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의 말이 남양댁의 마음에 훈훈하게 담겨왔다.
마삼수 내외는 한결 더 그녀의 행동을 꾸짖듯 했다.
"참말로 아짐씨가 영판 요상허요. 못헐 말로 그 나이에 노망이든 것도 아니었고, 요것이 멋 허는 짓이다요. 고런 일 쪼깐 허고 고무신 받아 신은 것 동기가 알먼 나럴 멀로 보겄소. 참 아새끼 드럽게 짜잔허고보초 없다고 사람 취급을 안 헐 것이요. 긍께 싸게 갖고 가서 도로 바꾸씨요. 아짐씨가 몰라서 그렇제 동기허고 나하고는 성만 달랐제 성제간이요, 성제간."
"아는구만요."
"아, 암스로도 요런 짓 혔소!" - P279

그즈음까지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의 수는 전국적으로 30만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좌익세력 제거에 어느 만큼 실효를거두고 있기도 했다. - P283

정을 진작 끝내놓고 있었다. 눈치 빠른지주들은 벌써 반 이상, 그렇지 못한 지주라 하더라도 평균 3할씩은 매각했거나 명의변경을한 것을 생각하면읍장이병주의 마음은 편하지가 못했다. 농지개혁은 하나마나 실패가 아닐까 하는 회의가 생겼던 것이다. - P286

한 신화적 인물이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도 했다. 그들은일제치하에서부터 사회주의 운동을 해오면서 그 지독한 일본 경찰에게 잡힌 적이 없었고, 오랜 세월 동안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아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점조직과 가명 사용으로 자체당원들도 바로 옆에 앉았더라도 알아볼 도리가 없었고, 조직화된지하활동으로 경찰의 수사망을 숱하게 기만시켜왔던 것이다. - P288

남로당의 최고급간부 김삼룡과 이주하가 검거되었다. 3월 27일이었다. 그 사실은 신문들을 요란하게 장식하는 사건이었고, 누구에게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우익은 우익대로 충격을 받았고, 좌익은 좌익대로 충격을 받았다. 다만 그 충격의 색깔이 다를 뿐이었다 - P287

손승호가 경찰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가 근무하던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 사상적으로 불온한 서적을 출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 P326

담당형사를 아무리 회유하려 했지만 손승호의 면회는 가망이 없었다. 담당형사의태도는 사무적인 책임감 때문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으로도 주의자들을 사람 취급할 수 없다는 뜻이 확고했다. 경찰 거의가 품고있는 그런 감정은 이북체제에서 친일경력의 경찰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맥을 함께하고 있었다.  - P326

"그야 뻔한 일 아니겠소. 그자들이야 다시 일정시대 같은 권력을확보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도대체 이놈의 세상을 어찌해야 좋을지, 환멸스러워 살 수가 없는 노릇이군요." - P328

경찰력으로 대표되는 안하무인격인 권력의 횡포는 갈수록 대중들의 원성의 대상이었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각종 관공서의부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 P329

그렇다고는 하나 민기홍의 말은 막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 틀린 말도 아니었다. 권력지배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고조되면서 광범위하게 일체감을 이루게 되고, 그러면서 권력이 부패하고 타락해서 자체 균형을 상실하게 되면, 그건 사회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계기가 되는 셈이었다. 역사의 많은 사례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 P329

"그 선거결과가 현 정권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놀랄 만한 결과였던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김 형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난번 선거가 이성적대중혁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선거결과는 대중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정치를 원하고 있는가를 표현한 것임과 동시에 현정권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인 것이오. 현 정권이 그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못하고, 각성하지 못할 때 대중들은 어떻게 하겠소. 그때는 행동적대중혁명을 일으키는 일밖에 남지 않았소.  - P330

그만큼 대중들의 정치의식이 높고, 정치욕구가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소. 그런 대중들은 정치인들의 타락이나 전력의 배신을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해결도 되지 않을 쓸데없는 지식인적 고민 집어치우고 대중의 한 사람으로 정신이나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다가 그런 시기가 닥치면 행동이나 제대로 하라는 민기홍의 생략된 말을 김범우는 찾아내고 있었다. - P331

