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법남침을 격퇴하기 위하여 국군은 즉각 반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시민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추호도 동요하지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시기 바…...." - P370

ㆍㆍㆍㆍㆍ 전국의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알려드립니다. 오늘 새벽 4시를 기하여 북괴군들이 삼팔선 전역에 걸쳐 대거 남침을 감행해 왔습니다. 이 불법・・・・・・11두 무릎을 깍지 끼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지숙의 가슴은 계속벌떡거리고 있었다. 처음에 가슴을 치온 충격은 예비되지 않은 감작스러움 때문이었고, 되풀이되는 방송을 따라 그 충격은 감격으로 바뀌며 가슴에 거센 물줄기를 일구고 있었다.  - P371

이지숙은 사람들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면서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라는 물건은 전화나 축음기처럼 귀한 물건이었다. 어지간한 살림살이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그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지금쯤 지주 몇몇이 알고 있을지 몰랐다.
- P372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것들, 어디다 대고 불법남침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가. 친일파·민족반역자라는 민족적 죄목도 모자라서미제국주의자들에게 붙어 나라와 민족을 또다시 팔아먹는 신식민주의자들이 어디다 대고 그따위 소릴 지껄이고 있는가.  - P372

 대통령의 그 힘찬 주장에 발맞추어 국방장관이고 참모총장이 입을 모아, 한시라도 명령만 내리시면 점심밥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밥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호언장담을 그 얼마나 자주 했던 것인가 그 장담은 마치 무슨 노랫가락처럼 유행된말이 아니던가.  - P374

그리고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북쪽의 행위를놓고 ‘불법남침‘ 운운하는 점이었다. 주의를 달리하는 두 정권 사이에 상호협약한 무슨 법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 P374

"권 서장, 참 별걱정 다 하시오.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하고는 다르잖소? 얼마나 의리 있고, 인정 있고, 책임감 있소. 우리 경찰들한테 해준 것하며, 빨갱이들을 몰아친 걸 보시오. 이번에도 여순반란을 진압해 버린 것처럼 간단하게 해치우고 말 거요. 미국은 문자그대로 위대한 나라 아니겠소.  - P379

난리가 났다는 소문은 점심나절까지 읍내 안통을 휘돌아 남쪽마을로는 된바람이 되어 퍼지고, 북쪽마을로는 마파람이 되어 퍼지고, 동쪽마을로는 하늬바람이 되어 퍼지고, 서쪽마을로는 샛바람이 되어 퍼져나갔다.  - P380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사상문제 하면 좌익을 떠올렸고, 좌익 하면아는 척도 들은 척도 본 척도 하지 말아야 된다고 못 박혀 있었다. 똑똑한 사람치고 좌익 안 한 사람 없고, 좌익 안 해가지고는똑똑하다는 말 못 듣는다는 말은 해방이 되고 얼마 동안까지만 통한 말이었고 - P380

경찰에서 본격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좌익 해서 남아나는 집 없고, 좌익 해서 목숨 부지하는 사람없다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간에 좌익에 관한 것이면 일체 내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묵계되어 있었다. - P381

 자정을 넘기고 28일이 시작되어 두 시간 반이 지나고있는 시각이었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굉음이 뒤따랐다. 한강인도교가 폭파되고 있었다. 비는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 P388

시간에 김범우는 손승호와 마주 앉아 있었다. 손승호는 어제점심나절에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인민군의 선발 탱크 부대가 형무소문을 밀어붙인 것이다. - P388

그 다음 소식이 정부의 대전 이전이었다. 회사가 하루를 다 채우지 않고 부리나케 문을 닫은 것은그 소식의 충격 때문이었다. 서너 시간 전까지도 회사에서는 ‘국군이 서울을 사수한다‘는 소식을 각 신문사에 응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는 문을 닫으면서 ‘각자가 알아서 행동하라‘고 했을 뿐이다. 정부는 서울을 포기하고 시민을 버렸고, 회사는 통신업무를 포기하고 기자를 버렸다. 그런데도 ‘서울사수‘ 방송은 하루종일 계속되고 있었다.  - P390

"자네 민망하게 만들자는 게 아니라, 이번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민족통일을 달성하려는 세력과 친일민족반역으로도 부족해서 다시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신식민주의자들과의 싸움이라는것을 말하고 싶은 거네." - P395

