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면이야 가기넌 갈밖에 없는 일인디, 고 오살헐 강가놈 땀세사람 볶여서 못살겄네. 그놈의 새끼가 워디로 내뺐는지, 눈앞에 있으먼 가쟁이럴 짝짝 찢어났으면 속이 씨언허겄다." 피서방은 얼굴에 핏기를 올리며 혼잣말을 질겅거렸다. - P9
하대치는 말에다가 가시를 박고 있었다. "걱정 마씨요. 나도 요분 참에 잡은 밑천으로 그리 살 날얼 기업코 맹글고 말 팅께." 피 서방의 말이 하대치의 뇌리에 부딪쳐오며 불똥을 튀겼다. 그래서 이놈이…………. 하대치의 의식에 명확히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하대치는 기분 변화를 감추고 천연스럽게 물었다. - P12
심재모는 다시 편지로 눈길을 보냈다. 심재모 사령관님 각하 전상서‘ 그는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각하‘라는 존칭이 웃음을 자아냈다. ‘사모하는 심재모 씨로 쓰고 싶은 마음을 참아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P21
‘수업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망서리고 또 망서리다가… 손수건을 만들면서, 만들어놓고도 보낼까 말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여자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먼 나대는 것이 숭잽히는 일이라는 거슬・・・………… - P21
‘사령관님을 멀리서 등대불로 삼고 있는 못난 여자가 심재모는다시 빙긋이 웃었다. 소설 같은데서 본을 따 멋을 부리려 한 것이웃음을 짓게 했다. - P22
같은 문제를 놓고 아버지나 어머니, 아내는 각기 그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아버지의 뜻은 "가서 공부에만 충실해라" 하는 말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었다. 중단한 공부를 시킬 겸 해서 불안정한 정치상황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식을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였다. - P23
아버지의 그런 이중적인 의도에 비해 반대입장에선 어머니나 아내의 뜻은 순진하도록 단순했다. 어머니는 큰아들의 생사도 모르는 터에 작은아들이나마 옆에 두고 싶어하는 모성이었고, 아내는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꺼리는 여자의 마음이었다. - P23
현시점에서 분단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은 사상대립을 완화시키는 일이고, 사상대립을 완화시키는 것은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일이고,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방법을 택하는 일이고,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법을 채택하는 것은 지주계층의와해와 함께 사회경제의 새 구조를 탄생시키는 일이고, 사회경제의 새 구조가 탄생되는 것은 민권회복과 인권회복을 동시에 이룩하는 일이고, 민권회복과 인권회복을 이룩하는 것은 절대다수의의사로 좌우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일이고, 진정한민주주의가 탄생되는 것은 민족통일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서민영선생은 말했다. - P25
현 정권의 주도세력인 친일 지주계층과 그 하수인 격인 민족반역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경찰과 군대의 기존 조직에다가, 50만을 넘는 월남자 태반이 그 조직에 분산 가세했고, 그와는 반대로 농민들의 원한에 찬 생존욕구가 팽배해 있는 상태에 200만을 넘는 귀환동포가 거기에 흡수 가세한 점을 지적했다. - P25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란, 내가보기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른 농지개혁단행밖에는 없네. 보게, 지금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농토문제만 해결된다면 그 어떤 주의든 지지하고따르게 되어 있는 상황이네. 이건 바로 갑오란 때와 똑같은 상황이란 말일세. - P26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동학이라는 종교사상이 갑오란을 일으켰느냐, 농민들이 그 종교사상을 행동의 계기로 삼았느냐가 문제인 것이네. - P26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지난 2월 북경으로 옮기지 않았나. 그건 중국대륙의 공산화 성공을 뜻하는 것인데, 그게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의 능력이냐 아니면 봉건사회의 변혁을 원하는절대다수 민중들의 수용이냐, 하는 점인데, 그건 먼저 후자의 작용인 것이네." - P27
