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계속 피해를 입게 된 군경이 그 원인을 따진 결과 현지의 민간인 동조세력이 밤이면 좌익으로 변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여 광양 구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억울하게 죽어간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  - P259

"이것은 최후의 명령이다. 똑똑허니 듣고 철저하게 책임완수혀라"
존댓말이 ‘해라‘로 바뀌어 있었다. 두 번째의 절을 시작하려고 뒤팔을 높이 들어올린 문기수의 전신을 찬바람이 휘감았다. - P256

읍내에 세포조직망을 구축혀라. 첫째, 청년단에 세포럴 심어라.
둘째, 계엄군을 포섭혀라. 계엄군 중에는 사상적 동지가 분명 있을것잉께, 접촉해서 찾아내라. 셋째, 문동무의 중지된 정보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혀라." - P256

내일 쌀을 다 처분하게 되면, 다섯작인이 힘을 모아 신씨를 받들어야 한다고 방 서방은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것만이 큰 은혜를 받은 작은 보답의 길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 P252

"그라고 지끔 가는 길에 봉림 김범우 선생님 찾아뵈고, 나가잠 만냈으면 허드라고 전헐란가?"
하이라. 김 선상님이 안 기시면 안어른헌테 전해도 되제?"
"안어른?
아니여, 그리 허먼 맘 쓰인께………."
"알겠구만요. 한 행보 더 허드락도 김 선상님얼 꼭 만나겠구만요."
방 서방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 P250

"내일 아침 일찍허니 냈으면 싶으네."
"시세가 스자먼 오정 때나 돼야 헐 것인디요. 긴허게 쓸 돈인디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제." - P249

소작료를 2할로 내리고 나서도 만족해하지 않는 아들의 마음을신씨는 말없는 속에서 다 헤아리고 있었다. 아들이 남모르게 하고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신씨는 대충 윤곽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들은 소작료를 안 받는 것만이 아니라 농지의 소유권까지소작인들에게 넘겨주자고 하리라는 것을 신씨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아마 아들이 하는 일을 남들에게 숨길 필요가 없게 될때일 것임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 오면 신씨는 또 아들의 의견을 따를 마음이었다.  - P248

‘마나님‘을 ‘아짐씨‘로 바꿔 부르며 자꾸만 더듬거렸던 것은 입버릇이 재빨리 고쳐지지 않기도 해서였지만, 그보다는 꼭 죄를 짓는것 같은 황송함 탓이었다. 자기네들을 스스럼없이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안창민의 그 과분한 사람대접은 소작료를 내려주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자기네가 신씨네 소작을 부치고 있음을작인들 모두는 천복을 받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 P251

방 서방은 김범우네 작인 방찬돌의 친동생이었다. 자기네 형제가복이 많아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났음을 방 서방은 항시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그 겸손하고자 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형에게 으스대고 싶은 유혹이 간지럼처럼 스멀거리고 있었다. 김사용 어른네가아무리 인심 후하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소문이 안 난 신씨네의인심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 P251

"작은아버지, 행여 그쪽 세포 노릇은 아니것제라?" "이눔아, 주딩이 찢기기 전에 닥쳐라. 은혜갚음이라고 을매나 더 말해야 쓰겄냐." "쪼깐 삐딱혔다가는 작은아부지나 나나절딴난께 허는 말이제라." 조카한테 가당찮은 의심을 받아가면서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도 그놈이 내뱉어주는 소식이 속빠르고 정확하고 자세한 대목이 있어서였다.  - P251

"아아니, 지까짓 놈이 먼디 우리 말얼 안 들어, 우리 지주덜언 핫바지저구리요? 계엄 덕에 지놈 권세가 하늘을 찔른다 혀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빨갱이 때레잡는 디 써묵을 권세지 우리 지주들 앞에 내세울 권세가 못된다 이것이요. 나라가 지눔헌테 그만한 권세를 준 것은 빨갱이덜 때레잡고 지주덜얼 잘 모셔라 혀서 준 것이다. - P269

 "워쨌거나 지주는 지주들찌리 똘똘 뭉치는 도리밖에 없소. 요런 빌어묵을 시상이 워찌 돼갈라고 상것들이 날치고 지랄발광인디, 시상이 지대로 될라면 일정때맹키로 꼼짝달싹 못하게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서 다스려야 허는 것이요.  - P270

상것들이 허파에 바람 들고 간땡이가 부어올라 위아래 몰라보고 설레발치는 것 아니겄소. 짐승허고 상것들은 몽등이찜질로 다스리는 길밖에 없응께, 나라에서 민주주의고 지랄이고다 때려치우고 일정 때 법을 그대로 시행해야 헐 것이요.  - P270

