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변계량(卞季良,1369~1430)은 말 배우는 아이조차그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최영의 영웅적인 풍모는 그가 죽은 이후에도 현대까지 전국 곳곳에 사당이 들어서고 야사나 민간의 구전설화에 등장하여 신앙의대상이 될 만큼 강렬했다. - P119
그러나 민간의 기억과 다르게 역사기록에서는 최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공식 역사기록인 <고려사》 등에 따르면, 최영은 천자국 명나라의 요동땅을 정벌하려 한 역사의 죄인이었다. 최영이 처형된 1388년 12월 당시 그의 죄목에서 잘 드러난다. -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