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울어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염상진네에게 보내는 지지였으며, 혁명과업의 수행이 성공하고 있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가슴 뻐근해오는 감동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나무 전설>을 이야기해 주기로 마음 정했다. 이런 분위기에 그 이야기는 안성맞춤이었다. - P140

학은 일부일처로 새끼를까고 기르며 오래도록 살아가는 수명이 긴새였다. 두 처녀의 수틀 위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한 마리씩의학에는 그녀들이 색실을꿴 바늘을 한 땀씩 뜰 때마다, 나도 좋은 낭군 만나 학 같은 금실로 오래오래 살도록 해주십소사, - P140

그러나 역시 십자수는 조선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아름다음으로나 자연스러움으로나 점잖음으로나 무게감으로나 조선수가 월등했던 것이다. - P141

심재모는 다시 산줄기를 따라 천천히 눈길을 옮기며 지형을 정찰했다. 지형을 살필수록 마음은 착잡해져갔다. 현재의 병력으로섬멸작전이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확실해졌다.  - P150

심재모가 적의 경계를 피하기 위하여 지난번의 주리재 쪽을 버리고 광주로 넘어가는 석거리재로 우회했던 것이다. 그 거리는 지난번에 비해배이상 멀었다. - P151

"염상진 쪽에서 퍼져나온 소문으로 민심이 현혹되고 있는 판에그에 맞서 쌀을 풀지는 못할망정 지주라는 작자들이 모여앉아 그따위 결정이나 하고 있으니, 바보천치 같은 작자들, 해도해도 너무하는군." - P153

전해지며 확대되고 과장되고 있었다.처음에는 쌀을 받아 죽 세끼는안 거르고 겨울 한철을 나게되었다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죽을 끓이던 사람들이 세끼 전부 밥을 먹고 산다더라 하는 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세끼 밥을 다 찾아먹고 살게 되었는데 - P153

 그 소문이 날로 악성화되어 가는 것도 염상진의 부대가 가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문의 악성화는 분명 민심의 동요인 동시에 이쪽에 대한 불만이나 불신감의표현이었다.
심재모는 처음 그 소문을 보고받았을 때 염상진이가 결정적인심리전을 펴고 있음을 직감했다.  - P154

"자네가 날 찾아오기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염상진과 대치하는 입장에서 자네 생각은 백번 옳아 나도 자네 생각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말야. 그러나 또다른 현실을 무시하거나 적대할 순 없는 일이지.  - P159

다음날 오전부터 지주들의 결정이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그 소문은 거친 바람이 되어 읍내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 P161

 "거그넌 전쟁터시 허고, 무신 수럴 써서라도 금방 빠져나올 것잉께 나가 누군디, 최익승이놈이고, 김사용이놈이고 기연시 원수 갚고 말 것잉께." 이사를 할 필요 없는 분명한 이유와 함께 남편은 이를 갈며 혼자 몸으로 벌교를 떠났었다.
- P163

비록 계급이 낮았을망정 남편이 경찰 노릇을 제맛나게 한 것은 아무래도 일정 때였다고 그녀는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 P163

해방된 세상은 나날이달라져갔다. 자치대가 치안대로 바뀌고, 곧 새 나라가 설 것이라고했다. 그 나라는 너나없이 공평하게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나라가 서게 되면 제일 먼저 토지개혁을 해서 소작인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고, 그 다음으로 할 일이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을법으로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 P167

잡아도 미국 힘이 일본 힘보담 두 배는 된다 그것이여. 고것이 무신말인고 허먼, 대일본제국이 이 땅에서 40년 가차이 버텼응께로 그힘이 두 배인 대대미국은 80년은 버틸 것이다 그 말이시. 우리 남은 평상을 따지자면 40년으로도 족헌디, 그 두 배나 되는 80년이미국 덕에 우리 편이 된 셈인디 무신 근심 걱정헐 것이 있냐 그런말이시 알아묵겄는가, 못 알아묵겄는가?" "그리만 됨사 무신 근심 - P170

