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태자 수였다. 백제왕 구도 아니고 그의 아들과의 싸움에서 대패했다는 것은 수치였다. 따라서 대왕 사유는 그 보복전에 태자 구부를 내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태자는 직전까지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던 입장이었으므로, 그가대장군으로 전쟁에 임했을 때 고구려군의 사기가 그만큼 위축될 가능성이 높았다. - P182
지금 대왕 사유는 화농성 종기를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는그 종기를 백제와의전쟁을 통해 치료하려고 작정한 마당이었다. 종기는 앓고 있는 환자만이 그 아픔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옆에서 아무리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로선 당사자가 아니므로 뼛속까지 스미는 듯한 통증에 공감할 수 없을것이었다. 대왕으로선 종기의 아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참견하고 건드려대자 울화만 더욱 증폭되었다. - P185
"생명이란 하늘이 준 것. 그러니 하늘에 맡겨야지 따로 무슨잔꾀를 낸단 말이오? 큰 나무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지를기울이고, 바람이 멈추면 그때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이오. 어줍지 않게 뻗대는 나무는 바람과 맞서려다 가지가 뎅겅 부러지고말지.이돌중은 오래도록 광야의 바람을 견뎌온 몸. - P192
고구려는 이기든 지든 큰 손해를 볼 거라고 그러네 민심이흉흉하니 그럴 수밖에………." - P194
두충은 말끝에 긴 한숨을 빼어 물었다. 그림자처럼 두충의 뒤를 따르는 사기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그저 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이때 두충은 앞장서서 걸어갔기 때문에 사기의 그런 모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P194
"일단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평양성까지는 선봉군, 중군, 후군순으로 이동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그다음은 각 군이 길을나누어 수곡성까지 진군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 P198
"그럼 선봉군은 평양성군사와 합류하여 그들의 길안내를받아 수곡성으로 진군토록 하시오. 다음, 중군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이오?" - P199
"우리 중군은 평양성에서 일단 황주를 거쳐 재령천을 따라사리원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서홍천동북천변으로 해서 수곡성에 이르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이 길은 약간우회하는 길이나 천변을 따라 가는 노선이라 진군하기에 편리하므로, 중군의 뒤를 이어 보급부대를 이끄는 후군도 이 길을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P199
고구려군의 선봉에선 개마무시들이 기마대를 이끌고 먼저 뗏목으로 만든 부교를 통해 강을건너기 시작했다. 원정군의 선봉은 기마대를 비롯하여 말갈부대, 지방 4부의 정예군까지 1만이었다. - P201
그다음은 중군으로 대왕 사유가 이끄는 중앙군과 이번 전투에 처음으로 차출된 농민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군사는 역시 도합 1만이었다. 그리고 건초와 군량미를 실은 보급부대와 그것을 보호하기위해 배치한 병력 5천이 그 뒤를 따랐다. - P201
선봉대로 도강을 끝낸 두충은 말구종으로 따라온 사기가 보이지 않자, 처음에는 뗏목이 끊어질 때 강물에 빠져 죽은 줄로알았다. 그러나 늘 자신의 곁에 붙어 있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놈이로군!" - P202
그러면서도 두충은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P202
패하 북쪽 언덕 위에 높다랗게 솟아오른 수곡성은 남쪽 방향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였다. 그리고 동서북 3면으로는 높다랗게 석성을 쌓아 올려 제법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 P202
성양편에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데다 패하를 뒤로하여 강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북쪽으로 열려 있는너른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성루에서 바라보면 시야가 확 트인 3면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와 경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 P202
신라와는 서로 사신이 오갈 정도로 상호 우호적인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대왕과 태자가 모두 도성을 비울 수는 없는일이었다. - P203
태자가 먼저 수곡성을 지키기 위해 떠나겠다고 자원했지만, 대왕 구는 이번 기회에 고구려 대왕 사유와 전면전을 치러보고싶었다. 내심 고구려군의 힘을 몸으로 느껴보리라 마음먹었던것이다. - P203
"폐하, 고구려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헌데 등에 백기를 꽂고있습니다." "무엇이? 전쟁도 하기 전에 사자를 보낼리는 없고, 백기라니?" 의아하게 생각한 대왕 구는 장군 막고해에게 사실 확인을 명했다. - P204
