 유엔군이란 명목으로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었다. 그 말로만 듣고 있었던 16개의 나라 군대 중에서한 나라 군대를 만나게 되니 기분이 이상스러웠다. 그 나라가 영국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이제 미국의 들러리나 서고 있는 영국 - P71
수많은식민지 침략과 함께 감행한 살인과 약탈의 인류사적 범죄를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광‘으로 미화시킨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과거라는 것을 영국은 한반도의 전쟁에서 스스로 여실하게 입증하고 있었다. 많은 식민지땅에서 거침없이 살인과 약탈을 저질러 호화롭고 배부르게 살면서 영국인들은 ‘영국신사‘라는 지극히 도덕적인 인간상을 조작해 내자신들의 비인간적 범죄를 위장했다. - P72
김범우는 담배를 뽑으며, 이 친구가 무슨 아쉬운 소리를 할 게단단히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의개인주의적인 생리로 담배까지 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73
"빌어먹을! 작전권을 외국군에게 넘겨주다니, 그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유일한 넌센스고, 코메디요. 물론 맥아더가요구했다는 말도 있고, 이 대통령이 넘겼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요구했다고 넘겨준 사람이나, 넘겨준다고 받은 사람이나, 둘 다똑같이 미친 사람들이오. 그럼 당신도 그 미친 사람들의 가엾은 피해자로군요. - P7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모든 미군들에게는 적을 증오하게 하는생각을 고취시키고 있소. 적을 증오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먼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시아인은 미국인과 동등하지 않다. 아시아인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 이하의 존재다. 이런 정의를 내려놓고, 그러므로 아시아인은 물건과 같이 취급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동물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이유로그들을 죽이는 것이며, 우리는 동물을 죽일 때 마음이 동요되지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는 논리를 주입시킵니다. - P76
특히 남자들은 검정물을 들인 군복을 많이 입고 있었다. 검정물을 들이지 않은 야전잠바의 등판에는 ‘염색‘이거나 ‘나는 개요‘ 또는 ‘처녀 구함‘ 같은 글씨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군수품 유출을 단속하는 동시에 민간인들의 군복착용을 막으려고 헌병들이흰 페인트, 검정 페인트 가리지 않고 내갈긴 글씨들이었다. - P78
선배쪽에서는 ‘그새끼 선배도 몰라보는 놈‘이라고 계속 공격해 대기만하면, 그 사람이 수준 이하로 평이 나 있지 않는 한 말썽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후배가 일방적으로 패하게 되어 있었다. - P80
뿌리 깊은 장유유서에서 비롯된 서열의식은 ‘선배도 몰라보는 놈‘에 대해서 선배들은 무조건 공동피해의식과 함께 일치된 적개심을 품게 되고, 그것은 또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 P80
"아니, 홍차를 마시는 게 촌티고 커피를 마시면 서울티라는 건도대체 어디서 나온 기준이야? 난 그런 소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홍차는 홍차맛이고 커피는 커피맛이지." 송성일은 참으로 아니꼽다는 생각으로 떫게 웃었다. "너하곤 도통 말이 안 통하는구나. 커피맛은 인생의 맛이다. 인생의 맛을 알아야 커피맛을 안다. 이 얼마나 근사한 말이냐. 누나는 이 말의 깊이를 너무 잘 알아 블랙커피를 마셨지." - P82
"신문이나 라디오는 절대 믿어선 안 돼. 난리가 터졌을 때도 얼마나 거짓말만 했냐." - P83
장비로 보자면그들이 먼저 혹한에 굴복해야 옳았다. 포로들 중에는 동상이 심해손가락 네 개가 얼부풀어 터져 한 덩어리로 붙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가락들이 푸르딩딩하게 부어오르거나 묽은 고름이 흐르는 사람들은 흔했다. - P90
그런데 그들은 그런 손으로 체포되기 전까지총을 쏘며 싸웠다고 했고, 그런 발로 잡히기 직전까지 야간행군을했다고도 했다. 만약 미군이 그런 상태라면 모두 후송시켜 달라고야단이 났을 것이다. 여기서 관점의 차이는 현격하게 드러났다. - P90
이런 상태로 전쟁을 시키는 상관을 원망하지 않는가?" "우리 상관도 마찬가지로 동상에 걸려 싸운다." "그럼 국가를 원망하지 않는가?" "국가는 인민을 위해 충실히 봉사하기 때문에 원망할 게 없다." "글쎄, 당의 고급간부들은 동상에 안 걸리고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도 원망을 안 해?" - P90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모 주석은 지금 우리가 먹는 것하고 똑같은 밥을 먹고 있다. 그건 대장정 때부터 그래왔고,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도대체 몸이 이래가지고 싸우는 게 고통스럽지 않은가?" "고통스럽지만 참는다." - P91