그런데 길남이가 진짜로 부르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아주머니라고 하니까 너무 먼 것 같고, 너무 늙은 것 같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나이에 어울리는 말, 그것은 ‘소화 누님‘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곱고 예뻐서 부르고 싶은 것은 이름의 뜻을 딴
‘흰 꽃 누님‘이었다. 소화, 소화…………. 그 흔하지 않은 이름은 뇌일수록 정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생기기도 했다.  - P186

춥거나 배고픈 것은 한시도 못 참는 것이 썰매 탈 욕심으로 해뜬 것을 타박하고 있었다. 동생의 하는 짓이 하도 어이가 없어 길남이는 쇠줄을 구부린 뒤쪽 끝에 못을 박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동생은 어제와 오늘 점심을 굶었으면서도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 - P187

반란사건에 가담했다가 연루된 자들의 집에는 새해부터 소작을일체 내주지 않기로 한 지주들의 결정은 며칠에 걸쳐 읍 전역으로퍼져나갔고, 마침내는 골목골목에서 아이들의 입에까지 오를 정도였다.
"인자 칠상이 느그집 큰탈나부렀다."
"하먼, 농새 뺏게불먼 멀 묵고 살어."
"묵을 거 암것도 없으면 굶어죽는다."
"참말로 칠상이니 큰탈났다." - P188

"알겠구만이라 한 가마니럴 채우겄소.‘
장칠복이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며 말했다.
"그려, 자네가 새끼덜이 많제." 오동평은뻗었던 다리를 접어들이며 꿀보퉁이를 다시 끌어당기고는, "요것에다가 인삼 서너 뿌리 갈아서 쟀다가 묵으면 지대로 된 정력보약이라든디." 흘리는 것처럼말하고 있었다. 말이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장칠복이는 그 말을못 들은 척했다. - P196

오동평이 방을 나서며 하는 말이었다.
"아재, 나가 인삼얼 구헐 것잉께 아재가 먼첨 구해지 마씨요."
장칠복이는 토방으로 내려서며 기어이 이 말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시, 그럴 것 없네." - P196

요런 웬수녀러 새끼덜아, 밀금헌 죽 한 그럭썩 처묵은 것이 얹힐성불러 그리 뛰고 발광이냐. 낼 아침에 배고프다고만 혀봐라, 주딩이를 짝짝 찢어놀 것잉께. 죽처묵은 것덜이 밥 처묵은 것덜맨치로뛰고 발광을 허먼 그 배가워찌될것이냐.싸게 찍소리 허지 말고자빠져들자! 또 북새질만 쳐봐라."
조성댁은 방 안의 어둠 속에다 대고 한바탕 소리를 퍼붓고는 지게문을 닫았다. 방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녀의 가슴에는 찬바람 이는 공허감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으로 밀기울마저 탈탈 털어 시래기죽을 끓였던것이다. 서운상과 얽혀 있는 소작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 P197

이지숙의 그동안의 생활 전부와 의식 전체는 오로지 조직구축에만 집중되어 왔다. 교회를 꼬박꼬박 나가는 것도 야학선생으로서 기본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야학의 선생이 되고자 했던 목적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나가는 것도 지하조직의 구축을 위함이었다.  - P211

야학이나 교회는 그 목적을 손쉽게 달성시킬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밭일 뿐 아니라 신분을 위장시켜 주는아름다운 옷이었다.  - P211

 이런 의문 앞에 그 의문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이라도 하듯이 떠오르는 것은 염상진과 안창민이었다. 두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점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 지시에 담긴 복합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지숙은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고 지시내용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 P212

 체계적 조직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런 의외적인 이중작전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었다. 벌교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심재모가 보성의 병력으로 율어를 기습하도록 작전지시를 내릴 수 있는 통신망의 조직화,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 통신망의 조직화는 - P213