급히 성루로 달려간 막고해가 바라보니 성문 앞에 당도한 것은 태자 수가 파견한 밀정이었다. 그는 바로 고구려에서 두충의말구종 노릇을 하던 사기였는데, 밤낮으로 말을 달려온 듯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로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 P204
"저자는 우리 백제의 밀정이다. 어서 이곳으로 데려오너라" 막고해의 명을 받은 졸개 하나가 급히 성문을 열고 나가사기를 부축하여 성루로 데려왔다. "장군! 사기,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도, 돌아왔나이다." - P204
원래 사기는 백제왕궁에서 국용마를 기르던 말먹이꾼이웃다. 그는 말을 잘 기르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말발굽 가는 데는명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그는 어느 날 태자 수가 타는 말의 발굽을 갈다가그만 큰 상처를 입혔다. - P205
이때 사기는 고구려군에서 몰래 탈출하여 태자 수가 이끄는백제군에게 투항했다. 그는 태자 수와 장군 막고해 앞에 나가자신이 전날 백마의 말발굽에 상처를 입힌 말먹이꾼임을 자백하고나서 사죄를 청했다. - P206
진정 네가 내 애마에게 상처를 입힌 그 말먹이꾼이더냐? 그런데 어찌 고구려군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 태가 수는 무서운 눈으로 사기를 쳐다보았다. "예. 그러하옵니다. 백마에게 상처를 입힌 후 고구려로 도망쳐 말먹이꾼 노릇을 하다가 이번에 고구려 원정군에 차출되어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소인은 백제인으로서 더 이상 고구려인 행세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P206
"지금 적은 2만 대군이옵니다. 허나 머릿수만 채웠지급히 모병한 오합지졸들이 대부분이옵니다. 고구려 군사들 중에서 날래고 용감한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들고 있는 무리뿐이오니, 그들을 먼저 깨부수면 나머지 군사들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옵니다." 태자 수는 사기의 말을 믿었다. - P207
막고해는 대장군을 맡고 있는 태자 수의 군사 지략이뛰어났다. "적은 원정길에 지친 몸입니다. 내일 새벽을 기해 기습공격을하여 적의 예봉을 꺾어야 할 것이옵니다. - P207
고구려군 막사를 일격에 짓밟았다. 고구려 정예군이 초전에 박살나자 나머지 군사들도 겁을 집어먹고 쫓겨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에 사기충천한 백제군은 북진을 계속하여 패하를 건너수곡성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 P208
수곡성에 입성한 후 태자 수가 계속 후퇴하는 고구려군을추격하려고 하자, 장군 막고해가 충언했다. "태자전하! 여기서 진격을 멈추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일찍이 도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얻은 바가 많은데, 어찌 계속하여 적을 추격하려고 하십니까?" - P208
밀정들의보고에 의하면 이번 전쟁에 출정한 고구려군은 3만이라고 했다. 지금 수곡성에 있는 백제군은 1만 5천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농성을 하기 위해 성벽을 고치고, 군량을 비축하고, 우물을 파서식수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식수 문제는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땅을 깊이 파도 샘물이 시원스럽게 솟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농성이 쉽지 않을 거야.‘ - P209
그러나 비교적 진군하기 좋은 평탄한 길로 우회하는 대왕 사유가 이끄는 중군의 경우, 국내성의 군사들 3천을 빼면 나머지는급하게 모병한 농민군들이 대부분입니다. 군복을 입혔지만 전쟁에 처음 참가하는 핫바지들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압록강을 건널 때도 그 핫바지들이 겁을 먹고 강물에 빠진 척 뛰어들어, 도망쳐 버린 놈들이 허다했습니다." - P210
막고해는 사기에게 단단히 이르고 나서, 대왕구를 만나러가기 전에 몰래 고구려군이 진군하는 두 길로 척후병들을 내보냈다. 이들 척후병들을 두 파로 나누어 각기 적군이 접근하는길목들을 지키게 하여, 그때그때 적의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토록 했다. - P211
수곡성을 고구려 선봉군에게 비워주자고 말했다. 그러자 대왕 구는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 양 재차 물었던 것이다. "허허실실의 전법을 쓰자는 것이옵니다. 먼저 비워주고 나서다시 찾으면 그뿐이옵니다." - P211
"손자병법 세편에 보면, ‘세찬 물은 돌도 뜨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기세라고 하는데, 그런 군대에 맞서는 것은 당랑거철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옵니다. 이는 피해야 합니다. - P212
적은 지금 두 갈래로 나누어 진군하고 있는데, 폐하는 군사 1만으로 고구려왕 사유가 이끄는 중군을 치십시오. 이곳 수곡성서북변의 패하 인근에는 군사를 숨길 만한 곳이 많습니다. 그곳에 매복해 있다가 중군이 지나가는 허리를 끊으면 농민군으로 이루어진 고구려의 오합지졸들을 쉽게 격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 P212
막고해는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선 사마귀, 즉 당랑거철의고사를 거론하며 대왕 구를 설득시키려고 애썼다. - P213
