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인역 성경은 사울의 맹세를 잘못으로 규정한다. 24절에대해 칠십인역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날 사울은 사람들에 대해저주 맹세를 함으로써 큰 죄를 지었다." 사울의 맹세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나? 금식을 명했다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금식하면서 싸울 때, 그만큼 적을 섬멸하겠다는 열망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297
먹는 것보다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영토로 돌아가 훗날 이스라엘을 다시 침공하는 것을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사울의 저주맹세가 잘못되었다면 그 이유는 맹세 자체보다 맹세의 동기와 관계가깊을 것이다. 사울은 자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백성들을이용했다. - P297
사울은 그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하나님의 저주를 사용해 백성들의 행위를 제어하려 하였다. 자신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저주로 얽어매려 하였다. 그의 맹세는 자신의 소욕을 위해 하나님과 백성을 이용한 것과 다름없다. - P297
사울이 말한 ‘죄인‘을 뽑는 과정은 우림과 둠밈을 이용한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칠십인역 성경에 따르면 사울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알아냈다고 하지만,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방법을 통해 다시 응답을 구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림과 둠밈 대신 제비뽑기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P304
사울은 백성들을 한쪽에 자신과 아들 요나단을다른 한쪽에 세우고 제비를 뽑았다. 그러자 사울과 요나단이 뽑혔다. 다시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 제비를 뽑자 요나단이 뽑혔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실직고하라고 추궁한다. 요나단은 손에 있던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정말 죽어야 하냐며 항변한다. - P304
개역개정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라는 번역이 나쁘지는 않지만 "보십시오, 정녕 내가 죽어야 합니까"라는 번역이 요나단의 감정을 더 잘 살려 준다. 이에 사울은 세 번째 맹세를 통해 요나단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아니라 잘못된 맹세를 합리화하는 말이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백성들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의 목숨마저 희생시킨다. 이런 비정한 모습은 불량자들이 사울의 왕권을 노골적으로무시하자 그들을 용서하고 한 공동체로 품은 초창기의 모습과 크게 대조된다(11:13).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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