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무참하게 자르는 처형은 반란 당시에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대대장이 닛뽄도를 휘둘러 시범을 보인 다음부터 예사가 되었다. 목만을 친 것이 아니라 다시 그 목들을 모아가마니에 넣고 다니며 동네마다 전시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 P69

 광양 근방에서야 한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키고, 집들을 불질러버리는 짓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는 그런 일이 예사로 저질러지는 모양이었고, 빨치산을잡아다가 나무에 묶어놓고 마을사람들에게 대창으로 찔러죽이게한다는 것이었다. 그 명령에 반항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대창으로찌르지 못한 사람까지 처단해 버린다고 했다. 그러한 방법들이 효과를 거두는지 어쩐지를 알 수 없는 채로 적들도 똑같은 방법으로보복을 가해오고 있었다.  - P70

 옷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었다. 따지고보면 똑같은 천에 색깔이나 모양이 다를 뿐인데 어느 것을 몸에 걸치느냐에 따라 마음이 생판 달라지고 말았다. 제복을 입으면 무언가에 억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과 함께 알수 없는 힘이 전신을 버팅기고 있는 기분이었고, 사복을 입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좋을 것 같은 한없는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반면어딘가 허전하고 힘이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 P71

하대치도 눈길이 맞부딪치는 순간에 남인태를 알아보았다. 그순간 하대치의 머리를 친 생각은, 이제 죽었구나!였다. 총부리를 들이댈 줄 알았는데, 그런데, 남인태는 쫓기듯 휘적거리며 지나치고말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만해도 하대치는 남인태가 부하들을 부르러 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가 두 동료에게 뜨거운 핏덩이를토해놓듯 한 한마디는 "쨀 준비!"였다. 여차하면 그대로 기차에서 - P73

사람의 관계가, 그것도 남녀가 아닌 남자와 남자와의관계가 ‘믿음직스러움‘을 넘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입산한 다음부터였다. 그 아름다움의 발견과 계속되는 확인은 피를흘려야만 성취되는 혁명이 왜 가능한 현실인지를 증명해 주는 소리 없는 웅변이었다.  - P76

안창민은 하대치의 자리에다 김범우를 놓아보았다. 염상진과 김범우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헤어짐은 사뭇 인상적이었다. "형님,
수염이 잘 어울립니다." "그런가, 짬이 없어서.
편히 가게."  - P76

비록 환갑을 목적에 남기고 떠났을망정. 환갑 진갑 차려먹고 세상 떠나는 것을 천복중의 천복을 누리는 것으로 여겨옴은 농사의 중노동과 소작의 가난에 시달리면서는 도저히 그 나이까지 삶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94

마흔이 넘으면서 손자를 보고, 마흔다섯이 되면 중늙은이로 불리며 손자 오줌으로 옷섶을 적시고, 쉰고개에서 늙은이가 되고 마는 궁핍한 인생살이에서 환갑 진갑상을 받아본다는 것은 기름지게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뿐 소작살이를 면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둠 속에 멀리 있는 불빛처럼까마득한 이야기였다. - P94

우리넌. 당허는 남정네들헌테비허자먼우리야 용궁에 앉었는 심이고, 새끼덜 땀세라도 맘 독허니 묵어야제 워쩌겄능가."
- P97

목골댁의 말은 꼭 남양댁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기미가 두껍게 앉은 목골댁의 얼굴은 남양댁과는 반대로 살이 올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살이 아니라 검누른빛과 함께 돋아오른 부황난 부기였다.  - P97

허출세는 이렇게 내지르고는 손바닥을 탁탁 털며 토방을 내려섰다. 그는 사립으로 걸어가면서 부엌 쪽을 옆눈질하고 있었다.
"호로자석 겉으니라고…………."
한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상갓집에 빈손으로 오다니, 하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정작 자신도 빈손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이 그렇게 면목 없고 죄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마음이 죄가 아니라 가난이 죄라서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 P102

"여러 말 헐 것 없이 문제는 말이여, 쥔어런 잘못 모시는 종놈은삭신 녹아내리게 매질당하고 내쫓기는 것이 법칙이다 그것이요.
지끔 보자면 대체이나라쥔이 누구요? 바로 여 앉은 우리 겉은 사람덜 아니오. 워째그냐. 나라 쥔이 한민당잉께 한민당얼 떠받치고 있는 우리덜이쥔이고, 더 세세하게 따지자면 여그 읍내쥔이 바로 우리덜이다 그것이요. 허먼, 심가놈이 헐 일언 무엇이냐 쥔인 우리럴 편안하게, 안전하게 받들어 뫼시는 것이요. 근디,
그 자석이 쥔이 위험허게 불편하게 잘못 되셨응께 잡아다가 매타 - P107

제가 왜 이런 말을 길게 늘어놓느냐 하면, 이 지방에 사는 절대다수의 가난한 농민들은 자기들이 왜 가난한지, 가난을 면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고, 더구나 해방이 되는 것을 계기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길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을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정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소작쟁의를 벌여 그 길을 뚫으려 했고, 해방이 되자 이제야 때가 왔다생각한 그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게 바로 1946년 10월에 전국 규모로 일어난 농민항쟁 아닙니까. 그 항쟁은 결국 폭력 앞에 피만 뿌리고 좌절되었습니다만, - P115