고구려 군복을 입힌 우리 군사를 일부 남겨놓겠습니다. 그리고폐하께서 이끄는 백제군이 적의 중군을 기습할 때를 기다렸다가, 성안에 남겨둔 우리 군사들로 하여금 일시에 불을 질러 적의 선봉이 가져온 군량과 건초를 불태우도록 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적의 기마대와 보병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놓으면, 수적으로 불리한 우리 군은 그 배가 넘는 적군을 충분히 무찌를 수있습니다. - P213
더구나 물줄기가 에도는 곳에는 절벽이있고, 절벽과 이어지는 산과 산 사이로 고갯길이 나 있었다. 그양쪽의 숲속은 전략상 매복 조건에 딱 알맞은 지형이었다. - P214
수곡성에서 나올 때 군사들에게이틀분의 비상식량을 각자 휴대케 했으므로, 일단 매복을 하고 있으면 더 이상 번거롭게 군사를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장수들이 타고 온 말들도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깊은 숲속의 안전한 곳에 숨겨두었다. - P215
다음 날 새벽은 안개가 짙었다. 대왕 구는 휘하 장수들을 불러 고갯길이 난 양쪽 산등성이에 통나무와 바윗돌을 대량으로준비해 두라고 명했다. 통나무 자른 것이 눈에 띄면 곤란하므로 다른 지역에서 베어오도록 했으며, 산등성이와 강가에서 주워온 바윗돌도 나뭇가지와 잎으로 덮어 육안으로 보아서는 적들이 눈치채지못하도록 - P215
그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일반 병사들과똑같이 미숫가루를 이틀분 준비했고, 매복지점에서 노숙하는걸 당연시 여겼다. - P216
당시 중원은 서북 변방의 흉노들을 비롯한 외적들이 들고일어나면서 나라가 갈래갈래 찢겨져 5호16국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러면서 요서지역을 경영할 만한 여력을 가진 세력이 딱히 없었다. 그들 중 가장 큰 세력은 강남의 동진과 화북의 전진이었는데, 이 두 나라는 장강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벌이고 있었다. - P217
따라서 공백 상태에 있는 요서지역 경기위해 왕자 구는 백제 초기부터 산동지역에 터를 잡고 살던 유민들을 발판으로 삼아 점차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 P217
왕자 구와 진정이 요서지역을 경략하고 나서 한창 요동 진출을 도모하고 있을 때, 본국인 백제에서 부왕이 흥거去했다. 이때 장자인 태자가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당시 백제의 대신들은 비류왕의 선왕인분서왕의 장자를 다음 왕으로 추대했다. - P217
예전에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분서왕이 살해되었을 때 그의 장자가 너무 어려서 비류왕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 왕계는 분서왕 계열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신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 P217
왕자 구는 태어날 때부터 체구가 우람했으며, 자라나면서 경전을 탐독하여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식견이 높았다. 그래서 충분히 왕자의 기상을 타고난 인물이란 소리를 들었으나, 위에 형이 있었으므로 형제간에 왕위를 놓고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할 수 없다 하여 스스로 바다를 건너 요서지역으로 갔던 것이다. - P218
당시 백제 왕실에선 대신들이 실권을 잡고 있었으므로, 새로왕위에 오른 대왕은 그들의 입김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비류왕 다음으로 왕위를 이어받은 계는 강직하고용감하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는 하나, 그때 이미 나이가 든데다 지병까지 앓고 - P219
백제의 대신들은 그런 왕자 구를 반역으로몰면서 토벌군을 보냈으나, 요서지역 경략으로 전쟁 경험이 풍부한 왕자 구의 군사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 P219
백제 대신들이 보낸 토벌군을 간단하게 물리치고 한성으로입성한 왕자 구는 대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권력을 휘두른간신배들을 일거에 처단했다. 그러고 나서 국가기강을 바로잡아 왕권을 강화하려고 할 때, 지병을 앓던 계왕이 돌연 훙거하고 말았다. 왕위를 계승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 P219
새롭게 백제대왕이 된 구는 요서지역 경략과 백제의 간신들을 몰아내는 데 공헌한 손위 처남 진정에게 조정좌평의 벼슬을 하사했다. 조정좌평은 장형옥사의 직임을 맡아 형옥 관계의일을 관장하는 직책이었다. - P220
조정좌평 진정은 대왕 구의 측근이었으므로 백제 6좌평 중에서도 그 세도가 하늘을 찔렀다. 조정좌평을 뺀 나머지 5좌평은 모두 진정의 세도에 밀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원래 성질이 거칠고 어질지 못한 진정은 그와 뜻을같이하지 않는 대신들에게는 죄를 덮어씌워 엄한 형벌로 다스렸다. 이렇게 되자 대신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다. - P220
대왕 구는 왕후를 생각해서 웬만하면 진정의 흠을 덮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까지 진정의 포악함이 알려지자, 대왕은 결국 그를 요서지역으로 돌려보냈다. 진정은 요서지역에가서도 그 기질을 꺾지 못해 대왕 구의 형과 반목하는 경우가잦았다. - P220
그러나 진정은 무수한 전쟁을 겪으면서 뛰어난 전략전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왕 구는 형에게 요서지역을 맡기고, 진정에게는 북쪽의 요동지역 경략에 나서라고 명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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