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 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은 성환에서 청군을 대파했다.
평택 쪽에서 내려온 일본군은 경계를 풀고 있던 청군을 야습다. 날이 밝자, 성환의 들판에 청군의 시체가 깔렸다. 살아남은자들은 군복을 벗어 버리고 조선 백성들의 옷을 뺏어 입고 달아나다가 굶어죽고 더위 먹어 죽었다.  - P41

성환 전장에서 일본군 나팔수 기구치 고헤이는 숨이끊어질 때까지 나팔을 불어서 돌격 명령을 유지시켰다. 기구치의 사체는 나팔을 입술에 대고 있었다.  - P41

열차는 대구를 지나고 초랑을 지났다. 대구역에서 정차했을때 순종은 관리를 보내 이퇴계의 사당에 제사 지냈고 초랑을 지날 때는 신라 왕들의 무덤과 김유신의 무덤에 제사지낼 것을 하명했다. - P43

조선의 양민들은 점차 통감 통치 안으로 순입고 있으나 폭민들의 발호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이 같은시국 속에서 양민에게는 유화로, 폭민에게는 무단武斷으로대처하는 두 방향이 선명히 떠오르고 있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 P46

남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이토는 통감부로 출근해서 보고서를읽었다. 통감관방의 보고서는 종합과 분석이 부실하고 보고자의의견이 돌출해 있었다. 판단을 미리 하지 마라, 귀관들은 사실과의견을 분리해서 보고하라, 뒤섞지 마라……… 라고 이토는 늘 지시했으나 충성의 앞자리를 다투는 관료들은 스스로의 말에 현혹되어 통감의 지시에 미치지 못했다. - P46

사진에 기함의 크기와 포신의 힘이 드러나고, 포신을 배경으로 순종의 표정이 편안하게 나타나고, 뱃전 너머로 수평선이 지나가게 구도를 잡으라고, 이토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사진사에게 지시했다. 이토는 사진사에게 근접 촬영을 허용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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