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은 "무신난 이후 고관이 천한 노비에서많이 나왔다. 어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있다"고 하면서 최충헌 등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불살라 노비가 사라질 수 있도록 하자고 선동했다. 계획은 사전에 탄로나 만적 등이 처형당했으나 신분해방과 정권 탈취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 P251
고려는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차원에서 북방으로 영토확장을 추진했다. 그 결과 건국 초 대동강 유역에 이르렀던 고려의 서북면 경계는 태조 말년 청천강까지 확대됐고, 동북면으로는 지금의 함경남도 금야에 해당하는 화주까지 진출했다. - P269
제1차 침입 당시 거란은 신라 땅에서 일어난 고려가 거란 소유의 고구려땅을 침식했다고 주장하면서 자국을 두고 바다 건너 송과 외교관계를 맺고있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에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우는 한편, 거란과 통교하지 못한 것을 압록강 안팎을 점유하고 있는 여진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여진을 쫓아내고 거란과 통교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요청했다. 결국 고려가 거란에 사대하는 조건으로 강화가 이뤄지고, 대신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흥화진·용주·통주·철주·귀주·곽주에 성을 쌓아 새로운영토를 확보했다. 이것이 강동 6주다. - P271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고려와 여진의 관계는 11세기 말 여진 부족 가운데 하나인 완옌부의 세력이 커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려와 여진의 본격적인 충돌은 1104년에 발생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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