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기에는 너무나 궁색한 살림살이었다. 겨울은 닥쳐오고, 두 사끼들을 데리고 혼자 힘으로 겨울을 살아낼 일이 걱정인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리 궂은 죽임을 당한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바심쳤다. 시아버지의 원혼이 고이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떠도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장례도 거적쌈을 하다시피 했다.  - P65

들몰댁은 경찰서 앞을 지나기가 무서워 샛길을 걸어 소화다리를건넜다. 다리를 건너는데도 걸음이 자꾸 휘뚱거리는 것만 같았다.
소화다리에서 총 맞고 대창에 찔리고 하여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 P69

들몰에서 커난 그녀는 그 누구 못지않게 소작농의 배고픔과 슬픔을잘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네를 가난하고 배고프게 살게 만드는 것이 지주라는 것을 알았고, 어느 때는 그들을 한없이 부러워하기도 했고 어느 때는 그들을 끝없이 미워하기도 했다. 좀더 철이들어 소작농이 왜 소작농의 신세를 면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되면서아버지를 못난이로 보지 않고 장하게 여기게 되었다.  - P70

 남편과 힘을 합쳐 죽도록 일을 해서 자작농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도 먹는 입이 적어야 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을 적게 낳을 작정을 했다. 그 생각이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 P71

그녀에게 말하고는했다. 벼 익은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큼 푸짐하고 넉넉한 마음일 때가 있을까. 그러나 그 느낌을 갖는 다음 순간, 마음이 더없이 허전하고 쓸쓸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 넓고 넓은 들판에 자신의 땅은한 뙈기도 없다는 자각 탓이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어느 때 한번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 P72

중도들판은 작년 해동이 되자마자 개인 앞으로 소유권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체가 술렁거리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건 결국돈 있는 사람들의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소작인들은 제석산 쪽의상답은 그만두고라도 방죽 쪽에 가까운 논이나마 한 마지기씩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그건 애만 타는 부질없음이었다. 소작인들은 신세한탄을 할 새도 없이 바뀐 주인을 찾아가 소작을 부칠 수있기를 사정해야 했다.  - P73

말이 좋아 농지분배였지 진작에 부자나 지주들과 한패거리가 되어버린 군정이 한 일은 배부른 놈 더 배불려주는 것일 뿐이었다.
소작인들은 벌써부터 군정을 믿지도 않았고, 신용하지도 않았지만그 일로 더욱 그들이 꼴사나운 ‘양코배기고 ‘양귀신들‘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 P73

그 미곡수매라는 법은 억지춘향이도 그런 억지춘향이가 없었다.
값을 군정에서 미리 정한 것도 억지였고, 집집의 형편이 어떤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할당을 한 것도 억지였다. 할당받은쌀이 없다고 해도 그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읍사무소 직원들이 집뒤짐을 했고, 경찰이나 청년단원들이 사람을 끌어갔다. 일정말기의공출바람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 P74

큰아들이 배가 팅팅 부어오르는 병을 앓아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병원비를 대느라고 뒤로 쌀을 내다팔아야 했다. 결국쌀이 모자라게 되어 그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이웃들이 나서서 거짓말이 아니라고 거들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경찰에서는 강진댁의 남편을 끌어갔다. 강진댁은 밥때마다 밥을 가지고 갔지만 면회도 시켜주지 않았고, 밥도 받아주지 않았다. 강진댁은 이틀 만에 마룻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 P75

안 뒤여, 안 뒤여, 술도가집 아들하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짓 혀서는 안 뒤여.
월녀는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 P88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금방 시커떻게 내려앉으며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초가을이면 찾아들고는 하는 농사시샘비였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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