이학송은 쓴 입맛을 다시고는 담배를 깊이 빨았다. 온갖 방법의고문 앞에서 휘이거나 꺾이는 것, 그건 분명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이겨내지 못한 굴욕이고, 그 시간이 지나가면 자기혐오를 일으키는 괴로움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는 아니다. 이학송은 자기도 전향서를 썼다는 말을 차마 하기가 어려웠다. - P397

 미쏘가 강점하지 않고 해방을 맞이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 것이냐 하는 점이요. 사회혁명이나 사회개혁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었소. 그것은 계급적으로 지주제도를 척결하는 것이었고, 민족적으로 친일반민족세력들을 처단하는 것 아니었겠소.  - P399

바로 이 대목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죄를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소. 미국이 아니었으면 해방이 되고 깨끗하게 처단당했을 자들에게 미국이 국가정치권력을 만들어주고, 무장을 시켜주고 해서 이제 그 반민족세력들이 제놈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오히려 민족을 강제동원해서 제물로 써먹게 되었다 - P399

기 직전까지 그 인구가 대략 55만 정도였는데, 해방이 되고 1947년중반까지 그 배 이상이 늘어나고 말았소. 귀환동포, 지방의 상경자등도 있지만, 그 절대적인 수는 50만이 넘는 월남자들이었소. 우리가 친일반역자들을 130만에서 150만으로 추산하는데, 이북에 퍼져 있던 친일반역자들은 그때 모두 몰려내려온 셈이오. 물론 그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몇 퍼센트는 있소. 자아, 이렇게 볼 때 현재 서울 인구 백오십만 중에서 친일반역자 아닌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어림잡아 반을 넘지 않을까 싶소 - P404

"거짓꼴로라도 한 분만이라도 지 맘얼 받어주셨으면 그 표시로 평상 혼자서도 살아졌을 것인디……." 그녀의 울음 섞인 말이 어디까지고 따라오고 있었다.  - P418

이 순박하기만 한 여자야, 나라고 왜 그대를 갖고 싶지가 않았겠어. 그대 말마따나 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니라 젊은 남자야. 허나, 난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고, 그러면서 그대같이 순박한 여자를 장난 삼아 무책임하게 손댈 수 없었던거야.  - P418

어느 날 저녁밥상을 놓고 일어서는 순간 끼쳐오던 그대의 냄새를 맡을 때,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나가는 그대의 뒤꿈치를 보았을 때, 목욕을 하고 아직 물기에 젖어 윤나고 있는 그대의 머리칼을 보았을 때, 그대를 갖고 싶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참아냈다. 나는 그런 사내다. 나를 속이면서 틀린 일을 하고 싶지 않은것이다.  - P418

그런데 그대는 내 곁에 있으면서 아주 큰일을 해냈다. 그대는 내 병을 고쳐준 것이다. 여자의 거기는 시궁창보다도 더 더럽다는 내가 전쟁터에서 얻은 그 병을 그대는 서서히 치료해 준 것이다. 내 마음에서 그대를 갖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이 그 증거 아니냐 그대의 거기는 그대의 마음처럼 깨끗하리란 생각이 든다. 내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면, 그때 그대하고 하리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 있거라. 그때는 내가 그대를 찾아가리라, 그 벌교라는이상스럽게 정겨운 땅으로. - P419

부대는 상주를 거쳐 구미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에 국군이 유엔군에 편입되는 조처가 취해졌다는 소식이 들렸고, 다음날인 8일에는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심재모는 국군이 유엔군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P420

국군은 대한민국의 군대고, 유엔군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돕겠다고 온 여러 나라의 잡동사니 군대였다. 그런데 어째서 대한민국 군대가 그 잡동사니 군대에 ‘편입‘이 된단 말인가. 주인은 어디까지나대한민국 국군이고, 유엔군은 분명객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주인이 객 밑으로 들어가다니, 이거야말로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주객전도가 아닌가. 제대로 되면 유엔군이 국군에 편입되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못할 바에는 서로 독립된 상태로 작전 협조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 P420

그런데 마침내 12일에 이르러 국군의 통수권을 미군에게 이양하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심재모는 무릎이 꺾이는 절망을 느꼈다.

