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의 침대 발치에는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항에 건설되었던 파로스 등대의 모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토가 주물 장인에게 의뢰해서 제작한 청동제 스탠드였다. 모형 등대에 수면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 P16

동양과 서양,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이문명사적인 항구의 옛 등대를 이토는 거룩히 여겼다. 그것은 이세상 전체를 기호로 연결해서 재편성하는 힘의 핵심부였다. 신호로써 함대를 움직이고 신호로써 대양을 건너가는 기술은 바로 제국이 갖추어야 할 힘의 본질이라고 이토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 P16

 러시아를 도모할 때까지도 이토는 그것이 도장으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으나, 그후 조선 사대부들과 자주 상종할수록 이토의 뜻은 도장 쪽으로 기울었다.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점차 알게되었다. 도장의 힘은 거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 P17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이토는 예상하지 못했다.  - P17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 P18

일파가 흔들리니 
파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 - P18

수백 년 동안의 수탈과 억압으로 검불처럼 무기력해 보이던조선 백성들이 무너진 왕조의 부흥을 외치며 그토록 가열하게봉기하는 사태가 이토는 두려웠다. 농장기를 들고, 꽹과리를 치고,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펄럭였지만 조선의 폭민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어섰고 한 고을이 무너지면 이웃 마을이 또 일어섰다. 기생과 거지까지 대열에합세했다.  - P19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는신문 대한매일신보가 이 폭민들을 의병이라고 일컫고 기세를 부추겼다. 통감부가 신문사를 겁박했으나 배설은 굽히지 않았다. - P19

병력 증파를 요청해야겠다고 이토는 결심했다. 미개한 군중을 제압하려면 경찰보다는 군대를 써야 하고 일시에 맷돌처럼 갈아버리는 방법이 좋다고 하세가와는 늘 이토에게 말했다. - P21

안중근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상해에서, 뜻있고 힘있는 한인들을 규합해서 국권회복의 실마리를 만들려던 안중근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말했다.  - P24

안중근은 출입이 무상했다. 한번 나가면 멀리 다녔다. 아내에게돌아올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몇 달씩 밖으로 돌다가 절기가 바뀌고 나서 돌아오는 일도 흔했다. 안중근의 아명은 응칠이었는데 안태훈은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주느라고 무거울 중과 뿌리 근을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었다. 개명은 안중근의 기질을 바꾸지 못했다.  - P26

안중근은 밖에서 도모하는 일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김아려 金亞麗는 시댁 사내들의 말을 귀동냥해서 남편의 일을 짐작했다. 김아려는혼인한 지 십 년이 지났음에도 나그네 같은 남편을 어려워했다. - P27

안중근의 조부 안인수대에서 명망 높은 족벌의 세력의을 이루었다. 안태훈의 장례에는 인근 고을의 여러 관장들과 황해도 지역의 서양인 선교사와 천주교인들이 조문했다. 초상은걸게 벌어져서 먼 부락 촌민들과 떠돌이 거지들까지 모여들어서세끼를 먹었다. - P25

안태훈은 열여섯 살에 혼인해서 열여덟 살에 안중근을 보았다. 안중근이 소년을 벗어나자 안태훈은 열일곱 살 아래인 아들안중근을 사내로서 대해주었다. 안태훈은 집안에 닥쳐오는 위해를 아들과 의논했고 그 전면에 아들을 세웠다. 안태훈은 아들과함께 기울어가는 국운을 개탄하고 난세를 성토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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