"누구를 위해 참는가?" "당과 인민을 위해 참는다." "언제까지 참는단 말인가?" "전쟁에 이길 때까지 참는다." "전쟁에 이기기 전에 동상이 심해져 죽어버리면 어쩔 것인가?" "동상이 심해져 병신이 될 수는 있어도 죽는 일은 없다. 만약 죽는 일이 있다 해도 죽기 전에 당이 다 알아서 조처한다" "그럼, 병신이 되면 어쩔 것인가?" - P91
"무얼 어쩐단 말인가? 인민해방전선에서 병신이 된 것이니 영광스럽고, 내 일생은 당이 책임지니까 난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 "모든 건 당이 해결한다고 믿고 있는데, 당이 무슨 신인 줄 아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당은 우리를 해방시켰고, 실제로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 P92
"그럼 너 자신은 뭐냐? 당과 관계없는 너 자신 말야." "난 인민의 한 사람이고, 당과 인민에 복무하는 인민해방전사다." - P92
따질 것도 없이 통역행위 자체가 민족에 대한 배반이었다. 강압에 의한 행위였다고 해서 그 행위를 통해 저지른 잘못이 용서되거나 상쇄되는 건 아니었다. ‘강압에 의한 행위‘는 행위의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 P95
손승호도 한 가지 목적을 정하면 굽힐 줄 모르는집념과 열기가 있었다. 그는 사범학교 때 책을 모았던 그 끈질긴 열성을 다시 발휘하면 모범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다만 그의 집념과 열기는 그 성격 탓에 염선배와는 다른 유형의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96
박두병과 염상진, 역시 염 선배가 돋보이는 존재였다. 지적이면서도 행동적이고, 치밀하면서도과감한 그는 거의 완벽한 공산주의자였다. - P96
세계 최강이라고 스스로 뽐내는 군대가 전투를 포기한 채 후퇴하기에 급급해 있었다. 버마 전선에서부터 얼마 전까지, 그렇게 맥 빠지고 초라한 모습의 미군을 본 적이 없는 김범우의 감회는 이상스러웠다. - P100
알렉산더도,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세계를 제패하려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 꿈이 몽상이 되게 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각 민족들이 갖는 고유성 때문이었다. 그 고유성이 저항의 힘으로 바뀔 때 세계의 통치라는 환상은 몽상이 된다. 미국은 그 환상을 또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 P100
통조림이라는 것은 양식 중에서도 제일 맛이 없는, 그들 말마따나 ‘죄수식‘이었다. 양식을 먹을 때마다 김치가 생각나게 마련이지만, 통조림은 유난히 김치를 그립게 했다. 맛이 없기도 해서겠지만 그 괴상하게 비위를 트는 깡통냄새 때문일거였다. - P102
"어허어, 대답얼 헐라면 그리 어중간 찝찌그리하게 허덜 말고 쏘주에 코 탁 쏘는 홍어회 묵디끼 쌈빡쌈빡허게 혀뿔고, 칼로 무시치대끼 씨언씨언허게 혀뿌시요. 나라 운명이 달린 중대사럴 놓고허는 말이 워찌 그리 선하품하는 것맨치로 뜨고 그요?" - P105
그간 튀밥 튀기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을 알게 되자 그 기막힘은 더했다. 그 속사정은 간단해서, 수중에 있는돈이 그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정 때부터 경찰관을 한사람으로서 그 청빈이 놀라웠고, 생업 앞에서 체면을 가리지 않은그 용기가 놀라웠고, 전직을 이용해 편한 돈벌이를 찾지 않는 그정직이 놀라워 권 서장은 그저 머리가 숙여질 뿐이었다. - P109
지난 일잉께 잊으라고 하시는디, 우리 경찰찌리 잊는다고 그 일이잊어질 성불르요? 그 피해자가 을매고, 그 가족이 또 올맨디 그 일이 잊어지겠소? 나가 허는 말언, 나라가 허는 일은 애시당초 글러묵었고, 글러묵은 일얼 시킨다고 그대로 따라서 허는 경찰도 글러묵었다 그것이요. 우에서 시키는 일잉께 워쩔 수가 없다 허겄지요들, 고것이 워디 사람으로 헐 소리요? 웃대가리덜이야 권력 잡겠다고 못된 일 억지로 시킨다 허드락도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덜이 정신 채리고 허먼 그리 기가 차게 쌩사람덜 죽이지는 안 혔을 것 아니겄소? - P115
보도연맹 가입자 중에 누가 진짜배기 빨갱인지 아닌지는 현지 경찰이 질로 잘 아는 일 아니겠소? 빨갱이 아닌지 뻔허게암시로도 우에서 죽이라고 헌께 쌩사람덜 그리 무작시럽게 죽여라? 글먼 우에서 명령 내린다고 즈그덜 엄니 아부지도 죽일 것이요? 일정 때 진 죄닦음 안 한 것도 워디헌디, 또 그런 죄꺼지 저질른 것이 경찰들이요. 그려서 결과가 워찌 되었소. - P115
"글씨요, 그 두 가지 다가 다시 복직헐 이유가 못 되는 상싶은디라. 나 같은 쫌팽이가 나 식으로 경찰질해 묵으면 그 수입이나 이수입이나 어슷비슷하고, 나라 헹펜이라는 것이 워떤 것인지 나잘 몰르겄는디, 나겉이 상부 명령척척 안 듣는 무능헌 물건 또 딜다가 워디다 써묵어지겄소." - P114