헌법에 따라 국군의 통수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행사하는 절대적이고 고유한 권한이었다. 그 권한을 미군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국권의 포기이고, 주권의 상실이었다.  - P421

통수권이 없는 대통령이 무슨 대통령이고, 대통령이 없는 나라가 무슨 나라인가. 그 영감이 노망을 하는 것인가. 그 영감은 그렇다 하더라도 통수권을 받아가는 미군의 속셈은 또 무엇인가. 이제 실질적인통치자는 맥아더가 아닌가. 심재모는 참담함으로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 P421

연대장 같은 경력의 소유자가 그런 과장된 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 비위를 상하게 만들었다. 연대장은 바로 일본 만군출신이었고, 그 경력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때의 경험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랑처럼 입에 올리는 위인이었다.  - P423

그뿐만 아니라 군수뇌부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만군시절부터의 관계를 강조해 자기과시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저런 것들이 장교의 7할을 차지하고 앉았으니…. 심재모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참모실 문을 열었다. - P423


"서장님, 30분 남았습니다."
형사부장이 고개를 디밀고 말했다. 권 서장은 시계를 보았다. 10시반이었다.
"병력은 어찌 됐소?"
"창고 앞에 집결시켰습니다."
"됐소, 실시하시오."
"알겠습니다."
"잠깐!" - P430

사라졌던 형사부장의 머리가 다시 나타났다.
유치장에 있는 전 원장도 끌어가시오"
"알겠구만요." - P431

"발사!"
총소리가 서로 뒤엉키며 어둠을 깨고 찢었고, 손들을 뒤로 묶인사람들은 순식간에 불빛 밖으로 사라졌다.
.
"다음 줄!"
열 명의 윗몸이 불빛에 드러났다.
"발사!"
열 명의 윗몸이 불빛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줄!"
열 명의 윗몸이 불빛에 드러났다.
"발사!"
열 명의 윗몸이 불빛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줄!" - P434

"쉽진 않은 일이겠지만, 좌익을 무작정 나쁘다고만 생각지 않도록 노력해 보시오. 송양 부친을 죽인 건 염상진이란 사람이 아니라 시대가 한 일이오, 달라진 시대가. 송양은 너무 젊고, 배운 사람이오. 부친을 잃은 심정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지나치게 사적 감정만으로 세상을 보지 않도록 노력해보시오. 내가송양을 이렇게 강을 건네준 건 같은 고향사람이기 때문만은아니오. 염상진이란 사람 대신 사과하는 뜻도 있고, 송 양이 세상을 바르게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어서요." - P436

"알았소, 더 긴말할 시간이 없소. 한 가지만 말하겠는데, 혹시 임꺽정이란 소설을 쓴 홍명희 선생을 아시오?" 자신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범우 선생은 말을 이었다. "그분은 그야말로 뼈대 있는 양반에다가 지주였는데, 벌써 일정시대에 자기 농토를 소작인들한테나눠주었고, 누구한테나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고 존댓말을 썼소.
부자나 지주들이 모두 그분 같지는 못하더라도 그 반에 반만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었더라면 세상이 달라졌다 해도 죽음을 당할 리가 없는 일 아니겠소. 먼길 조심해서 가시오." - P437

민·김범우·손승호·정하섭∙∙∙∙∙∙ 읍내에서 똑똑하다고 손꼽는 사람들이 왜 다 이 모양이야. 우익이라는 건 정말 틀려먹은 것일까.
우익적인 사고라는 건 정말이지 비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인 것일까. 아니야, 아니야, 난 싫어. 아버지를 죽인 좌익은 싫어, 빨갱이는싫어. - P438

평택근방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녀는 인민군을 보는 순간 ‘괴뢰군에게잡히고 말았다고 낙망했고,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절망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민간인들에게도 거의 무관심에 가깝도록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무슨 조사 같은 것도 하지 않았고, 젊은 여자라고 해서 희롱 같은 것을 하는 일도 없었고, 어쩌다가 눈길이 마주치면 젊은 병사들은 전혀 악의라고는 찾을 수 없는 순한 웃음을 오히려 부끄러운 듯 짓고는 했다.  - P442

그런 현상들은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의외였고, 놀라움이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엿이나 참외 같은 것을 꼬박꼬박 돈을 치르고 사먹었고, 우물가에서 물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깍듯이 차렸다. 그녀는 그들의 일거일동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피며 자신의 가슴속에 가득 차 있던 적에 대한 공포감과두려움이 차츰차츰 가셔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 P442