"그려도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한테는 상감이요. 그 양반이 국부로 앉아 기시니 우리 지켜주는 시상 이만치 끌고 가지 딴 사람이정권을 잡았으면 워떤 시상이 닥쳤을란지 모를 일이요." - P271

서인출은 문득 누님을 생각했다. 서러움 한 줄기가 가슴을 찡하니 울렸다. 무당집이라 꺼림칙하긴 했지만 두 자식을 배게 하지않게 되었으니 우선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소작을 못 부치게 될지도모른다는 그 큰 시름을 덜게 된 셈이었다. 이 겨울을 산속에서 워찌살라는고………… 매형 생각이 잇따라 마음을 춥게 만들었다. - P286

"금메, 그럴 법도 헌디, 좌우당간 걸핏허먼 빨갱이로 몰아때리는요런 놈에 망쪼 든 시상도 다시 또 없을 것이로구만." - P292

높이가 앉은키보다 약간 높고, 넓이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인 짚굴은 위아래로 통나무가 받쳐져 있었다. 문은 짚단을 세 겹으로 서로 엇지게 쌓아올려막았으므로 전혀 표가 나지 않았고, 일삼아 발길질을 하기 전에는 허물어질 염려도 없었다. 그것은 배성오가 이번에 단독으로 읍내 침투를 하게 되면서 하룻밤 동안에 만든 은신처였다.  - P301

"말도 마라, 피 다 보타뿌렀다."
"엄니도 인자 당당헌 혁명전사가 되았소."
"아이고메 이놈아, 꿈에라도 고런 징헌 소리 허덜 말어. 새끼 일이라 죽지 못혀 나선 것이제 빨갱이 돕자고 헌 일이 아님께. 이 에미똑똑허니알어야 써."
과수원댁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요분에 엄니가 일척척해내는 배짱 본께 나가 꼭 엄니럴 탁했는갑소."
"와따 염병헌다!" - P305

"일삼아 칡얼 캐묵어라. 고것이 보약이다. 물이 오르는 이삼얼 음지에 말렸다가 가리럴 내서 한 주먹씩 묵으면 하로 세끼 굶어도 까딱없다. 이삼월 솔잎도 그리허먼 보약이고 임시변통 양식이 되니라, 괸물언 묵지 말고 흘르는 물만 묵고, 시상이 춥드라도 땀 찬 발로 자버릇허지말어.땀 안 씻고 자다가는 영축없이 발꾸락에 얼음 백일 것잉께. 발꾸락·손꾸락 . 귀에 쉽게 얼음 백이고, 얼음 백이기 시작혔다 허먼 문딩이가 따로 없응께. 그리고, 그라고.……… - P308

"나가 세 살 묵은 얘기가 아닌께 인자 고만 허씨요."
‘니가 백 살얼 묵어도 이 에미 맘에는 세 살 묵은 애기여, 과수원먹은 속으로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일러 보낼 말이 끝없이 많을 것같은데 막상 떠오르지가 않았다. - P308

 염상진 대장도 안창민 선상도 똑똑허기로 읍내서 꼽히는 사람덜인디, 공산당이 그리 나쁘기만 험사그 똑똑한 사람덜이 워째서 허겄냐. 서로가 나쁘다고 욕질에 총질허기로 치자면 피장파장이다. 니가 바라는 대로 끝이야 보든지 못보든지 간에 기운이 좋아야 당장 도망이라도 잘 칠 것 아니겠냐. - P307

예수상은 진정한 종교인 서민영을 책들은 정직한 지식인 서민영을 청빈은 진실한 사회인 서민영을 나타내고 있었다.  - P309

예수를 인간적인 친근감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서민영 선생이었다. 그분은 기독교사회주의와 무교회주의자답게 예수를 신앙적 대상으로 떠받들지 않고 실천적 선구로 따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예수는 내용이었지 형식이 아니었고, 풀어야 할 숙제였지 맹종해야 할 심판자가 아니었다.  - P310

정돈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분은 필요한 책을 언제나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뽑아내곤 하는 거였다. 책들은 대충 세 종류로 분류할수 있었다. 농촌과 농업, 사상과 철학, 종교와 문학이었다. 그분은정작 전공인 영문학 서적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가 영문학을 전공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고, 특히 미국에대해서는 경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황금만능을 앞세운  - P311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한 가지 일에 겸허한 성실을 다하는 경우에만 당신을 닮게 하는 영광을 베푸셨고, 두 가지일을 해낼 수 있다는 교만한 불성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네.  - P319

물론 이런 섭리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는 균등하게 주어졌지. 동물의 제왕이라 일컬어지는 호랑이나 사자가 먹이를 사냥할 때 그 사냥감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노루를 쫓을 때나 토끼를 쫓을 때나 힘의 경중을 두지 않고 최선을다한다는 것이네.  - P319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를 하나 다음 해 봄까지 빈사상태로견딜 수 있을 정도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량의 먹이만을보관해.  - P320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 해 봄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손대대로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기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이다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 P320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탐욕과 자만을 근본적으로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 P322