이번에는 오른쪽 볼에 주먹이 날아왔다. 손승호는 코로 신음을흘리며 손바닥으로 볼을 감쌌다. 어제부터 형사는 오른손으로 손승호의 왼쪽 볼을, 왼쪽 주먹으로 오른쪽 볼을 번갈아가며 후려치고,
갈겨대고 했다. 그래서 주먹으로 맞은 손승호의 오른쪽 볼에는 멍이 더 많이 잡혀 있었다. 저 죽일 놈이 어쩌자고 얼굴만 이리 때리는 것인가. 이놈아, 차라리 몽둥이질을 해라. 손승호는 통증과 함께끓어오르는 모욕감으로 가슴이 푸들거리는 증오에 떨고 있었다.
" - P333

이새끼, 엄살 떨지 말고 똑바로 앉어. 빨갱이새끼들이 아무리 독하다 해도 우리 손에 안 잡혔을 때나 통하는 얘기지 일단 우리 손에 잡힌 이상 그 독기 안 꺾이는 놈들 하나도 없어느네놈들 독기빼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어. 골병 다 들고나서 불지 말고 피차에 좋게 어서 불어, 남로당 직책이 뭐야." - P333

아아, 너 같은 친일파놈에게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너 같은민족반역자들이 이 땅에 도대체 몇이냐. 내가 이렇게 견딜 수 없을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네놈들한테이런 꼴을 당한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나, 이게 무슨 나라냐.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것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너같은 놈 하나를 죽이고 나도 죽었더라면 얼마나 의미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냐. 너 같은 종자들이 150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150만이라면 이 땅은 깨끗해지지 않았겠느냐. 네놈을 죽일 무기만 있다면 네놈을 당장 죽이고 나도 죽고 말겠다. 정말이지 죽고 말겠다! - P334

「친일문학과 민족정신의 훼손이란 책이 어쨌단 말이냐. 그것이얼마나 중요하고 잘 쓴 내용의 책인데, 네놈들이 빨갱이 짓으로 몰아친단 말이냐 이거야말로 친일파들이 작당해서 꾸며대는 가당찮은 연극이다. 각계각층에 도사리고 있는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은 저희놈들을 서로서로 보호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작당을 하고있는 것이다. - P334

요런 시건방진 새끼, 친일파가 느네 할애비를 죽였냐, 애비를 죽였냐, 어디다 대고 시비냐 시비가 내가 친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내 한 몸 버려 민족과 나라에 다소나마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선 것이다. 이런 유명한 이광수 선생의 말씀을 니놈은 듣지도 못했어! 바로 그런 애국자들을친일파다, 민족반역자다, 하고 물어뜯는 놈들은 다 빨갱이새끼들이야. 너이새끼, 코피 그칠 동안에 자백할 생각이나 해둬."
형사가 손승호의 머리를 쥐어박고 돌아섰다. - P335

는 들녘에는 모의 초록빛만큼이나 싱싱한 생기가 살아올랐다. 추수를 앞둔 들녘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비얍은 바람결에 넘실거리는 것이 장관이라면, 넓디 넓은 흙덩이일 뿐인 땅에 사람들의 생기가 어우러져 푸른빛으로 채워져가는 모내기도 그에 못지않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 P336

그런데 금년의 모내기는 예년과 달랐다. 농지개혁이란 것이 비록 기대했던 것만큼 논마지기가 많지않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위치가 달라지긴 했지만, 이제 자기네 논밭에 자기네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상환금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끝도 한정도 없이 빼앗겨야 하는 소작료에 비하면 그건 전혀 근심거리일 수가 없었다.  - P337

토벌대장 임만수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 떠나갔다. 그는떠나기 전에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곤욕을 한바탕 치렀다. 남원장춘심이가 애를 했다며 그의 옷깃을 틀어잡은 것이다. - P339

그의 단단한 체구는 더 야무져 보이고, 그 미동도 하지 않는 똑바른 자세는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없도록 엄격성을 지닌 표본적인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속은 겉과는 정반대였다.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계엄사령관이란 직책이 주둔군지휘관으로 변했고, 그에 따라 손아귀에 쥐고 있던 막강한 권한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허망한 꼴을 당했는데, 이제 병력마저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으니 꼴은 더욱 초라하게 되고, 그는허전함과 함께 누구에겐지 모를 울화를 씹어대고 있었다. - P338

임만수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음마, 음마, 고것이 무신 쌍시런 소리다요. 잡기생만 드글드글서울서 살다봉께 나도 잡년으로 뵈는갑다, 그 전라도땅이요, 전라도땅, 시상이 지아무리 변혀도 안직꺼정은 시퍼런 춘향이절개 지킴서 기생질해묵는다 그 말이요."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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