심재모는 광주에 닷새를 머물면서 현지경찰과 협조해서 학도병을 모았다. 말로만 자원이었을 뿐 그건 곧 징집이었고, 각 학교마다이미 편성되어 있었던 학도호국단을 바로 군대편제로 바꾸는 일이었다. 대학생과 고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 주대상이었다. 학생들은학교별로 소집을 했는데 벌써 적잖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이유는 두 가지로 파악되었다. 첫째는 좌익사상을 가진 학생들의 잠적이었고, 둘째는 우익 쪽 학생들의 고의적인 기피였다 - P444

심재모는 미군타령이 귀에 거슬려 말을 바꾸어버렸다. 군인 장교들이나 경찰 간부들이나, 오나가나 그저 미군타령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아무 생각도없는 사람들처럼 내보이는 지나친 의존성이 비위를 상하게 했다. - P448

난리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전원장을 빼돌린 것은 그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를죽이고서는 자신이 괴로워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고, 전쟁이 끝나면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P450

"예, 순덕 씨는 저를 찾아 집을 떠난 겁니다."
"머시라고라? 지가 대장님허고 워찌워찌혀보고 잡아서라? 워메문딩이, 쎄는 짤라도 춤언질게 뱉을 작정혔구만. 기도 안 차시. 그려서라?"
"수원 저희 집을 거쳐 단양까지 찾아왔는데…………? - P452

아이들은 반딧불을 쫓아 어둠 속을 뛰다가 허방을 딛기도 하고 풀섶의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기어코 반딧불을 잡아 호박꽃 속에 넣어 호박꽃등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비켜 지나고 여름밤은 촉촉히 내리는 이슬을 따라 은하수의 기울기만큼 깊어져 있었다.  - P454

그러고 보면 이번 전쟁은 겹겹의 싸움이었다. 겉거죽은 이 땅을 반동강낸 미국과 소련의 응등거림이었고, 거죽은 그 두 나라가 내세우는 주의에 따라 무장한 군대의 맞부딪침이었고, 그 속살은 착취한 지주와 착취당한 소작인들의 맞대거리였다.  - P458

그때 김포 쪽에서 비행기가 곤두박히듯이 날아들며 폭탄을 토해냈다. 폭탄은 뜀박질을치듯 강물에서부터 둑에까지 불길을 뿌리며 터져올랐다. 진저리치듯 물기둥이 솟고, 아우성치듯 흙덩이들이 튕겨져올랐다. 둑 위에 남은 사람들이 물로 뛰어들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내달리기도 하고, 뻣뻣하게 서 있기도 했다. 비행기들은 줄달아 곤두박혀오며 폭탄을 토해내고 있었다. 둑 위에서 사람이 빙글 돌기도 하고,
불쑥 솟기기도 하고, 팔을 내뻗기도 하며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 P464

파편을 머리에 맞은 아이는 온몸을 피로 적신 채 죽어 있었다.
"아가! 아가! 아가!"
젊은 여자는 피투성이의 아이를 품에 끌어안으며 핏덩이 같은울부짖음과 함께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 P465

"미국을 과대평가하자는 게 절대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겁니다. 이념의 실천이 현실이라는 말, 좋습니다. 그림 그것을 지지하려는 미군의 세력도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끼여희생당하고 있는 대중들도 현실입니다. 이념의 실천이 확고한 보장이 없을 때 대중들의 희생은 무엇으로 보상되고, 어떻게 설명되는 겁니까." - P466

"자네왜 자꾸 기회주의적 결과론만 내세우고 그러나."
서울시당 문화선전부에서 일하기로 된 손승호가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며 말했다.
"자네 무슨말을 그렇게 해 할 말이 따로 있지."
김범우도 정색을 했다. - P467

"예, 제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상상하기 어렵게 빠른미국의 전쟁개입은 미국이 당초에 남쪽을 점령한 목적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입니다. 그 결의는 우리 민족이 목표가 아니라 쏘련이 목표 아닙니까. 그런 결의 앞에서 이번 전쟁이 이길 확률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 P468

"자네가 하는 말은 패배주의에 빠진 비관적 전망에 지나지 않아.
그러다가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어쩔 텐가, 그때 자넨 또 뭐라고할 건가?"
"승호 자넨 근본적으로 내 말을 이해하려고 하질 않는군.  - P4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