"예, 그 문제와 연관해서, 백범이 좀더 나라의 장래를 길게 내다보고 지난 선거에 참여해 국회를 장악한 다음 이승만의 독주를 견제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 P325

두 사람의 차이는 신탁통치 반대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네. 백범의 반탁은 또다른 형태의 식민지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우남의 반탁은 자신의 집권욕구를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려 함이 아니었나. 여기서부터 백범은 역사적 대의명분의 길을 택했고, 우남은 반역사적 소아이익의 길을 택했네.  - P326

"바로 핵심을 기억하고 있구먼. 민족일체의 자주독립을 정도로본 백범은 그것을 저해하는 다른 모든 행위를 사도로 취급한 것이었네. 미·쏘가 분할점령한 상황은 뜻을 합쳐 자주독립을 추구할시기이지 분열을 해가며 권력쟁취를 시도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인데, 민족사적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탁견이고 진실이 아닐 수없네.  - P327

그가 수반이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인데, 미국 정부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매국노 이승만을 어찌 수반으로앉힐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 그러나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획득이라는 외교론 쪽이 우세하여 이승만이 수반으로 결정되었네. 물론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감안한 조처였지.  - P328

상해 임시정부의 기능이나 업적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네.
그러나 식민지국가로서 망명 임시정부 하나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게, 우리 민족의 꼴이 뭐가 되었겠나. 상해임시정부를 세움으로써 우리 민족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다는 결의를 세계적으로 보여주었고, 그것은 또한 전통적 독립국임을 입증하고체통을 세우는 일이었네. 그것만으로도 임정의 가치는 우선 평가해야 할 것이네." - P330

"소찬일세, 어서들 들게나."
숟가락을 얼굴 높이로 들어 잠시 멈추고 나서 서민영이 말했다.
얼핏 보아서는 눈치를 챌 수 없도록 짧은 그 순간적인 동작은 기도였던 것이다. 그의 말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섞여 있었으나그 누구에게도 ‘예수를 믿으라고 직설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무교회주의자다운 태도였다.
반찬은 언제나처럼 간소했다. 김치와 시금치나물, 간장 한 종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잡곡밥과 뜨물로 끓인 콩나물국이 각각 놓여 - P332

"아부지는 얼굴도 몸도 뻘건 디는 하나또 없는디 워째 사람들은아부지보고 빨갱이라고 할까?"
덕순이는 대답이 난감해졌다. 공산당의 이름이 빨갱이인 줄만 알았지, 어째서 빨갱이라고 하는지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공산당 이름이 빨갱이제"
"글먼 성이 공산당이고?"
"금메....?"
덕순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 P340

"치이, 니 공부 잘한다는 것 순 그짓말이여. 다 넘덜 시험지 보고써서 점수 잘 받은 것이제."
덕순이가 동생의 손을 홱 뿌리치며 걸음을 멈춰섰다.
"니 참말로 분질를꺼?" - P340

그러나 동백꽃은 한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으나 그나뭇잎이 너무 억세어서 싫었고, 작약은 흐드러진 큰 꽃송이에 넘치는 붉은빛이 눈 시리게 고왔지만 어딘지 거만스러운 것 같아 친해지지 않았고, 연보랏빛 수선화는 꽃 모양도 특이하고 곧게 뻗은진초록 잎새도 정갈해서 좋았지만 꽃이 너무 연약해 빨리 지는 것이 아쉬웠고,  - P345

꽃다짐을 손톱 위에 올리기 전에 손톱 가장자리로 밀가루반죽을 먼저 붙였다. 꽃물이 살로 번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손톱을 따라 밀가루반죽을 붙이는 일은 여간 정성이 들지 않았다.
그것도 손가락 한두 개가 아니라 엄지손가락 두 개를 빼고 여덟 개의 손가락에 붙여야 하는 것이었다. 해마다 품앗이를 하는 친구 점분이는 네 손가락에 물을 들일 뿐인데도 아무런 불평 없이 그녀의 여덟 손가락에 밀가루반죽을 붙이고, 꽃다짐을 놓고 피마자잎으로 싸서 실로 동여매는 일을 정성스럽게 해냈고, 그녀 또한 점분이에게 일을 배로 시키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 P346

치자꽃은 희고 작았다. 어찌 보면 소복한 정상 같은 것이었다. 그런 춥고 외로운 느낌의 꽃에서 어떻게 황홍빛 물감이 풀리는 열매가 맺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치자꽃을 좋아하기보다 어쩌면그 열매인 치자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 P3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