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양치성은 봉천의 비밀장소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건 명목만 회의였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정보활동에 대한 작전지시였다. 회의장을 채우고 있는 20여 명은 모두 조선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서간도 일대를 더듬고 다니는 정보원들이었다. - P289

다만 한 가지 확인한 것이 김시국이가 자신 못지않게 수국이에게 흘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국이는 김시국에게 마음을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수국이는 시집갈 기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얼굴만 고왔지 남자를 모르는 배냇병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다. - P292

지주 추가의 아들이 눈독을 들이며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이 몰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가의 아들은 자식까지 여럿 둔 30대 중반의남자였다. 그는 수국이를 첩으로 들어앉히려고 탐내는 것이었다. - P293

감골댁은 딸을 끌어안으며 목이 메었다. 몸을 망친 그 일이 벌써몇 년인데 아직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딸이 너무 가없고도 가슴 쓰라렸던 것이다. - P295

새로 대한정의단을 만든 형편에 독립군도 제일 막강하게 조직하자는 거지. 다시 말해서 대한국민회에 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대한국민회는 야소교 사람들이 만든 단첸데, 우리 정의단 다음으로 규모가 클 거야." - P299

방대근은 자신이 환대받은 이유를 알았다.
서간도와 마찬가지로 북간도에서도 독립운동 단체들이 5월까지17개가 생겨났다. 그중에서 조직의 규모로나 영향력으로나 대표적인 것이 대한정의단과 대한국민회였다. - P299

인대종교도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한 것이었다. - P300

노령임시정부는 3·1만세를 뒤따라 3월21일에 생겼고, 상해임시정부는 4월 10일에, 한성임시정부는 4월23일에 생긴 것이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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