때도 없이 입에 올리던 자랑거리였다. "우리는 미개한 조선 전역에기찻길을 놓아주었다. 그 편리한 시설로 걸어다니는 미개생활을 면하게 하고, 타고 다니는 문화생활을 하게 해준 그 한 가지 사실만 - P28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서구라파 제국이 이룩한 산업혁명을 선망과 동시에 열등감으로 바라본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 P29
만주대륙에까지 일본인이 가설한 철도는 끝없이 뻗어나갔다. 결국서구라파 제국이 산업혁명의 결과로서 발전시켜 온 기차와 철도를일본인들은 1차적으로 효과적인 식민지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했고, 2차적으로 대륙침략의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였고, 2차대전이 일어나게 되자 그 순서는 완전히 뒤바뀌어, 기차는 중국대륙을 본격적으로 침략하는 전투무기가 되었다. - P29
일본은 본래 섬나라이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수많은 항구를 개발해 해상교통을 극대화시켰지만, 만약 철도시설이없었거나 빈약했더라면 조선의 수탈을 그렇게 잔인할 만큼 철저하고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었을 것인가는 결코 상상만의 문제가아니다. - P29
훈련 사이의 휴식시간에 농담들을 하다가 유태인 교관이박두병의 코를 가리키며 ‘돼지코‘라고 놀려대며, 별명을 삼자고 했다. 박두병은 코를 소중하게 만지작이며 능청맞게 응수했다. "그걸별명으로 부른다면 나는 더없는 영광으로 알겠다. 너희 서양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코 큰 남자를 제일로 친다. - P32
왜냐하면 코가 크면 남자의 상징인 그것이 크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한 속설이나 미신이 아니고 바로 내 물건이 그것을 증명한다. 내물건은 보통사람의 두 배는 큰데, 네 눈으로 확인해 볼래?" 박두병은 벌떡 일어나 혁대를 풀었고, 유태인 교관은 갓 댐 어쩌고 소리치며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배짱이나 농담이 언제나 그런 식인 박두병은 이미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몸이었다. 완고한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장가를 간 것이다. - P32
유무식의 차이란 글줄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가 아닐 것이네. 그건 인생살이의 진실이나 고통을 얼마나 아느냐, 모르느냐로 결정된다고 생각하네. 농민들만큼 인생살이의 쓰라림과 아픔과 슬픔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 또 누가 있나. - P33
배웠다는 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거지 동냥주는 식으로 한다는 짓이 ‘농촌계몽‘이야. 그거야말로 식자층이 일방적으로 농민들을 무시하고 멸시한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행위지. 도대체 삶의 진정한 아픔이나 괴로움을 모르는 자들이 그것을뼈저리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무엇을 계몽한다는 것인가. 글자 몇 자 가르치고, 허황한 소리나 지껄이다 마는 것이 계몽인 줄 아는 모양인데, - P33
고쳐 앉더니, "심재모 그놈이 지 혼자 잘난 칙험시로 꺼떡기레봤자폴세부텀 지주덜헌테 미움을 살 대로 다 사고 있소. 임 대장도 다알디끼, 지주덜 편에 거마리 붙디끼찰싹 붙어야지 신간 편코, 지명도 질 것인디, 요것이 멀 믿고 사사건건 지주덜이 싫어하는 쪽으로만 일을 혀왔다 이것이요. 긍께로 지주덜이 그놈얼 바까치고 싶어허는 속맘이야 우리허고 피차 일반일 것 아니겠소. 긍께 요분 일얼 지주덜이 해치우게 허먼 워쩌겠소."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 P38
아버지 원수를 두고두고 갚기 위해 사관학교를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그대로 양효석은 금년 7월부터 4년제 정규과정으로 바뀌는 육군사관학교를택했고, 법관이나 정치가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던 최서학은 법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졸업반의 공부는 이미 흐지부지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서울을 익힐 겸 해서 미리 떠날 채비를 한 것이다. - P48
을 ‘뒤‘라고 하는 말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의식 속에 판박혀 있는 양효석은, 지질하게 돈푼이나 모은 보부상 출신의 쌍놈 집구석 자식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돌대가리에 주먹이나 휘두를 줄 아는 경멸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다. - P56