그 누구나 심재모의 입장에서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하나같이 벌교와 보성 병력을 동시에 움직여 조성을 양쪽에서 협공지원하는 작전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심재모는 그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작전을 넘어서 의외의 이중작전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 의외성은 심재모 개인이 갖춘 남다른 능력으로 인정해야 했다.  - P213

그것은 기동성의 파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습공격을 당해 너무 많은 인명피해를 입음으로써 해방군의 건재를 알리려던 첫째 목적을손상했고, 계엄군의 전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그 위신을 추락시키고자 했던 둘째 목적을 실패했고, 공격의 완전 승리로 부하들이가지고 있을 불안감을 일소하여 사기를 진작시키고 해방군으로서의 자신감과 긍지를 세우려던 넷째 목적이 와해되었던 것이다. - P214

 그런 통신망의 확대와 강화는 경찰력의 조직과 함께 군정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남한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던 미군정은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직된 세력을 필요로 했다. 그것이 일제시대의 경찰조직과 그때에 경찰관이나 끄나풀 노릇을 했던 집단이었다.  - P215

공출을 강요하고 감시했으며, 고도의 훈련을 거친 비밀경찰과정보원 조직을 갖춰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물샐틈없는 식민통치를자행했다.  - P215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군정 실시와 때를 같이해서 그 경찰조직을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 대중들의 반대와 비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경력자 우선‘을 내세우며 일제치하의 경찰조직에 가담했던 여러 종류의 민족반역자들을 경찰에 복귀시켰다. 그것이 그들의 재생의 기회가 된 것은 물론이었고, 이북에서 내몰리거나 도망나온 일제 경찰관 출신들이 더없이 좋은 피난처를 마련한 것도 그때였다. - P215

지하활동 기간이 의지투쟁의 단계였다면 여수·순천의 투쟁을 기점으로 무력투쟁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무력투쟁의 요건은 작전·병력·화력이었다.  - P217

여수·순천의 투쟁이 열세로 몰린 절대적인 원인은바로 화력의 열세 때문이었다. 지상병력의 투입만이 아니라 폭격기와 군함까지 동원된 화력 앞에서 일단 후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 화력은 곧 2차대전의 주도권을 잡았던 미국의 화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전을 그렇게 신속하게 짜고 병력을 기민하게 동원한것도 순전히 미군들의 능력이었다 - P217

군정은 경찰을 앞세운 계속적인 폭압으로 공출제를 밀고 나가면서, 통일조국을 바라는 절대다수 인민들의 뜻을 짓밟고 단독 괴뢰정권을 세웠다. 그들은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어 인민의 생존권을 손아귀에 넣고, 배급제를 미끼로 해서 인민의 정치권을 희롱해대면서 자기네들의 정치목적을 무난하게 달성시켜 나가는 교활하고도 잔인한 방법을 썼다.  - P217

선거가 임박해서 전에 없이많은 배급표가 나돌았던 것은 그게 쌀이 아니라 독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굶주림에 지친 인민들은 그게 독약인지 무엇인지 구별할 겨를이 없었다.  - P217

인민의 지지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채택한 것 중의 하나가 활빈이었고, 그것은 조성을 공격했을 때 여섯 번째 목적이었다.  - P218

소모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지숙은 지시문의 명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인식했고, 두 사람의 실수아닌 실수를 인간적인 일면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 사실은 이틀이 못 가 읍내 안통을 휘도는 소문이 되었고, 사홀이 못 가 조성과 보성까지 퍼져나갔다. - P219

시방 우리 처지가 처진디 못사는 사람덜 그리 박대혀서 인심잃으면 졸 것이 머시가 있겄소. 글안해도 우리집 손꾸락질험스로나쁜 소리만 헐라고 하는 시상인디."
정 사장은 아내의 말에 더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술도가 앞에는 술찌끼를 얻으러 온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을 것이고,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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