그 사람덜이 참말로 공산당이라고 생각하시요? 나는 그리생각허널 않소. 못 말로, 나라가 공산당으로 몰아치고 있소. 그사실을 몰르는 경찰이 워디 있소. 다 암시로도 자기덜이 저질른 죄눈가림허니라고 나라고 항꾼에 그 사람덜 공산당 맹글고 나스는 것이라 고런 앞뒤 없는 사람덜허고 나가 멀라고 또 경찰질얼해묵겄다고 나스겄소. - P116
요런 입싼 주딩이 나가 놀리는 것도 상대가권 서장님께 그러는 것이요. 전 원장님이 살아난 것이 총얼 헛방맞어서 그렇다고 소문이 나 있는디, 고것이 워디될 소리간디라? - P116
다 권 서장님이 살려낸 것이고, 권 서장님이 그리라도 혔응께 나가말문을 튼 것이요. 그리고, 나 맘얼 탁털어놔야워째 경찰복 다시는 안 입을라는 것인지 권 서장님이 이해하실 것 아니겠소?" - P116
권 서장은 창피스러움과 어떤 패배감을 느끼며 찬 바람 속을걷고 있었다. 예비검속은 이근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이 명백한 학살행위였고, 이근술의 옷을 벗긴 것은 경찰이범한 또 하나의 어리석고 치졸스런 범죄였다. - P117
권 서장은 그제야분명하게 이근술을 찾아갔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는 그 어리석고 치졸스런 범죄 위에 또 하나를 겹치려는 범죄음모였던 것이다. - P117
여러분, 여러분들은 누굽니까? 여러분들은 삼복더위 속에서팥죽땀을 흘려가며 그 어려운 농사를 지어낸 분들입니다. 공부에비하면 농사짓는 일은 수십 배, 수백 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끄떡없이 해낸 장한 여러분들께서 어찌 공부를 못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 P122
여러분들께서 틀림없이 공부를 해낼 수 있다는 좋은 증거가 바로 구빨치동지들입니다. 그동지들중에서 한글을 깨치지 못한 동지들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 P122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인권을 가졌다!" - P125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인권을 지킨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크게 하나로 어우러졌다. - P126
"예, 잘들 하셨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누구나 차등 없이 사는 것이 인권평등이다!" "누구나 차등 없이 사는 것이 인권평등이다!" " - P126
예, 힘차게 해서 좋습니다. 지나 부자들은 인권평등을 방해하는 우리의 적이다!" - P126
그들에게 그렇게 복창을 시킴으로써 ‘인권‘과 ‘인권평등‘이라는 말과 뜻을 익히게 함과 아울러 그 문장을 통해 의식을 일깨우는 한편, 그 다음단계로 나올 ‘혁명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준비작업으로, 안창민은 삼중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 P126
그리고 주입식이 아닌 문답식을 통해 참여의식을 촉진함으로써 학습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그런 모든 방법은 구빨치들의 학습에서 이미 효과를 보았던 것이다. - P126
‘기본‘이란 말은,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기본계급출신‘을 줄인 말입니다. 그리고 인민이란 노동자·농민·기본출을 다합한 뜻의 말입니다. - P128
그러면 여러분, 인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인민의 나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주고 부자 다쳐없애야 해요." "악질 순사덜도 다 없애야 허제라." "고것덜얼 싸잡아서 다 갱물에 처박아뿔어야 해요." - P128
인민이 주인이 되는 새 세상이 옵니다. 인민이 주인이 되는 완전새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걸 바로 혁이라고 합니다. - P128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외쳐봅시다. 혁명은 인민이인 되는 완전한 새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혁명은 인민이 주인 되는 완전한 새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 P128
빨치산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러시아의 말입니다. 러시아는 지금의 쏘련으로, 바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 동지의 지도 아래 인민혁명을 성취시키게 되자 망하고 만왕이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그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유격대가 됩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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