양효석은 눈치 빠르게 대꾸하며 최서학에게 잔을 권했다. 최서학의 시험지를 보고 베낀 국민학교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한 양효석의 열등감은 나이가 들면서 지워진 것이 아니라 나이만큼 커져갔던 것이다. - P56
돈으로나, 뼈대로나, 권력으로나 최서학네를 이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주먹 하나가 있을 뿐이었는데, 최서학에게 주먹맛을 보였다가는 그 주먹만 박살나는 것이 아니라 온집안이 박살난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최서학 앞에서는무용지물인 주먹을 부르쥐며 양효석은 그저 최서학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쪽으로 오래도록 스스로를 길들여왔던 것이다. - P56
헌지집이 깨끔헌 총각헌테 때 묻힐라, 훠어이 훠어이." 경월이는 무당 주문 외듯, 명창 사설 외듯 하고는, 현오봉의 몸에서 먼지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주춤주춤 물러나 앉고 있었다. - P58
송성일은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며, 요런 더러운 놈들아, 네놈들이 끌어안고있는 여자가 바로 네놈들 아버지가 끌어안았던 것들일 수도 있어. 이 미친놈들아, 욕을 해대고 있었다. - P61
광양을 생각하면 당장 경찰복을 벗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백운산은 반란군 주력 일부와 전남도당까지 품고있는 탓인지 광양이나 구례 일대는 난장판이었다. 아니, 지옥이 죽은 사람들이 살기가 제일 고약한 곳이라면, 산사람들이 살기가 제일 고약스러울 것이 분명한 그곳은 생지옥이라 해야 옳았다. 더욱이 경찰에게 그곳은 생지옥이 틀림없었다. - P63
산중고립작전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속의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 있는 그들을 적극전법으로 소탕하자면 그들보다 갑절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 했다. 산중고립작전은 이중효과를노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인민‘과의 접촉을 단절시켜 - P66
그래서 군인 모집은 모집이아니라 강제적으로 시행된 것이 벌써 오래전부터였다. 지역별 할당에 맞춰 청년단이 앞장서고 경찰이 엄포를 놓아가며 만만한 젊은이들에게 그물을 씌웠다. 만만하다는 것은 으레 가난하고 관에 아무 연줄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둑으로 몰아 감옥살이를 면하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군대에 밀어넣었고, 사촌이나 육촌이 입산한 것을 트집 잡아 군대로 내몰기도 했고, 별의별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 P64
그렇게 억지춘향으로 군복을 입은 자들이 사기가 있을 리 만무했고, 원래 사상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오기나 반발로 그러는것인지는 모르나 작전 중에 입산해 버리는 자도 적지 않았다. - P64
그런 현지의 노력과는 별개로 공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강력한 지시가 거의 매일이다 싶게 하달되는가 하면, 그에 못지않게 전과보고의 독촉이 성화 같았다. ‘반란군의 완전소탕‘ ‘지역폭도 완전제거‘ ‘민간세포조직 완전 그런 지시 앞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용맹스러운 활동을 전개한 것은 군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고 서북청년단이었다. - P67
명칭 그대로 이북년들로 구성된 그들은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제주의 4·3사건 진압대의 일부로 투입되어 그 용맹을 떨친 바 있었ㄷ그들이 가는 곳에는 그야말로 공산당의 씨가 마른다는 소문이찍부터 바다를 건너와 물에까지 퍼졌던 것이다. - P67
사람에 대해서도 가차없을정도로 냉정하게 행동했다. 그들은이미 여수와 순천에서 그들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멸공이라면 그 누구보다 앞장서는 그들의 용맹스러운 열성은 반란군이나 지방 빨갱이의 수사 · 색출 · 체포·처단에까지 손을 안 뻗치는 곳이 없었다. - P67
같은 용어에 일맥상통하고 있는 뜻은 ‘무조건 죽여서 없애라‘는것이었고, 그들이 다소 과격한 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다 덮이게 되어 있었다. 이 기회에 남한의 공산당은 뿌리째 뽑고 말겠다는 대통깊이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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