3월이 오는 봄이고, 5월이 가는 봄이라면, 4월은 머무는 봄이었다. 머무는 봄의 자태는 하늘과 땅 사이에 현란함과 황홀함과 혼미함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아지랑이였다. 5월의 풋보리를 기다리는 4월은 죽 한끼를 제대로 넘길 수 없도록 춘궁이 극에 달하는시기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림에 비비틀려 허깨비걸음을걸으며 어지럼증에 휘둘리고, 부황기는 눈에까지 퍼져 흰자위가누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 P119

솔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할 즈음이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햇발 두터운 무덤가나 언덕배기로 흐느적이는 걸음들을 옮겨놓았다. 모여앉은 아이들의 얼굴은 마를 대로 말라붙은채 마른버짐이 피거나, 누르께하게 들뜨거나, 검게 타들고 있었다.
그 굶주린 얼굴들의 입 언저리에는 분가루를 바른 듯 노오란 솔꽃가루들이 묻어 있었다.  - P120

먹는 것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러나 아이들이손대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6월 들어 영글기 시작하는 목화다래였다. 보리서리 밀서리 같은 것도 어른이나 주인의 눈들을 피해 하는 것이었지만, 들키게 되더라도 어른들은 새 쫓듯이 먼발치에서 소리만 질렀는데,  - P121

다래를 따먹다가 들키면 어른들은 정말 화가 나서 머리통에 주먹질을 해대게 마련이었다. 주인이든 아니든어른들이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왜 그러는지를 아이들은 알았다. 보리나 밀은 사람이 먹고 사는 음식이었고, 다래는 솜으로 두고두고 써야 하는 물건이지 먹어 없애는 음식이 아니었다. - P121

어른들은 맹물을 마시고는 죽을 먹은 듯, 죽을 먹고는 밥을 먹은듯 마음을 다잡아가며 몸을 놀려야 하는 것이 4월이었다. 소작을부치고 있는 논밭농사 채비는 더 말할 것 없었고, 집안농사에도 세심한 신경을 써야 했다. 논밭농사 잘못 지으면 1년을 굶어야 하고,
- P122

텃밭농사 잘못 지으면 반년을 굶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아니었다. 논밭농사는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되면 못되는 대로 소자료 바치고 나면 가슴 텅 비는 허망함만 남았다. 그러나 텃밭농사는 그것이 비록 곡식은 아닐지라도 그런 허망한 상실감 없이 내 손으로 지어 내 입에 넣는 옹골지고 알찬 맛이 있었다.  - P122

더워야만 잘되는 까닭에 무명배도 북쪽에 가면 귀히 여겨지기는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북쪽지방에서는 피륙이 당당하게 돈 노릇을대신했던 것이고, 남쪽지방에서는 쌀이 돈을 뒤로 밀치고 앞으로나서 모든 교환가치의 기준이 되었다. 먼 길 떠나는 나그네의 노자가 피륙이었던 것이 북쪽 관행이었고, 크고 작은 물건들을 사고파는 데 ‘쌀 몇 되 값이냐‘로 따지는 것이 남쪽 관행이었다. - P125

그러므로 며느릿감이 될처녀에게 ‘길쌈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은 부업능력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건강진단인 셈이었다. - P126

삼실을 내는 삼껍질이나, 타래로 사린 삼실을 거래하는 새벽장으로 복내장과 조성장이 유명한것은 삼 산지가 가까운 탓이었고, 정작 삼베 거래로 벌교장이 널리알려진 것은 벌교가 교통의 요지인 삼거리였기 때문이다. - P126

가까운 보성이나 고흥의 보수성에 비하면 벌교는 너무나 진취적이고, 벌교의 진취성에 비하면 보성이나 고흥이 또 너무나 보수적이고, 그렇지요.  - P139

벌교를 순천이나 여수와 나란히 비교하는 것도그 도시화 때문일 겁니다. 일정 때부터 여수나 순천의 잘사는 여자들이 입는 신식 옷을 이곳의 잘사는 여자들도 같은 시기에 입었습니다. 여수에서 뱃길로 반나절밖에 안 되는 때문이죠. 그래서 다른 고장 사람들은 벌교사람들을 영악스럽다거나 약빠르다고 나쁘게 말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영리하고 똑똑하다는뜻이기도 할 겁니다. 그게 다 도시화의 영향이겠죠.  - P139

"긍께 밑져봐야 본전, 죽게 된 마당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밀어붙이자 그것이요." - P156

"참말로, 고때 시상이 엎어져뿌렀어야 허는디. 양코배기들도 순전히 개자석들이여. 많은 사람 편들어야제워째 적은 사람 편들고지랄이여, 지랄이"
"시장시런 소리 고만들 혀 다아 죽은 자석 붕알 맨지긴께로 - P154

그런 서운상을 삽으로 찍어버린 강농기는역시 똑똑한 사내로 입들을 모았다.
"과시 동기가 물건은 물건이여."
"항, 고것이 강가 피아니드라고." - P152

"장닭이먼 다여? 장닭도장닭같애야 장닭이제 품안에 든 재산다 헤쳐뿐 빙신이 무슨 장닭이라고 위세여, 위세가 물건 하나 달랑찼다고 장닭 위세 헐라고? 아이고메 가당찮고 시장시럽다. 고렇게는 안 뒤여, 나넌 사람 암탉잉께 그렇게는 안 뒤여." - P150

그의 아내는 오히려 기를 세우며 대들었다. 피보길로서는 그런아내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재판이 끝나면 쌀 열다섯가마니를 받게 되어 있었고, 그것이면 머슴살이 신세는 깨끗하게면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설레던 꿈을 목숨하고 맞바꿔야 했는데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기로 했으니 마누라에게 그 사연을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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